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그녀에게, 그리고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
어렵게 꺼내는 이야기에 위로를 건네려다 도리어 내가 위로받은 오늘.
분명 그녀와 나의 고민은 달랐지만, 그래서 나는 함부로 이해한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는 한 마디로 그녀에게 충분한 위로를 건넸다며 스스로 자족하고 돌아설지는 모르지만, 그 한마디의 무게를 알기에, 나는 감히 그녀의 슬픔이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슬픔을 가늠조차 하지 못하지만, 잠깐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책 속 묘사 몇 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들어줄 뿐, 그녀를 이해한다는 말을 차마 건넬 수 없었다. 그녀가 살아온 시간들의 무게와 나의 지난 시간들의 무게가 결코 같지 않음을 알기에, 나는 그저 상상해보고 지레 짐작할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들어줘야 했다. 성격이 급한 나는 들어주는 대신 중간중간 말을 끼어들며 내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그 상황에서 중요한 건 나의 생각이 아니라,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그 시간인데 간과했다. 다시 만나면, 더 많이 들어줘야지 반성해본다.
힘든 이야기를 담담하게 꺼내는 모습에, 내가 도리어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그 상황이었더라면, 혹은 그녀처럼 힘든 감정을 겪는다면, 나는, 아마 무너질지도 모른다. 상처받는 걸 너무도 두려워하는 나는 또 흔들리고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건강하게 잘 이겨내고 있는 그녀를 보니, 멋있어보였다. 이렇게 긍정적이고 건강한 마음가짐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며, 나는 잠깐의 이 슬픔이 그녀를 가로막지 않길 바랐고 앞으로도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녀는 충분히 그런 에너지가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그렇게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하는 이유를 또 배웠다. 나도 그녀처럼 건강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상처받은 그녀를 보면서 나는 상처받았던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리고 상처받았던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언제든지,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또 상처받을 수 있을거야.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 사람들 때문에 혹은 그 순간때문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상처주진 말자.
그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순간이 있었을 뿐이다. 그가 날 미워해서 그럴 거야, 아마 이런 거 때문일테지 하고 상상하고 과장되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더 힘들게 하지 말자.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내 생각이 더 큰 상처를 내기도 하니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내 생각을 키워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내가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이끌어내주거나 혹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나를 더 따뜻하고 착하게 살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행복해진다.
나를 더 잘 살게 해주는 사람들. 내가 잘 나가게 해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마음이 느껴져 내가 더 잘해주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내가 더 예쁘게 착하게 살고싶다는 마음을 자꾸만 들게 해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내 삶에 가장 소중한 자산일 거라고 다시 확신하게 된 오늘.
11월의 어느 보통날, 소중한 걸 배운 날은 나에게 더 이상 '보통날'이 아니다.
이런 소중한 순간들은 기록해서 두고두고 남겨 꺼내봐야지- 그녀에게 참 고마운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