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은 웃긴 내용에 대해 나눠보려 합니다. 제가 살면서 이럴 것이다 하는 통찰을 모아 적어본 첫 이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름은 ‘그네 이론Swing Theory’입니다. MBTI라던지 심리학적 기반과 접목된 부분도 많지만 대부분은 단순히 스스로의 경험과 통찰을 통해 ‘이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의 결론을 적어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혹시 여기서 '이상한 애네~'하고 뒤로가기를 누르실까봐 말씀드리자면, 저는 심리학 전공생입니다. 또한, 전공 공부를 떠나 5년 이상의 고민과 경험을 압축한 핵심이니 길더라도 저장해두시고 여유로울 때 끝까지 읽어주신다면,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제 다른 에세이에 비해 이번 주제는 깊이 다루게 되었습니다. 결코 짧지 않지만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새로움을 당신에게 선물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늘 ‘나 이외의 어떤 한 사람을 깊이 있게 이해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그리고 내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이 쉬워진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제 삶의 통찰을 드러냄을 통해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수준 역시 깊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시작해봅시다. 한 인간의 성격 변화와 성장에 대하여.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꽤 많은 시간을 혼자 생각하는 것에 쓰고, 그것은 대부분 내 스스로에 대한 성찰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대비와 준비는 기본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도 하죠. 그 날 그 날 일어난 일들에 대해 곱씹기도 하고, 그에 대한 나의 대응이 어땠는지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저는 대부분의 상황을 ‘문제’라 생각하지도, 일련의 상황들에 대한 나의 대응에 있어 ‘실수했다’거나 ‘잘못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고,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더 좋았을 지에 대해서 짧게 생각해보는 정도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평소에 혼자 보내는 시간 동안 꾸준히, 오랫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고민해본 주제는 크게 인간관계, 나의 성격과 삶, 취미 생활, 앞으로의 삶 등이 있고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인간관계’와 그와 맞물린 제 ‘성격 변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아주 깊이는 다루지 않겠지만 이것이 성격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열쇠라는 점은 짚어두겠습니다.
모두가 같은지는 모르지만, 저는 늘 제 성격의 흐름이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변화하는 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것 같아요. 어떤 상황이 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그것은 내 성격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금의 성격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이었을지 등에 관한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제게 일종의 도식이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어떤 성격으로 가고 싶을 때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면 될 것인지, 어떤 성격이 필요할 때는 어떤 노력을 하면 되는지, 그리고 지금의 성격은 ‘00이 영향을 많이 미쳤겠구나~’하는 분석, 그런 것들이 제가 알고 싶었던 부분이에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만, 현재의 성격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할 것임을 느낍니다. 성격이 변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 알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어요.
그네 이론이란?
그래서 그네 이론이 대체 뭘까요? 정말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변증법의 정반합(Dialectic)의 개념을 인간의 성격 변화에 대입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선천적인 기질과 자신의 행동방식에 따라 자신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성격을 형성하고, 수많은 경험을 거치며 그것을 점점 강화합니다. 그것이 바로 정(Thesis)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것이 점점 강화되다 보면, 어느 순간 한 쪽으로 성격이 치우치게 됩니다. 그것이 어떤 쪽으로 치우치는 것일지는 사람마다 다를 거에요. 누군가는 방에 틀어박혀 지내기만 하고 내향적인 특성이 매우 강해질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작은 무언가로도 눈물을 쏟아내는, 감성이 극한으로 치닫은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는 스스로의 불편과 필요에 의해 반향(sensation보다는 resistance에 가까운 것)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반(Antithesis)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정도를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요. 