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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지 Jun 12. 2023

무언의 압박템_해석의 중요성

디지털 원시인 아줌마에게 온 불쌍한 아이패드

발이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있는 그가 불행해 보이진 않는다. 세상을 거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 관점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中 -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中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시선과 관점, 생각과 해석의 차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사물과 현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생각하고 해석한다는 것이 늘 있었던 사실이라 익숙하지만, 또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을까 때로는 낯설고 새롭기도 하다.


다른 사람과의 차이는 물론이거니와, 가끔은 나 한 사람에게 있어서도 처해있는 상황, 시간의 변화, 마음 자세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관점을 달리해서 보는 경우가 생기고,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사실에 대해서 매우 긍정하는 마음으로 끄덕끄덕 하다 보면  

“너 지난번에는 아니라며?”

상대가 이렇게 반문을 하는데,

“내가?”라고 말하며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야”라고 재치 있게 넘기지만,

그때의 내가 어찌 내가 아닐 수 있겠는가?


새로운 시선과 관점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생각과 해석을 하게 된 새로운 내가 된 것일 뿐.



채니에게 수학 연산 문제집을 처음 사줬을 무렵 지우개가 닳는 속도가 밤낮으로 바르는 내 립글로스 줄어드는 속도보다

빠를 때가 있었다. 자꾸 틀려서 지우고 고치다 보니 지우개 사용량이 최대치를 찍었던 것인데, 채니의 흰색(사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굳이 고집부리며 산 하얗고 하얀색) 책상은 지우개 똥으로 가득했고 그리 깔끔한 편도 아닌 나조차도 볼 때마다 심기가 좋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저녁마다 인상 쓴 얼굴로 채니에게 청소를 재촉하게 되었다.

이래야만 하는것이냐

그래서 (야심 차게) 준비했다. 지우개 가루 청소기. 휴지로 쓸거나 빗자루로 쓸어서 휴지통에 넣을 필요도 없고, 가끔 한번 지우개 청소기만 비워주면 되니 엄마 입장에서는 아주 ‘굿템, 꿀템’인 셈이었다. 그리고 사실 채니에게는 무언의 압박템이 되길 바랐다.

엄마의 선물-청소 좀 하라는 무언의 압박템

‘엄마가 나에게 책상 청소를 잘하라고 주는 물건이구나~~!!’하면서…


그런데 지우개 청소기로 무언의 압박이 통하기는커녕 채니 기분을 업 시켜줄 귀엽고 예쁜 선물이 되어 채니가 가지고 있는 인형 장난감 중 하나가 되어있었다.


“엄마 고마워! 이거 너무너무 귀엽다. 잘 쓸게.”

“어, 그렇지, 너무 귀엽지. 책상 청…….”


벌써 신이 나서 가버리고 없다. 어라… 이게 아닌데;;




얼마 전 아이패드가 생겼다.

아이패드라…

아이폰도 맥북도 써본 적 없는 나에게, 갤럭시 휴대폰도 단순 연락기능만 사용하며 전혀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나에게,

아이패드라…

원시인에게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를 던져준 격이다. 집사를 잘못 만난 고양이마냥 이 아이패드가 불쌍해지며

이 아이패드가
굳이 나에게 온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물론 남편은 한두 푼 아닌 이 물건을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길 바라며, 내가 잘 사용하길 바라며 건네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물건이 그리 순수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책을 출간한 지 2년이 지났다. 작가라는 호칭도 함께 생겨났다.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책을 쓰는 일은 이제 나에게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글을 쓰는 일과 책을 쓰는 일이 함께 묶이며 부담스러워졌고, 단순한 글을 쓰는데도 계속 작은 용기가 필요해졌다.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잘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는데 잘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글을 놓은 지가 오래되었다.

이런 나에게 남편이 준 이 아이패드는
무언가 새롭게 다시 글을 시작해 보라는
‘무언의 압박템’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어떤 선물이건 어떤 의도로 주었는지보다 어떤 의도로 받아들이는지가 참 중요한 것 같다.


순수한 의도를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순수하지 않은 의도를 의외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순수한 의도를 내 맘대로 순수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채니가 나의 무언의 압박템을 순수하게 장난감으로 받고 신나 했던 것처럼,

내가 남편의 순수한 의도(가 아닐지도 모르지만)를 무언의 압박템으로 받고 부담스러워했던 것처럼…


그러니 이 ‘무언의 압박템’을 다시 해석하고 받아들여 보아야겠다. 나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이 물건을 열심히 공부하고 잘 활용해 보아야겠다.

집사를 잘못 만난 고양이 신세가 되게 할 수는 없으니…  


어쩌면 40대 아줌마의 신무기,  
‘변화의 시작템’이 되어 줄수도 있으니…

다 마음의 문제이니라~~

‘이깟 아이패드……’

역시… 해석을 달리하니,

‘무언의 압박템’으로
‘무언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모든 압박감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그것을 활용하여 뭔가를 이루지 못하면 그것에 자신이 당할 수밖에 없다.
                                               -영국 육상선수 세바스찬 코


그런데 은근 압박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이렇게 다시 또 글을 쓰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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