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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Oct 16. 2020

나한테 정작 필요한 건, 소설책 한 권이었다.

내가 요즘 소설책에 푹 빠진 이유

요 몇 주간 연달아 소설책을 읽고 있다. 

평소 같으면 자기 계발서, 인문학 책처럼 단기간에 많은 지식을 얻기 쉽고 주제가 명확한 책을 읽거나,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땐 저자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에세이류를 주로 읽었던 나였다. 

그런 책들은 읽고 나서 머리에 키워드나 주제가 뚜렷하긴 했지만,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추가로 들여다보거나 공부하지 않는 이상 머리에 오래 남지 않았다. 

다만 여러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단기간에 나에게 '주입'시킬 수 있다는 점에선 용이했다. 




평소의 내가 읽는 책들

하지만 이렇게 인풋만 있는 독서는, 지금의 나에겐 가장 경계해야 할 독서였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보고 들으면서, 나는 나의 주관을 뚜렷하게 했는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접하느라 나의 생각과 의견은 제대로 세우지 못했던 건 아닐까. 

책을 읽음으로써 나의 생각을 더 단단히 하기도 하고 혹은 아예 무너뜨리고 다시 세울 줄도 알아야 했다. 

머리론 알면서 책을 읽고서 내 생각을 정리하거나 글로 남기지 않으면 또 어디론가 흩어져버리곤 했다.


내가 그동안 자기 계발서나 인문서적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아마 세상에 대한 조바심이 아니었을까.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단기간에 뭐라도 남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사한 마음도 있었다.

어쩌면 이런 책들은 한 권만 읽고 나면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을지언정, 

내가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이해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책들이기도 했다.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는 절대 말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고를 때 가장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분야가 바로 '소설'이었다.

소설은 한번 빠지면 드라마에 빠지듯 훅 하고 그 가상세계에 빠져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좋아했지만,

그런 점에서 나에게 소설은 '킬링타임용'으로만 생각되기도 했다. 

드라마보다야 낫겠지만, 읽고 나서 흥미로운 줄거리 외엔 딱히 남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소설책만 연달아 읽어보면서, 정작 나에게 필요한 건 소설책이었다는 확신이 든다.

<9번의 일>, <모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경애의 마음>, <스토너>, <시선으로부터> 등 

소설책만 이렇게 연달아 읽는 게 중고등학생 때 이후로 참 오랜만이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책 속의 누군가가 되어보기도 하고, 읽는 내내 내가 아는 실존의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했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가면서

내게 정말 필요한 건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 

그리고 책을 통해서 내 주변의 사람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었을까.   


예전에 '킬링타임용'으로 읽었던 소설책을 다시 읽어보면서, 

예전엔 그냥 넘겼을 법한 표현에 밑줄을 치고 페이지 한편을 접어가면서, 

말 그대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읽어나갔다.

나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는 주인공의 감정 표현에 공감을 하기도 하고, 

작가가 사람들의 마음들을 눈앞에 꺼내어놓고 소설을 써나가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사람들이 말하지 않지만 누구나 느낄 법한 저 깊은 속내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에 경탄하기도 했다.



선배는 "우리는 육체에 봉인되었지만 상상력과 기억의 힘으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감독이 인터뷰한 기사를 읽어주었다. 그때 경애가 그 '봉인'이라는 말을 얼마나 필사적으로 붙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에는 육체 너머의 것이 있다는 것, 어떤 사랑은 멈춰진 기억을 밀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 사라진 누군가는 그렇게 기억하는 사람의 인생에서 다시 한번 살게 된다는 것.

- 김금희, <경애의 마음> 중에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혹은 시간을 뛰어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선사시대, 중생대, 고생대 뭐 그런 학교에서 배운 옛날처럼 물속에 잠겨 있었던 것처럼, 물 위의 세계가 다 망하고도 계속 잠겨 있을 수 있을 것처럼.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중에서
우리는 이제 안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일들이 수두룩 하다는 사실을. 아니,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는 걸. 그렇다면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한 일들은, 사랑했으나 내 것이 될 수 없었던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중에서


소설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만 나 자신이 작고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나를 부끄럽게 여길 줄 아는 것은, 독서를 통한 꽤 긍정적인 변화다.

나의 가족, 직장 동료들, 친구들. 현실세계의 좁은 나의 인간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맞닥뜨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내가 안다고, 이해한다고, 공감한다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단편적인 인간이 아니라 굉장히 입체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내 마음이 여러 갈래로 잘게 쪼개져있듯, 

모든 사람들은 한 마디로 그 사람을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심오한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성격이나 심리, 마음까지 너무도 입체적이어서 '착하다', '나쁘다'며 이분법적 사고로 나눌 수 없다는 걸,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서로 인지하고 대할 수만 있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는 꽤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소설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며 다시 한번 생각하고 말하기도 하고,

어쩌면 그 사람이 이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하며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어긋나고 틀릴 것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들일 거고, 나는 그들과 계속해서 부딪칠 것이다.

하지만 소설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좀 더 아껴주고 생각해볼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시행착오를 반복해가면서, 사람 때문에 피곤한 세상이 아니라 사람 덕분에 따뜻한 세상을 살아가지 않을까.

오늘 밤, 요즘 꽂혀 읽고 있는 김금희 님의 <경애의 마음>을 마저 읽다 자야겠다.

@경주 황리단길, 문학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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