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향을 담은 글을, 나는 쓰고 있을까?
그녀의 글에서는 그녀의 향기가 났다
글에서는 그 사람의 향기가 묻어난다고 했다.
진부한 자기소개를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아도,
그 사람이 쓴 글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의 말투, 행동, 마음까지 은은히 베어
그 사람을 알아가게 되기도 한다고.
글쓰기 입문자인 나는
그 표현이 멋지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
몇몇 지인들에게 브런치 아이디를 공개했다.
구독자 한 명 한 명이 늘어나는 것이 즐겁고,
글을 읽고 눌러주는 하트와 댓글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신기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함께 브런치 작가가 되었던 지인 중에는
글 쓰는 이의 존재를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사진과 작가명과 프로필을 사용하여 글을 쓰며
가족에게도 브런치에 발행되는 글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나는 지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그 지인이 그리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나의 마음이나 일상을 담은 글을 쓰고 싶을 때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는다는 것이 불편하다
어쩌면 그들이 알고 있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닐 수도 있고,
나의 진짜 모습을 꺼내 놓기가 걱정스럽고
용기가 나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짓지 않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글을 솔직하게 던지고
글로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그런 경험을,
이제야 다시 해보고 싶어진 것도 같다.
어제저녁 브런치에 오랜만에 글을 올리고
브런치의 이런저런 글들을 읽어보는데
낯섦보다 익숙하고
거리감보다 친근함이 느껴지는
초면의 작가의 글을 발견했다.
친구였다.
진짜 그녀였다.
솔직하게 적은 그녀의 작가명이 아니어도
나는 그 친구의 글만으로도
그 친구를 알아봤을 것 같다.
글에는 그 친구가 좋아하는 것들,
그 친구가 함께하는 것들,
그리고 그 친구의 발자취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글쓰기를 칭찬하고 응원하며
읽고 쓰는 행복을 아는 친구.
너무도 반가웠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 친구도 내가 알아봐서
혹여나 글쓰기가 더 불편해졌을까?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이 책을 얼마 전에 읽었는데
친구의 글에도 이 책 내용이 있었다.
어느 누구의 글쓰기가 용기가 필요치 않겠냐만은
아직 보여주기에 급급한 나의 글쓰기보다는
훨씬 더 내려놓고 내공이 쌓인
글쓰기를 실천중일 거라
(내 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타지 생활 중이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 친구를
브런치로 만나 더 반가운 그 친구를
천천히 향기를 음미하며 더 알아가야겠다.
말로만 듣던
‘글에서 사람의 향기를 느낀 순간’을 경험하니
몹시 궁금해졌다.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의 글을 읽고 나의 향기를 느끼고
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의 향을 담은 글을, 나는 쓰고 있을까?
나를 믿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와
얼마나 많은 글쓰기가 필요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