그래서 이번에는 기존과는 반대되는 가치와 행동방식을 강하게 추구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처음에 특정한 성격의 방향을 ‘다소’ 줄이려고 했던 목적과는 달리 어느새 그 반대편까지 달려와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그런데 그 역시도 꼭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었던 거에요. 예를 들어, 에너지가 넘치고 말이 많던 사람이 조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하다보면, 어느새 말을 적당히 줄이는 것에서 멈추지 못하고 오히려 너무 묵묵한 사람이 되기까지 이어진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반향이 오면 강하게 반대편으로 치우치게 되고, 이 과정이 마무리되었을 때는 또 다시 그 상태에 만족하지 못해 반대 방향을 추구하게 되며 또 다시 스윙하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은 스윙을 거듭할수록 일련의 경험치가 쌓이게 되고, 점점 스윙의 범위가 줄어들죠. 그러다 결국은 스윙을 멈추고 적절한 중앙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합(Synthesis)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지금도 한 쪽 끝에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이 과정을 수없이 거쳐 중앙과 가까운 곳까지 도달했을 수도 있죠. 이 모든 과정을 충분히 인지하고 살아간다면 그 시간과 과정을 더 단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꼭 필요한데요. 그네가 멈춘다는 것은 결국 ‘성인’이 된다는 것일까요? 정말 장점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글쎄요.. 저는 그것이 장단점을 모두 가진 양날의 검이라 확신합니다. 정신적인 수준은 확실히 올라가겠지만, 점점 스윙의 범위가 줄어들수록 성격은 더 안정적인 동시에 바뀌기 어려워지는 것이니 말이에요. ‘확실한 나’가 굳어진다는 것은 반대로 변화에 더딜 수 있다는 말이니까요.
성격 흐름에는 무엇도 ‘정답’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어떤 방향의 성격을 추구하게 된다면,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선택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당신이 가진 성격과 반대되는 경험을 해본다면, 양쪽 모두를 이해하고 모든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될테니까요. 그렇지만, 어떤 성격이든 장단점이 확실히 있다는 것 역시 항상 되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성격을 변화시키는 일종의 공식이 필요했고, 그것을 찾기 위해 여러 노력을 들였습니다.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훨씬 많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의 인과를 느낄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성격을 노력을 통해 형성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경험하고 느낀 바, 그리고 공부한 것들의 집약체를 전해보겠습니다. 쉽고, 간단하게요. 길겠지만, 끝까지 읽는다면 당신은 어쩌면,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현실과 이상의 조절 - 이상을 키우는 법
문득 제가 알게 된 몇 가지 성격의 흐름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를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그것의 첫 번째는 바로 ‘이상’과 ‘현실’을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MBTI로 따지자면, N과 S의 비율을 맞추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시작하기 전에 짧게 말씀드리자면, 어느 한 쪽도 나은 것은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것이 다르고, 선호하는 방향도 다르니까요. MBTI 이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각각의 특징과 장단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궁극적으로는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특성을 골고루 가진 사람이 되는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저 또한, 이에 입각하여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이끌 수 있도록 하나의 가이드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며, 어쩌면 반대 방향을 느껴볼 수 있도록 돕는 열쇠가 될 수도 있겠네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제 성격의 흐름을 늘 모니터링하고, 그것의 이유를 찾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몇 가지의 개인적 이론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지, 그런 질문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관적인 경험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하지만, 깊이 생각하며 읽어주신다면, 아마 대부분의 내용에 대해 공감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N으로서의 삶은 ‘창의적’인 부분이 강하고, 육감이 고도로 발달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관적인 삶은 현실적인 차원을 초월한 어떤 것이 있기에 쉽게 설명하자면, 이것이 강해지면 ‘나만의 세계’가 생기는 것입니다. 나만의 세계가 생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을 보는 눈에 자신만의 독특한 색의 렌즈를 장착한다는 의미라고 표현해보겠습니다. 이 렌즈는 직관적인 사람들이라고 해도 각자 매우 다른 색을 띱니다. 현실적인 사람들은 그 정도가 깊어질수록 거의 동일한 사고를 하게 되는데, 이와는 반대라고 할 수 있죠. 이들은 서로 형성한 내면의 세계가 다르지만, 서로 대화를 나눠보면 상대가 그런 세계를 형성한 원리를 ‘느낄’ 수 있으며,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적인 사람들입니다.
