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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지 Dec 11. 2023

키오스크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키오스크:

터치스크린 방식의 정보전달 시스템인 무인단말기

프리진 이미지

 키오스크가 있는 카페를 친구들은 보디가드인 것 마냥 나를 지키고 서서 떠나지를 않는다. 주문해서 갈 테니 자리에 앉아있으라고 말해도 내 뒤를 지키고 서서는 요지부동이다. 키오스크 주문으로 몇 번 본의 아니게 죄를 지었던 나는, 그들의 감시에도 할 말이 없다. 사실 주문 실수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1. 사이즈 실수: 생각했던 음료보다 훨씬 큰 음료가 나와 당황하며 “와 이런 컵사이즈 처음 봐~~”를 외치게 만든다.

2. 초기화 실수: 개인 주문사항까지 다 담아 결제를 앞두고 “초기화면”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함께 키오스크 앞에서 장시간 벌을 세우기도 한다.

3. 주문취소 실수: 텀블러도 없으면서 개인컵 이용한다고 잘못 눌러놓고 개인컵을 대령하지 않아 주문이 몽땅 취소되게도 만든다.  

4. 그 외 실수들… 아이스를 따뜻한 음료로 따뜻한 음료를 아이스로 시키거나 크림 올릴 걸 없애고 걸 올리거나 시럽을 잘못 추가하거나 빼버리는 정도는 애교… 아예 시키지 않은 다른 음료를 시켜주기도 한다.


 키오스크를 처음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내가 그 기계랑 친하게 되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릴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나는 비대면 주문에 특히나 약한… 지나치게 아날로그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영화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하고 데이트를 나갔다. 나와 남편(그 당시 남자친구)은 영화관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 팝콘을 먹으며 영화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어떤 커플이 우리 옆에서 한참 쭈뼛쭈뼛하더니 와서 티켓을 보여주며 자기 좌석이라고 했고, 나도 우리의 티켓을 보여주며 우리의 자리라고 했다. “이상하다. 발권 실수인가?”라며 중얼대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빨리 일어나.”라고 했다. “왜?”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나에게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손으로 티켓 날짜를 가리켰다.

세상에… 내일 이 자리를 예약하고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니… 미래에서 날라 온 인간도 아니고…

우리는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전속력으로 도망쳐 나왔다. 티켓 검사하는 직원도 발견하지 못하고 들여보내 주었던 것이다.


 또 한 번은 열차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했는데 타보지도 못하고 돈을 날렸다. 부산으로 가는 내일 열차를 예매해야 하는데 오늘 열차로 잘못 예약하고는 그 사실을 타지도 않은 열차가 부산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아버려 환불도 받지 못하고 돈을 날린 것이다.(부산행 KTX… 비쌌는데…3명 자리였는데…)


아날로그 인간이라 그렇다기에는 좀 과한 나의 전적들...




 키오스크에서 몇 번의 실수를 거듭하앞에만 서면 더 긴장하고 마음이 초조해져서 자꾸만 시야가 좁혀져 오고 메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한참을 헤맨다. 결제에 앞서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받으라는 화면이 계속 나오고 결제수단도 굉장히 많은 것 중에 선택하라고 하니 자꾸만 마음이 앞서서 실수를 하게 된다. 뒤에 사람이 없으면 그나마 낫다. 내 뒤로 줄이 길어지는 것이 느껴지면 어깨는 더욱 움츠려 들고 바빠지는 눈동자만큼이나 손가락도 갈길을 잃고 키오스크 화면을 휘휘 저어댄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키오스크 앞에 서계시는 것을 보면… 나도 이렇게 힘든데 잘하실 수 있을까 괜한 걱정과 염려를 일삼는다. 놀랍게도 나랑 비슷하거나 나보다 잘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교육이라도 받으신 걸까?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지인들은 참 착하다. 이런 실수에도 화를 낸 적이 없다. 아마도 내가 이미 죄인의 얼굴을 하고 삐질삐질을 넘어 송글송글 땀을 흘리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이 지경에 이르면 다른 사람이 주문하면 될 것을.. 계속해봐야 익숙해진다며 또 맡겨준다. 자신이 생각한 음료가 아니어도 잘 마셔준다. 그저… 죄인이기에 감시를 당할 뿐…




 아이들에게 뭐든 자신감이 중요하다며 “오늘도 씩씩하게 오늘도 당당하게 파이팅!!!” 구호를 외쳐주는 엄마인데… 키오스크가 자꾸 나를 작아지게 만들어 씩씩하고 당당하지 못했다.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란다. 그때는 ‘그런가?’하면서 슬퍼했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20년 전에도 이런 사람이었다. 아마도 남편이 나이가 들어 잊었나 보다.(복수 맞음)


 나도 키오스크 앞에서 어깨를 펴고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여유 있게 화면을 넘겨가며, 받을 수 있는 적립과 할인 혜택을 받고 카드 넣을 구멍 혹은 휴대폰을 접촉할 장소를 요리조리 찾지 않고 주문해보고 싶다.


“우리도 어깨 펴고 손가락 휘젓기 없이 멋지게 주문할 날이 오겠지요?”(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 굳게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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