반찬가게 음식들이 밥상 위를 수놓았던 '요리 신생아' 때 출석도장을 찍던 반찬가게 있었다.푸근한 인상의 사장님 솜씨가 어찌나 좋았던지. 그곳은 진미채볶음이 특히 맛있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해 한번 가면 여러팩 사다가 먹곤 했다.
사장님이 개인사정으로 가게 문을 닫는다고 말했을 때 앞치마 자락을 붙잡고 가지 말라 울뻔했다. 비엔나 소시지나 겨우 튀기는 형편인데... 그곳만큼 맛있는 진미채볶음은 찾을 수 없어 더 슬펐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먹고 싶으면 배워서라도 해야지.
진미채는 매콤 달달하게 볶아도, 오이 넣고 새콤하게 무쳐도, 그냥 마요네즈에 찍어도 맛있는 참 매력 있는 식재료이다. 나는 고추장양념 묻은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이게 쉬운 듯해도 직접 해보면 맛을 내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고추장 양념에 진미채 넣고 볶다가 새까맣게 태워먹었던 경험이 풍부하다. 어떻게 하면 진미채에 빨간 빛깔과 윤기를 입힐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볶지 않고 무치기로 했다.
우리 집은 진미채를 냉동보관한다. 찬기운을 먹은 진미채를 바로 조리하는 게 아니라 수분부터 날리는데, 볶지 않고 무치기 때문에 이 과정이 필요하다.
먹기 좋게 자른 진미채(160g, 두 줌 정도)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 돌리고, 털어주듯 수분을 날린다. 이걸 다시 전자레인지에서 1분, 수분 날리기 순서로 총 3회 반복한다. (상온보관한 것은 40초 정도 돌리기를 반복)
가정마다 전자레인지 출력이 다를 수 있으니 수분 날리기 할 때 진미채가 타지 않게 상태를 잘 살펴보며 시간과 횟수를 조절하자. 노릇노릇한 기운이 있으면 꺼내서 식히기. 이 상태에서 마요네즈 갖고 TV앞으로 가면 훌륭한 간식되시겠다.
양념장은 진미채에 바로 넣고 무치지 않고 살짝 졸여서 넣도록 한다. 나는 멸치, 진미채 등 건어물 볶음에는 음식에 윤기를 더하는 조청으로 단맛을 낸다.
(어른수저) 고추장 1, 조청 또는 물엿 1 수저 반, 맛술 2, 진간장반수저
기름을 충분히 두른 팬에 마늘 한 수저 넣어 볶은 다음
양념장을 넣어 아주 약한 불에서 타지 않게 볶듯 졸여준다. 진미채에 색을 더하고 싶으면 고춧가루를 취향껏 넣어도 된다.
완성한 양념장을 식히면 위에 기름이 분리된다. 이 기름층을 걷어내고 밑에 가라앉은 양념만 쓰도록 한다.
버무림의 시간이 되면 기분 좋아서 어깨가 들썩들썩한다. 내 입맛에 맞는 반찬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성취감도 크다. 참기름 코팅과 깨소금 탈탈로 마무리하고 밥상을 차려본다.
쌀독을 채우듯, 흐름 끊기지 않게 만들어 놓고 있는 밥상 위의 터줏대감 진미채무침. 밥도둑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