이상을 끌어내려면, 가장 먼저 당신을 늘 지지해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어떤 경험을 가지고 돌아오던 그것을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첫 번째 열쇠에요. 그들을 통해 당신은 자신감과 자존감이 생기고, 결국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어쩌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얻게 되죠. 이것이 첫번째 스텝입니다.
제 경우에는, 늘 지지해주는 몇몇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가 어떤 일을 했을 때, 축하해주고, 실제로 만들어낸 아웃풋과는 별개로 정말 대단한 무언가를 해낸 사람처럼 만들어주죠. 가끔 정말 붕 떠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그 행복감은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어떤 아이디어를 냈을 때, 어떤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것을 마무리했을 때, 짧은 글을 썼을 때, 무언가를 추천해주었을 때…. 긍정적인 피드백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꼭 필요합니다. 훨씬 다양한 예시들이 많지만 다 적을 수는 없으니까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다음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감으로 새로운 경험들에 수없이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다양할 거에요. 학생이라면 좋은 성적을 내 보기 위한 도전을 할 수도 있고, 어딘가에 들어가기 위해 지원해보는 방식일 수도 있죠.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해볼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시도를 해볼 수도 있겠네요. 당신이 앞서 충전한 자신감과 자존감은 겉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분명히 성공 확률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때로는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덜 상처받고, 실패를 꼭 스스로에게 귀인시키지 않도록 도와주기도 하죠. 이렇게 또 첫 번째 스텝을 통해 자연스럽게 두 번째 스텝도 꾸준히 쌓여갑니다.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또 다시 성취 경험이 늘고, 더 큰 무언가에 도전할 힘을 얻습니다. 이를 통해 당신은 ‘내가 이런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이상을 꿈꿀 수 있게 되고, 그 스케일도 점점 커지겠죠. 진정한 이상주의자란, 단순히 꿈꾸는 것이 아니라, 초현실적인 자신의 기대를 실제로 이룰 수 있다는 믿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를 아시나요? 잘한다 잘한다 하면 정말 잘하게 된다는 효과인데요. 사람들의 지지에 의한 플라시보 효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살면서 늘 느끼는 것인데, 이 효과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잘한다, 대견하다, 최고다 라는 말은 단순히 어깨에 뽕을 넣어주거나 내 몸에 풍선을 수없이 달아 구름 위를 걷게 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무게감을 주고, 더 노력하게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세상에 더 멋지고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는 쇼맨십을 자극하기도 하죠.
저는 이것이 극도로 치솟았던 때는 항상 주변에서 제가 바랬던 것보다 훨씬 큰 호응과 지지를 보내주었고, 작은 성취 경험들이 계속 늘어갔던 때인 것 같습니다. 이미 있는 것이 아닌 것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믿게 되고, 그것을 하나씩 이루다 보니 점점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샘솟는 것이죠. 이것이 제가 직관과 이상을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가끔 붕 떠있고 싶을 때에는 일부러 그것을 만끽하곤 해요. 조심해야 할 것은, 당신이 성취의 행복을 만끽하고, 자신감을 충전할 때에는 그 풍선의 헬륨을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너무 적은 양으로는 바닥에서 뜰 수 없고, 스스로에 취해 과한 자신감을 가지거나 허세와 가식을 주입해 거만한 사람이 된다면 그 풍선은 금방 터져 다시 바닥에 떨어지게 만들 테니까요.
같은 'N'에 대한 내용이지만, 직관에 대한 것은 조금 달라요. 직관Intuition 자체는 개인적으로 선천적인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대해 짧은 순간에 많은 것을 느끼는 것과 어떤 상황에 대해 인지하는 방식은 노력을 통해서 바꿀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유지되며 발전하는 특성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은 이후에 따로 다루겠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조절 - 현실감을 기르는 법
다음으로는 그 맞은 편에 대한 조절도 필요하겠죠. 저는 100이라는 절대적인 총량을 이상과 현실에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에 따라 절대적인 총량을 무수히 확장할 수 있고, 둘 사이의 비율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쉽게 말해서 MBTI로 봤을 때, N 80%, S 20%인 사람이 N 10% S 90%인 사람보다 절대적인 현실감이 훨씬 높을 수도 있다는 말이죠. 그 총량이 다를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MBTI를 비율만 가지고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깊이와 경험의 갭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이제 현실감을 높이는 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려 노력하고, 많은 일들에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국제 정치와 사회문제들에 귀기울이고, 많은 이들이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들을 듣기 시작하는 것이죠.
