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창밖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시내를 왔다. 요 몇 달 차를 타고 다녔더니, 버스시간을 기다리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타는 버스가 괜스레 반가웠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어쿠스틱 콜라보 노래도 제법 오랜만이다. 모든 게 일상적이면서도 반갑고, 또 기분좋은 일상이다. 학생 때만 하더라도 매일 반복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은 느낌도 새롭다.
날씨가 제법 흐린데도, 성안길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난 북적이는 시내를 싫어하지만, 오늘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거리를 좀 더 걷고 싶어졌다. 경쟁하듯 세일로 도배를 해놓은 화장품 로드샵을 지나쳐 맘에 드는 카페를 찾아본다. 오늘은 창가에 앉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까? 저긴 1층뿐이라 별로고, 저긴 할인이 되던가? 저긴 커피가 별로야. 그래, 여기가 좋겠다. 언제나 하는 고민이지만, 돌고 돌아 결국 들어간 곳은 항상 오는 또 그 카페다.
뭘 시킬까 고민도 머릿 속으로 뭘 마실지 수도 없이 왔다갔다 하지만, 결국 시키는 건 또 아이스 아메리카노. 오늘은 좀 새로운 걸 마시려다가도, 결국 원두 향이 짙고 깔끔한 아메리카노가 제일 좋다.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데, 문득 누군지도 모르는 그들의 드라마가 보였다. 벤치에 앉아 신발끈을 묶어주다 빵 터지는 커플도, 엄마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니 딸이 엄마를 말리면서 웃고, 초등학생 남짓한 소년이 소녀 손을 잡고 지나가고, 입이 뾰루퉁하게 나온 여자친구를 보고 어쩔 줄 모르는 남자친구. 남자 둘이 만났는데, 둘다 싱크로율 99%의 스트라이프 티를 입고 나와 서로 창피해하며 걸어가는 모습까지. 그 몇 초간 창 밖을 지나간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내가 있었다. 나도 한 번쯤 겪어봤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우리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환상(fantasy)와 논픽션 사이에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 재벌 2세같은 남자가 우리 인생에 나타나진 않지만, 분명 그들의 설렘이나 행복한 그 감정이 우리에게도 있다. 그래서 우린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모습에 공감하면서 울고 웃으며 빠져드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도 우리 개개인의 드라마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드라마 주인공 같은 신데렐라 스토리나 성공 스토리가 없는 것 같지만, 가만히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그런 드라마 같은 순간들이 생각났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그런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사랑에 빠질 때 콩깍지가 씌인다고 한다. 그러면 다른 어떤 커플들보다 우리가 더 특별한 것 같고, 우린 정말 운명처럼 만난 것 같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한다. 그렇게 우리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것 마냥 행복해진다. 아니면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시험에 합격하거나 입사할 수 있게 되거나, 그렇게 나에게 행운이 온 것 같은 그런 드라마 같은 순간들. 아니, 이렇게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우리의 오늘이 지루하지않고, 오늘답게 살아내면 그 뿐이다. 우리의 일상을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것이라 치부하지 않고, 여행자의 마음으로 새롭게 본다거나 우리 동네 모습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지인들을 만나는 그 모든 순간을 '지루하지 않게' 살아내면 그것 자체로 드라마가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오늘 카페 창 밖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드라마를 상상하며 흐뭇해졌다. 누군가에게 비춰진 나의 모습 같기도 하고, 또 그들의 일상이 '이야기'가 되어 그들의 '드라마'가 된다는 게 또 신기해서. 이렇게 우린 드라마같은 하루를 또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