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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서양화에만 열광할까?

동양화가 아니라 조선화라 부르자

by 폴린


인문학으로 이해하는 조선시대의 미술정신! 조선판 다빈치코드!

우연히 TV프로그램 <어쩌다어른>이 나오는 걸 보고 온 가족이 본 적이 있다. 언젠가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이었던 터라 관심있게 보기 시작했는데, 마침 주제가 '한국 미술사'편이었다. 나는 한국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서양화도 그닥..) 더 눈여겨보았다. 거기다 강사님은 수능 강사로 유명했었던 최진기 쌤! 최근엔 어른들을 상대로 인문학을 가르치신다더니, 요즘 tv에도 많이 나오시나 보다.

최진기 쌤은 서양화만 중시하고, 동양화는 관심이 없는 한국 사람들을 꼬집었다. 나 역시 서양 것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다르다고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네나 밀레, 피카소의 작품 등 서양화를 보는 것은 공부하고 싶어하면서도, 김홍도나 이중섭, 김정희 등 동양화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안 가져왔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때 미술 교과서에서 본 게 다인 것 같다. 심지어 나는 박물관도 재미없어한다. 외국에서는 루브르 박물관이든 그렇게 찾아다니면서, 우리나라에선 박물관에 가면 따분하다고만 생각해 왔는지. 우리나라를 사랑해야한다고 소리 높이면서도, 나부터가 '애국자'가 아니었다. 나부터 우리나라를 사랑해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자랑스럽게 우리나라를 소개하고, 그들도 우리나라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그냥 미술만 본게 아니라, 역사만 배운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해왔던 내 생각에 대해서 경각심을 갖고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렇게 서양화를 더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양화(아니, 조선화)를 볼 때도 서양적 사고로 본다고 한다. 색감이 화려하고 명암이 뚜렷하고 컬러풀한 서양화를 보면서는, '멋있다, 예쁘다'고 하지만, 흰 도화지에 먹으로 쓱쓱 친 듯한 난 그림을 보거나, 호랑이가 눈을 부릅 뜨고 있는 조선화를 보면서는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우리 그림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양적 관점에 익숙해진 우리는 조선화를 보면서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1.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보라.
2. 서양, 중국, 일본 그림과 비교하면서 보라.
3. 시서화(시,글,그림)를 일치시켜 보아라. (서양화에는 없고, 조선화에만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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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우리가 흔히 '동양화'라고 지칭하는 것을 '조선화'라 정확히 불러줘야 한다고 최진기 쌤은 연거푸 강조했다. 동양화는 한국, 일본, 중국을 모두 지칭하는데 실제로 세 나라의 나라는 각각 다른 성격을 가지며, 각 나라별 그림을 구분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첫번째 그림, 김홍도의 <황묘농접도> :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희롱하다.
각각의 그림이 의미하는 게 다르다. 고양이는 70세, 나비는 80세, 패랭이꽃은 청춘, 바위는 불변, 제비꽃은 변치말라는 의미이다. 즉, "젊음을 변치말고 건강을 유지하세요."라는 의미로 어르신들께 드리면 좋은 그림이라고 한다.

두번째 그림, 조선 후기 대표민화 <까치와 호랑이>
길조인 까치를 시켜 용맹스러운 호랑이에게 전달하는, 즉 복을 비는 그림이다.

세번째 그림, 김홍도 <해탐노화> : 과거에 급제해 왕이 주는 고기를 먹어라.
게의 등껍데기는 등갑. 소과, 대과 모두 1등을 하라는 의미로, 수험생들에게 합격을 기원하며 주는 선물로 적합하다.

그림 하나에 의미하는 게 저렇게 많다니. 의미를 알고 다시 그림을 보니,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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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왼쪽부터) / 일본화 / 조선화


위의 그림들에서 알수 있듯이, 서양화는 빈틈 없이 배경까지 칠하며 화려하고 전체 모습을 다 보여주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일본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아래> 그림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나라답게 '과장'과 '생략'이 보인다. 파도치는 모습이 매우 과장되며,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을 생략함으로서 일본화의 특징을 살리고 있다.
반면 조선화 어몽룡의 <월매도> 그림을 자세히 보면, 책을 칠하지 않고 뻥 뚫린 채로 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지 않고도 그려낸 조선미술. 조선화에서 볼 수 있는 '여백의 미' 중에서도 으뜸인 그림이다. 블로그에 많은 그림들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영상 강의에서는 계속해서 다양한 예시그림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비교론적 관점으로 서양붓과 동양붓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점을 바로 알 수 있다.
서양붓은 납작하고 둥근 형태로 그림이나 면에 적합한 반면, 동양붓은 끝이 뾰족하여 글씨와 선에 적합하고, 난을 치는 등 '여백'을 남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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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를 봐서도 동서양 초상화가 각각 다르다. 서양에서 초상화로 유명한 램프란트의 초상화들은 빛에 따라 명암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지만, 조선의 초상화는 딱 보자마자 명암이 없어 단순하다고들 말한다. 이는 정신을 표현하느라 표정이나 희노애락, 또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명암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부터 선비는 인의예지를 갖춰야 하여, 희노애락을 드러내지 않았다. 반면 광대는 얼굴에 희노애락을 마음껏 드러내어 천한 신분으로 홀대받았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나이가 지긋하고 인품을 갖춘 남자만이 초상화를 그릴 수 있었다.

우리가 미스코리아를 선발할 때, 진-선-미 순으로 선발하는데, 이는 각각 선천적인 미(美), 자라면서 배우는 선(善), 나이가 들어 인품을 갖추면 참되다 진(眞)을 뜻한다. 즉, 조선시대 진을 갖춘 사람만이 초상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의 초상화를 중국과 일본과 비교해도 확연히 다르다.
먼저 중국의 초상화는 왜곡이 심하다. 뚱뚱했던 양귀비를 매우 날씬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일본의 초상화는 사실적이나, 웹툰처럼 생략이 많다. 반면 조선의 초상화는 과장과 생략이 없으며, 있는 그대로 정신을 그렸다. 터럭 한 올이라도 다르면 그건 좋은 초상화라 여기지도 않았다. 사시는 사시대로 곰보는 곰보대로, 극사실주의를 그렸다.




40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과연 TV프로그램이 바보상자로만 치부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 시간이었다. 평소 공부하라면 절대 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 분야를, 이렇게 쉽고 재밌게 tv특강으로 들을 수 있음에 기분이 좋았고, 또 감사했다. 이제라도 이걸 배웠다는 것에. 이번 계기를 통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관람할 때 나는 관람 자세부터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 미술사에 관심이 없었던 나를 크게 각성시켜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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