뉴스를 보고, 신문을 읽고,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채널들의 영상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현실적이라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지만, 단순히 이상적인 것의 반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찢어질 듯한 가난에 처해있는 사람이 이상적인 삶을 꿈꿀 여력조차 없이 눈 앞의 현실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 사람을 현실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당신은 더욱 염세적인 사람이 될 것이고, 비판적인 사람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눈 감고 귀를 닫은 사실들을 알게 될수록 밝은 세상의 이면, 어두운 부분에서 들려오는 아픔을 느낄테니까요. 이것은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철학자들이 무지한 우리보다 행복할 수 없는 이유도 그들이 너무 많은 것을 알기 때문이고, 그 생각은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도달하게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상과 현실을 함께 발전시켜야 합니다. 현재의 세상은 이렇지만 우리 한 명 한 명이 선한 영향력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상주의자는 뜬구름 잡는 말을 하는 몽상가일 뿐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알고도 이상을 잃지 않은 사람은 혁명가이자 선구자가 되는 것 아닐까요?
외향과 내향의 조절
외향과 내향은 관계에 있어서 ‘필요성과 불안’을 얼마나 느끼는지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웃기죠..? 사실 모두는 관계에 있어서 필요성을 느낄텐데 그게 차이가 있다는게 말이에요. 우선 제 관점에 대해 이해하시려면 우선 제가 어떤 쪽에 속해있는지를 이해하셔야 할 것 같네요. 사실 저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오랜 시간을 지내왔습니다. 약 1년 전부터 내향적인 사람이 되었지만 제가 지금의 모습을 원해서 스스로의 성격을 변화시키기까지 2년 이상의 시간이 들었다는 것은 내향과 외향 사이의 변화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을 ‘외향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마 활동적이고, 수다스럽고, 여러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명쾌한 답이에요. 하지만 그 이면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외향인들이 외향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외향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혼자 보내는 시간에 외로움을 느끼고 사람을 필요로 하죠. 맞아요. 외향성이란, ‘필요’에 의해 생기는 특성입니다.
내향적인 사람은 어떤가요? 먼저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하고 쭈뼛쭈뼛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야… 외향적이었던 저로서는 이런 뽀짝한(귀여운) 모습을 가만히 둘 수 없었죠. 말을 걸고 이들을 제 친구 칸에 수집하는 것을 즐기곤 했습니다. 이들이 제게 특별히 가치있던 이유는, 이들은 많은 관계를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그들 마음 속 친구 슬롯(공간)에 들어간다면, 그들의 몇 없는 소중한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너지가 넘쳤던 저는 그 친구들의 에너지를 고려해서 돌아가며 불러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점이 메리트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같은 외향적인 친구들보다는 내향적인 친구들이 더 좋았어요.
