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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지 Sep 13. 2023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을 읽고

독서 리뷰

 브런치에서 독서 리뷰 제안 메일을 받았다. 이런 것도 받을 수 있구나 처음 알게 되었다. 도서를 무료로 증정받을 수도 있고, 기한 내에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책을 주구장창 붙잡고 있지 않을 것 같아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읽고 리뷰를 남겨본다.

 

셰한 카루나틸라카’가 쓴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은 2022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이며, ‘삶과 죽음,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저승 누아르’라고 심사평을 남기기도 했다. 소설의 내용도 두께도 쉽게 읽을만한 가벼운 소설은 아니었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으며 상황을 파악하느라, 2인칭 시점 서술에 적응하느라 속도가 더뎠다. 하지만 4~50페이지를 읽다 보니 적응했고 두 번째 달이 시작하는 부분부터는 어느새 굉장히 몰두하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전체 페이지는 무려 547페이지)  


 소설을 읽으면서 뭔가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서술형태가 2인칭 시점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너는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 통로로 향한다.’이런 식. 다른 사람을 묘사할 때도 그렇다. ‘그는 너를 마주 보고 있다. 얼굴이 그늘에 가렸지만, 소년이다.’이런 식. 하지만, 2인칭이어도 전지적 시점으로 마음을 드려다 보고 묘사한다. ‘너 자신을 꼬집어 보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와 키스했던 남자들이 다 그랬지’ 너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입밖에 내지 않는다. 이렇게… 읽다 보니 그 서술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긴 했다.


 소설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나를 죽이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그 상황이… 내가 왜 죽었고... 내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아가는 그 흐름이… 


 이 소설의 주인공 ‘말리’는 살해된 뒤 이승과 저승의 중간계에서 눈을 뜨게 된다. 언제 어떻게 어디서 죽었는지 그리고 누가 죽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말리는 일곱 개의 달이 뜰 때까지 빛으로 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아가며 스리랑카의 현실도 함께 보여주는 내용이다.


 글의 내용 중 스리랑카의 참혹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도 상당했는데, ‘정부의 폭탄 공격과 반군이 설치한 지뢰 사이에서 새우 등이 터지는 민간인 같은 사후’라는 표현이나 ‘80년대의 스리랑카에서 ‘실종된다’는 수동형 동사로서 사는 지역, 종족에 따라 정부 혹은 …(중략)… 너에게 행할 수 있는 일이다.’ 혹은 ‘이 나라에 야생 천산갑의 서식지가 사라지는 문제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이런 표현들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스리랑카라는 나라의 상황에 대해서 잘 몰랐다. 스리랑카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도 처음이었던 것 같다. 불교 신자인 싱할라족과 힌두계인 타밀족의 갈등이 역사적으로 뿌리가 싶다는 것도, 1983년부터 2009년까지 25년간 이어진 스리랑카 내전에 대해서도, 이 나라가 겪은 잔혹하고 비극적인 전쟁에 대해서도… 이 소설을 통해 알았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예전에 한국을 자신들보다 더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후 빠른 속도로 모든 면에서 발전을 이루었고 그런 면에서 지금의 스리랑카와는 많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경제적, 문화적 기적에 경이를 느낀다고 하면서 아직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스리랑카, 자신의 조국의 모습을 다룬 이 소설이 현실을 벗어나 서점의 판타지 코너에서나 보게 될 날을 소망한다며 이 소설을 내놓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누구보다 자기 나라의 상황이 안타깝고 그래서 더 나은 상황을 만들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리에게 주어진 일곱 개의 달은 이 책의 챕터에도 해당하는데 그 시작 부분에 쓰여 있는 글귀도 좋았다.   

첫 번째 달
아버지, 그들을 용서하시옵소서. 저는 그럴 수 없나이다. -리처드 드 소이사

두 번째 달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모든 사람에게 모든 일이 언젠가 일어난다. -조지 버나드 쇼

세 번째 달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을 잊고, 잊고 싶은 것은 기억한다. -코맥 매카시, <더 로드>

네 번째 달
“나는 천사다, 나는 어머니들의 눈앞에서 그 첫 아이를 죽인다. 도시를 소금으로 만든다. 심지어 마음 내킬 때는 어린 소녀의 영혼을 빼앗기도 하지만, 지금부터 영원히, 네가 존재하는 한 변치 않을 유일한 사실은, 네가 그 이유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거다.” -그레고리 와이든, 영화 <신의 전사>

다섯 번째 달
너는 나를 불러라. 내가 대답하리라. 나는 네가 모르는 큰 비밀을 가르쳐주리라. -<예레미야서>, 33장 3절

여섯 번째 달
우리가 나 자신인 척 가장하는 모습이 결국 나다. 그러니 어떤 모습으로 가장할지 주의해야 한다. - 커트 보네거트 <마더 나이트>

일곱 번째 달
“신의 선물.” 교도관이 말한다. “신의 폭력… 신은 폭력을 사랑하지. 너도 이해하지, 안 그래?… 그렇지 않다면 왜 이 세상에 폭력이 그토록 많을까? 폭력은 우리 안에 있어. 우리에게서 흘러나와. 우리가 숨 쉬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지. 윤리적인 명령은 없어. 오로지 이것뿐이야. 내 폭력이 너의 폭력을 정복할 수 있을까?” - 데니스 루헤인 <살인자들의 섬>


그리고 읽으며 남기고 싶었던 표현을 정리해 본다.

40 그의 목소리는 모든 선의가 늘 그렇듯 증발한다.

44 너는 죽음이 달콤한 망각이라고 믿었으나, 둘 다 틀렸다. 죽음은 달콤하지 않았고 망각도 아니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악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힘을 지닌 존재. 그것이야말로 치가 떨리는 존재다.

142 “세상의 모든 좋은 것과 모든 나쁜 것을 합하면, 그 장부가 균형을 이룰까요?” “결국 모든 것은 균형을 이룬다.”

147 힘 있는 사람들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벌을 받지 않습니다. 하늘의 모든 신들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꾸어야 합니다.”

183 발코니로 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연기와 웃음이 산들바람을 채울 때면, 여기서 버스 한 번 타면 갈 수 있는 거리에서 끔찍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을 수 있었다. 여기서는 별빛과 콜롬보의 불빛이 노란색과 논색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도로는 고요했고, 대양은 나직하게 호흡했다. 콜롬보는 우리가 누릴 자격이 없는 담요를 안전하게 두르고 있었다.

247. 인류는 언제나 고통을 겪었어. 법으로 금지해서 거시적으로 그 총량을 줄일 수는 있겠지. 하지만 절대 근절할 수는 없어. 아는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 최선이야.

285. 모든 사람이 우주에게 묻고 싶어 하는 질문을 너도 하고 싶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왜 죽을까, 왜 이런 모든 것들이 존재해야 할까. 우주의 대답은 이게 전부다. 나도 몰라, 멍청아, 그만 물어봐, 사후세계는 생전만큼 혼란스럽고, 중간계는 저 아래 못지않게 제멋대로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꾸며낸다. 어둠이 두려워서.



 역사에 대한 아픔이 있지만 희생된 이들에 대한 위로를 전하며, 비극적인 주제이지만 그 주제를 최대한 무겁지 않게
다루려 노력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런 어둡고 참혹한 현실을 보며 작가가 왜 그리 이 작품을 국경 너머까지 알리고 싶어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리랑카에 대해서 몰랐던 나조차
그 상황의 참담함을 느끼고 있으니
작가의 염원이 통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면서

문학의 힘 역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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