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더 누워있고 싶어 침대에 아이들과 나란히 누워 뒹굴뒹굴하면서 물었다.
“얘들아 아침 뭐 먹을래? 1번 계란간장밥, 2번~~~ 계란간장밥, 3번~~~~ 계란간장밥!!”
첫째가 대답한다. ”난 1번 계란간장밥!!”
둘째가 질세라 대답한다. “난 3번 계란간장밥!!”
‘얘네들아, 이렇게 열심히 고르면 엄마가 더 미안해지잖니 ㅠㅠ 나만 이런가?‘
어른이 되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되면 요리는 모두 잘하게 되는 것인 줄 알았다. 역시 세상에는 공짜가 없었고, 요리 역시 저절로 잘하게 되는 영역이 아니었다. 후각 미각이 지나치게 발달한 나는, 개코와 장금이의 입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그 재능으로 엄마가 해주신 음식에 평가를 하고 맛집 음식을 평가나 할 줄 알았지 요리에 관심을 갖거나 흥미를 느껴본 적이 없다.
내 나름의 몇 가지 핑계가 있긴 하다.
온 주방의 기운이 나를 밀어낸다. 엄마는 항상 요리나 집안일은 못해도 된다면서 큰 딸의 주방 일을 한사코 말리셨다. 이런 일은 나중에 다 하게 되고 못한다 한들 살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엄마의 생각이 있었다. 사실 엄마만의 탓은 아니다. 주방에만 들어가면 그릇을 깨거나 손을 다치거나 발등을 찍히곤 하며 곁에서 지켜보는 이를 몹시 불안하게 하는 능력을 타고났던 것이다. 오죽하면 피자헛 알바를 하면서도 그릇을 깨고 음식을 엎는 민폐를 끼쳐 나머지 아르바이트비를 쥐어주어 2주 만에 나가달라고 했을까 ㅠㅠ
그러던 내가 결혼이라는 것을 하여 엄마가 없는 주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요리를 시작해야 하는구나. 직접 요리를 시작한 나는 더더욱 가관이었고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만한 그런 저 세상 음식을 만들어내곤 했다. 남편 생일에 끓여낸 검정미역볶음… 어렵지 않다. 간을 보고 또 보며 간장을 들이부으며 불어나기 전 미역국의 형태만큼의 미역을 넣고 끓이면 완성~~ㅠㅠ 비싼 소고기도 넣었는데ㅜㅜ 못 먹는 검정콩자반을 닮은 검정미역볶음을 보며 정말 망연자실했다. 김치전은 또 어떤가, 전의 물을 맞추기가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던 나는,100 조각난 김치전 (김치 부스러기)를 선보였다.쉬어서 버려진 닭볶음탕은 그래도 모양새를 처음으로 갖춘 음식이었는데 먹지 않아(입은 또 미식가라) 결국엔 한 솥 몽땅 쉬어서 버렸다. 아이 소풍에 싸본 옆구리 싹 다 터진 김밥은 심폐소생이 어려워 주먹밥으로 대체했다...
이렇게 요리에 똥손인 나를 차츰 인정해갈 무렵…
아이가 태어났다. 엄마는 이유식도 만들어야 하고 아이의 성장에 맞춰서 단계에 맞는 맛있는 엄마표 음식을 만들어주어야 했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요리는 못해도 정말 최선을 다해서 만들고 또 만들었건만, 모유도 마다하고 분유도 마다하던 우리 얘들은 도무지 먹는 것에는 즐거움을 못 느끼는 아이들이었고, 굶겨도 잘 먹지 않는 1%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내가 한 요리를 잘 먹어주는 즐거움을 느껴본 적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결국 요리는 나의 영역이 아닌 것인가 의심을 하고 나름 고심을 하던 그때,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았던 것은 나를 대신해 요리에 즐거움을 느끼는 내 주변인들이었다.남편은 요리를 너무 쉽고 맛있게 뚝딱뚝딱해냈다. 시어머니도 이런 나의 요리실력을 아셔서인지 아이들이 굶을세라 반찬을 해주셨고, 친정엄마도 나의 극찬 리액션에 힘입어 반찬을 만들어주셨다. 그래…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걸 해야지... 나는 이런 합리화로 결국 요리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점점 멀어져만 갔다.
이렇게 요리는 다음 생을 기약해야 하나… 하며 살고 있는 나에게, 요새 브런치 작가님들의 요리와 지인들의 요리가 나의 마음을 살랑살랑 흔든다. 계란 간장밥만 해주어 미안해하고 있다는 나의 댓글에 이것도 맛있는 음식이라며 아보카도나 콩나물을 섞어보라는 팁도 주시고, 직접 요리한 음식을 올리며 에세이를 쓰시는 작가님들이나 아이들의 먹거리를 생각하며 아이들 식사와 건강에 진심이신 작가님들, 아이의 도시락에도 진심인 작가님들의 글을 읽노라면 나의 부족함을 절실히 더 느끼며 엄마의 요리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친정엄마 음식을 생각할 때 단일메뉴인 계란간장밥만 생각하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물론 나란 요린이는 겨우 살랑살랑 마음이 동할 뿐, 쓸데없이 줏대 있게 요리에 도전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 이 작은 바람이 또 태풍이 되어 나도 뚝딱뚝딱 멋진 요리를 함께 올리며 글을 쓰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현장체험학습이 취소되었다. 소풍을 못 가서 아쉬워하는 아이들은 안쓰럽지만, 내심 도시락의 부담에서 해방된 엄마는 반가운 마음을 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