맞습니다. 외향인과 내향인은 좋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어요. 상대에게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고, 외향적인 친구의 주도가 내향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편안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거든요. 외향인은 내향적 친구를 통해 자신의 주도성과 일종의 지배성(Dominance)을 펼칠 수 있어서 좋고, 특히 내향적인 친구들은 관계가 한정적이기에 놀고 싶을 때에 부르면 마침 약속이 없어 나와주기 때문에 이런 작은 것에서부터 잘 맞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향적인 친구는 혼자서는 어려웠을 경험들을 외향적인 친구의 주도로 해볼 수 있으니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핫플레이스에 따라다닐 수 있고,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함께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내향적인 친구들도 자신이 경험해본 세상을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외향적인 사람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기도 하는데, 단순히 말이 많고 활동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에너지를 얻는 방향에 의해 나누어지는 것이죠. 내향적인 사람은요? 혼자 사색하는 활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생각을 이어갑니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것이죠. 그래서 이들은 밖에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힘겹게 집에 돌아와 문을 닫고, 혼자가 되는 순간 안색이 바뀝니다. 이제까지의 피로는 없어지고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사실 외향성과 내향성에 대해서는 MBTI 중 유일하게 제가 더 추구하는 모습(절대 이것이 ‘더 좋은’ 모습이라는 것은 아닙니다)이 있어 이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평소’의 모습은 내향적인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게 되었어요. 관계성에 있어서는 이제 언제든 다시 외향성과 유머감각을 꺼내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이제는 제 스스로의 깊이를 더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외향인으로 지내오며 스스로에게 느꼈던 아쉬운 점은, 통통 튀는 텐션(기분의 높이)을 스스로 조절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쁠 때에는 그 기쁨에 젖어있었고, 다소 흥분을 잘 했죠. 그런 점을 고치고 꽤나 무던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편안함을 풍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 늘 노력해왔고, ‘만만한 사람’이 되어주고자 했지만 결코 제 스스로가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만 가진, 정말 얕은 사람이 되고 싶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외향적이었던 시간을 부정적으로 느낀 것은 아닙니다. 많은 교류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었고, 여러 시각과 관점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사회성은 실제로 많은 경험과 교류를 통하지 않고는 이론과 생각만으로 결코 기를 수 없었을 것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외향성 혹은 내향성을 기를 수 있을까요? 외향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스스로 새로운 관계에 대한 필요성을 곱씹어야 하고, 그 이유가 분명해야 합니다. 사람은 필요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으니까요. 스스로를 새로운 환경에 던져보는 것도 좋습니다. 새로운 공동체에 가입해본다던지 그런 것 말이에요. 그것을 통해 ‘필요한 상황’에 처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내향성을 기른다는 것은 오히려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내향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관계의 갈급함’이 해소되어야 하거든요. 한 명이라도 자신이 믿고 깊이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 관계에 대한 안정감을 가지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정신적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죠. 먼저 움직이지 않아도 당신을 불러내어 놀러 다녀 줄 친구들이 있다면, 당신은 그들을 믿고 평소에는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사색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눈치채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위에서 이상을 기르기 위해서도, 내향성을 기르기 위해서도 결국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격의 형성과 발전에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안정감 있는 대인관계’라는 것이죠.
결론적으로는 외향과 내향 모두 필요한 상황에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쪽만 가지고는 만족스러운 대인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우니까요. 제가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때, 그리고 새로운 관계들을 형성해야 할 때에는 외향적인 면을 끌어오고, 이를 통해 튼튼한 관계적 기반이 형성되고, 현재 환경에 충분히 적응했다면, 내향성을 끌어내어 내면적 발전에 힘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향과 외향은 사실 한 쪽만 계속 쓸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아실 거에요.
며칠 전에 시청한 한 격투 예능 영상에서 참가자들은 처음보는 사람들과 팀을 구성해야 했습니다. 몇몇은 빠르게 자신이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고, 먼저 말을 걸었던 사람들은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반면, 가만히 간택되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결국 팀 구성원에 불만이 있더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죠. 익숙하지 않나요? 학생들은 매년 새학기에 들어갈 때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됩니다. 어른들은 다를까요? 똑같죠. 새로운 회사에 취직하고, 이직할 때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어떤 단체나 동아리에 들어갈 때에도, 종교활동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요할 때에는 외향성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에서 타인에게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아가기만 한다면, 그 사람의 내면이 깊어질 시간이 없어요. 인격적인 성숙함에 도달한 사람은 ‘모두’ 충분한 내향성과 사색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무런 방해 없이 혼자 깊은생각에 빠져있는 시간은 꼭 필요하고, 이 시간들이 모여 우리의 인격과 사고력이 웅덩이 수준에 그칠지, 혹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가 되도록 이끌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감정과 사고의 조절 - 스위치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하나의 ‘작동원리’를 말씀드릴 수는 있습니다. 감정과 사고는 다른 것들과 달리 꽤나 배타적인 특성이거든요. 그래서 일종의 ‘스위치’처럼 작동하곤 합니다.
