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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이치로 인터뷰 단상

by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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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야구선수 이치로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오타니가 일본을 넘어 메이저리그 전체의 아이콘이 됐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 메이저리그 선수의 상징은 이치로였다. 메이저 통산 3000안타 기록,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 등 대단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한국과의 악연 때문에 맘 편히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그의 행적엔 단순 운동선수 이상의 아우라가 있는 건 분명했다. 마치 수행자처럼 야구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영감을 받곤 한다. 이러한 성정은 종종 일본 국적의 유명인에게 기대하는 모습 그 자체이기도 하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매일 카레를 먹었다던지(매일 먹진 않았다고 부정하긴 했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다고 한 말이라던지, 야구에 맞춰진 일상을 꾸준히 유지하는 모습은 분명 존경스러운 모습이다. 어쩌면 대단한 성취를 이뤄냈기에 우러러본다기보단 성취를 이루기 위해 유지했던 자기 단련이 이치로의 진정 위대한 모습일지 모른다. 성취란 건 시대와 재능과 운이 맞아떨어져야만 이룰 수 있다는 건 어른이라면 다 알고 있다. 그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은퇴를 한 뒤 기자회견에서 아마도 다음 날부터 운동을 하고 있을 거라고 답했다.


이치로의 기괴한 성과 때문도 있었지만 그를 인상 깊게 살피게 된 계기는 그의 수많은 인터뷰들 때문이었다. 일단 그는 말이 많다. 다행히도 유머가 있어서 모든 말이 지루하지는 않다. 평생 스타로 살아왔으니 말이란 건 야구 다음으로 중요한 업무였으리라. 민족주의적 발언으로 인한 설화 역시 그의 다변이 한몫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어 구사를 보면 무릎을 탁 칠 때가 있다.


마이애미 말린스와 계약이 끝나고 FA 신분이 된 2017년, 마흔네 살의 나이에 시장에 나왔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과거의 영광이 무색하게 소속팀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는데 그때 이치로의 대답이 이랬다. 애견샵에 팔리지 않는 큰 개가 된 기분이라고. 대단한 비유였다. 여전히 실력은 있지만 나이가 많기에 선뜻 선택을 받지 못하는 신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구애를 기다려야 하는 자신을 늙은 개에 비유한 것이다. 문학적 훈련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런 류의 비유는 계산되었다기 보단 순간의 감정을 즉시 건져냈을 때 나올 만한 표현이다. 마치 슬쩍 본 풍경을 쓱쓱 그려낸 크로키처럼 . 스포츠는 육체의 일이지만 육체를 주관하는 건 결국은 뇌의 몫이다. 분명 언어 중추가 발달한 사람임이 분명할 것이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면서 하나의 해프닝이 있었다. 엄청난 업적을 이룬 선수이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백 퍼센트 득표로 입성할 거란 전망이 분분했다. 결과는 딱 한표 모자란 99.7%였다. 이 역시 대단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딱 한 표가 모자랐기에 여러 말이 나왔다. 인종차별이라는 의심도 있었고 명예의 전당 투표 시스템에 대한 근원적 회의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치로의 인터뷰는 부족한 마지막 한 표를 채웠다. “불완전해야 전진할 수 있습니다.” 영광의 자리에 서서 폼을 잡으려 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목적이 그렇더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븐먕재주다. 앞선 내용을 가려놓고 이 말만 들려준다면 아마 하루키의 수상 소감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러다 보니 생각났다. 하루키에게 비유의 원천에 대해 묻자 그가 답한 말이 있었다. 머릿속에 서랍을 열면 거기에 그 문장이 있습니다. 이치로도 그런 서랍이 있나 보다.


비유란 것은 종종 내게 주어진 총알 열 발과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어쩌면 과녁에 한 발도 맞추지 못할 때가 있고 어떤 날엔 쏘는 대로 과녁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한 발이 조준을 빗나가고 그게 옆 사람의 과녁에 꽂히거나 지나가던 누군가를 맞출 수도 있다. 그럼 앞선 아홉 발의 명중은 무의미해진다. 달변가들은 치명적인 한 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쏘고 놔서도 그다음 격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아무튼 이치로의 인터뷰를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종종 그가 하는 헛소리가 거슬리더라도, 그는 언젠가 손뼉을 딱 치게 하는 문장을 뱉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이는 문학을 읽을 때와는 다른 쾌감이다. 구체적 삶과 현재의 표정에서 나오는, 조금 더 명료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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