맞아요. 한 쪽을 켜면, 다른 한 쪽은 꺼지는 방식이죠. 두 개를 동시에 누르는 애매한 작동은 어렵습니다. 사람은 그런 식으로 설계되었거든요. 뇌 과학과 심리학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니 이것은 제 스스로의 생각이 아닌 꽤 정확한 설명입니다. (꽤 흥미로운 내용이니 '파충류의 뇌'라는 키워드로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시면 좋습니다)
그래서 처해있는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정을 억제하고 사고를 써야하는 상황에 오랜 시간 노출되는 사람은 사고가 발달할 것이고, 그에 따라 감정에는 무뎌질 것입니다. 반대로 사고를 요하는 일들 보다는 감정이 우세한 상황에 익숙한 사람은 당연히 사고가 무뎌지고 감정이 풍부해지겠죠.
그래서 나름의 방식이 있다면, 어떤 환경을 조성하느냐에 따라 그것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을 거에요. 두 가지를 일정하게 작동시킬 수 있도록 알맞게 환경 자체를 구성한다면 두 가지 모두가 각자 발현하고 발전할 수 있게 되겠죠.
이를테면, 일을 하는 상황에서는 사고적인 방식으로 임하고, 여가 시간에는 친구들과 감정을 끌어올려 대화를 나누고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감정에 대해 잘 모르실 수도 있어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감정을 발달시키는 것은 ‘대인관계’입니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하는 것이고, 그래서 MBTI 검사를 해보면 상대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 묻는 지문에 대한 답이 스스로의 감정을 느끼는 정도 만큼이나 중요하게 F 척도를 구성하는 것입니다)을 하는 식으로 감정을 발전시키는 것이죠. 이런 양면적인 것은 어느 한 쪽이 가면을 쓴 가식적 모습이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스스로의 두 가지 모습에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고와 감정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고, 장단점이 뚜렷합니다. 이성적인 면은 ‘감정 기복’을 줄여주며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극에 무딘’ 사람이 되게 해줍니다. 이것은 꽤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 성숙함의 가장 높은 척도 중 하나이며, 갑작스러운 일이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니까요. 하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감정 기복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에 비해 다양한 자극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더 풍부한 감정을 느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MBTI에서 가장 감성적인 유형이 INFP라고 하죠,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들은 타인에 비해 섬세하며, 작은 일에도 크게 감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의 상황에서 상처도 훨씬 쉽게 받는 것이죠. 이들이 느끼는 세상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세상과는 아주 다릅니다. 어떠한 자극도 더 크게 증폭되어 마음에 닿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감성팔이’라고 느끼는 기아대책의 모금 광고에 눈물을 흘리고 충동적으로 후원을 하기도 하죠. 감정을 깊이있고 풍부하게 느낀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감정에 무딘 이들은 삶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쉽지 않기에 그들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아주 큰 무언가의 사건이 필요하고,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삶에 재미를 잃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감정에 무디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우울함이나 기복을 적게 느끼는 대신, 즐겁고 행복한 감정 역시 그만큼 적게 느끼거든요. 특정 감정만 크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에상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나는 어떤 것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이야’라는 것을 안다면, 그것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셨으면 좋겠고, 자신의 성격에서 단점만 찾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성격은, 반대쪽에 있는 누군가가 되고 싶어하는 워너비의 모습일테니까요. 하지만, 한 쪽으로 너무 치우쳐져 있다면 위의 방식으로 어느 정도 중간에 수렴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감정과 사고는 한 쪽으로 치우쳤을 때 놓치는 것이 다른 어떤 축보다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계획성과 즉흥성의 조절...
은 아직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나중에 통찰이 생긴다면 다시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과 꼭 전하고 싶은 말들
이렇게 열심히 적었지만, 사실 이 모든 성격의 흐름은 의식하지 않으면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한 쪽이 극단적으로 발달하면, 스스로 그것의 단점과 불편함을 크게 느끼게 되어 반대쪽을 갈망하고 추구하게 되고, 그렇게 수없는 반복을 거친 후에는 결국 중앙에 수렴한다는 것이 그네 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마무리되는 시기가 보통 40대 이후이기 때문에(물론 사람마다 편차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MBTI를 논할 때에도 그것이 40대 이전까지는 계속 유동적으로 변하는, 고정적인 특성이 아닌 것임을 강조하는 거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MBTI는 유사과학이라거나 허무맹랑한 무언가가 아닙니다. 유튜브에서 짤막하게 본 각 유형별 설명같은 것을 외운다고 MBTI를 잘 아는 것이 아니며, 그 원리와 핵심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결국 사람을 16가지 유형에 가두는 편협한 시각 속에서만 살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의 정수를 이해한다면 당신은 인간관계의 반은 마스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는 나와 상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필요하고 상대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필요한데, 후자를 마스터한다면, 전자 역시 쉬워지거든요.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것에도 충분히 도움이 되니 이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분명 좋은 시작일 것입니다. 사람의 성격과 심리,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일이에요. 냉장고 하나가 작동하는 원리도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우리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부해야’하는지 저는 아직도 감이 오지 않습니다. 정말 그것을 알고싶다면, 최소한 꾸준한 시간을 들여 책을 사고, 강의도 들어보고, 공부해보는 건 어떨까요. MBTI 역시 좋은 수단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MBTI의 순기능도, 역기능도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충분한 대화와 교류가 있기 전까지 상대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것을 파악하는 동안 상대에 대한 맞춤 노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 파악하기 전에 관계가 정리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어떤가요. 처음 보면 MBTI가 무엇인지부터 대뜸 물어봅니다. 이런 문화가 올바르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쉽게 상대의 MBTI를 묻는 사람들은 대개 그것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해당 유형별 특징이나 찾아보는 사람일테니까요. 하지만, 각 유형의 의미와 행동패턴, 사고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분명 중요합니다. 상대에 따라 적합한 상호작용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은 관계의 기본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고작 한 마디의 답변으로 상대의 MBTI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처음부터 쉽게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열쇠이자, 그 사람의 ‘현재 성격’이 어떠한 지 알게 해주는 시간 절약 도구라는 점이 바로 순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에 맞는 배려를 하는 것은 당신이 누구와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치트키입니다. 아주 정적인 사람에게 익스트림 스포츠를 함께 하자고 권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며, 내향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일주일 내내 불러내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을 ‘귀찮은 사람1’ 정도로 여기게 하는 것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나의 행동방식만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의 행동패턴에 맞춰보는 것도 당신을 발전하게 함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때로는 즉흥적인 친구와 함께 무계획 여행을 떠나보기도 하고, 어떤 특별한 장소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친구와 산책을 다니며 대화를 나누기만 하는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많은 이들이 인간관계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그것은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충분히 상대를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될 거에요.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결국 사람을 얻지 못합니다. 관계의 문제에 늘 남탓만 하지는 마세요. 인간관계에는 자존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의 팔이 뻣뻣하다면 어깨동무를 할 수 없을 것이고, 손이 뻣뻣하다면 악수를 할 수 없겠죠. 부당한 일에도 고개 숙이라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있어서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때로는 서로 조금씩 굽혀야 보이는 세상이 있으니까요.
이 짧은 글이(길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ㅋㅋ) 당신의 인간관계를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는 없음을 알고 있지만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 작은 도움이 되었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몇 시간 동안 카페에 앉아서 마신 커피 두 잔의 값보다는 크겠죠..?ㅋㅋ
고작 25살의 대학생이 적어본 인간관계론이라니.. 웃기긴 하지만 가장 자신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제게는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이 바로 그것입니다. 앞으로 적을 수평적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과 인간관계의 유한성을 인정한다는 것에 대한 고찰에 대해서도 기대해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