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보았다. 어제 밤보다 덜 아프다는 것을 느끼며 울컥 감사함이 밀려왔다.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바닥에 놓여있는 슬리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불 밖으로 발을 뻗어보았다. 천천히 슬리퍼에 발가락을 넣었다.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우와, 내가 일어섰어.”
눈물이 날만큼 기뻤다. 어젯밤 갑자기 시작된 허리 통증으로 돌아눕기도 힘들고 화장실도 가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웠다. 이러다 새해 첫날부터 병원신세를 져야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혼자 속으로 걱정을 산처럼 하고 있었다. 일 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여서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한다는 설렘에 무리해서 장을 보고 혼자서 박스를 들고 올라온 것이 화근이 되었다. 저녁 준비를 하며 점점 통증이 퍼져감을 느끼면서도 혹여나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아픈 것을 아프다고 다 말하지도 못하고 괜찮다고 아니 괜찮아질 거라고 최면을 걸어가며 버텼던 것이 두 번째 화근이 되었다. 뒷정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입에서 먼저 곡소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아이고, 아야야.”
그때서야 가족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아들이 약국으로 달려갔다. 핫팩과 쿨팩 종류대로 사 와서 허리에 벨트를 두르듯 붙이고 밤을 지냈으니 아침에 눈떠서 일어나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모두가 깨어나기 전이다. 햇살이 환하게 들어온 거실 한가운데 서서 성호경을 긋고 새해 첫 기도를 올렸다.
“고통을 거두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해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으로 순간적으로 두렵고 무서웠던 기억이 기도하는 순간 감사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건강하게 다닐 때는 의식하지 못했던 신체의 소중함을 2021년을 시작하는 아침에 제일 먼저 깨닫게 되었다.
제일 좋아하는 커피 원두를 꺼낸다.
곱게 갈아진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붓고 천천히 물줄기를 내린다. 드립 커피는 향기부터 마시는 그 느낌이 좋아서 매일 아침 의식을 치르듯 정성껏 커피를 내린다. 커피 한 모금을 입안에 머금고 살짝 눈을 감아본다. 따뜻함과 향기로움이 입안 가득 퍼지며 식도를 타고 온기가 움직이고 있다.
“감사합니다.”
가장 일상적인 아침 의식이 또 이렇게 감사함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한 달 전부터 새해맞이용 다이어리를 준비해두고 해가 바뀌길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다이어리를 열고 첫 필적을 남겨본다. 올해의 시작을 건강에 대한 깨달음과 감사함으로 열게 해 주신 의미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2가지 키워드를 적어보았다.
건강, 감사
올 한 해는 갱년기를 몸소 겪는 나이가 될 것이다.
완경도 겪었고 앞으로 다가올 신체적 변화에 놀라지 말고 당황하지도 말고 의연하게 대체하며 꼭 건강한 한 해를 보내리라. 또한 주어진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은 나이가 되었으니 매 순간 감사함으로 살아가야겠다.
하루를 감사히, 일 년을 감사히…….
고통의 두려움에서 해방된 기분이 좋아서일까?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냉장고 안의 식재료를 떠올려보다가 햇 찹쌀로 만든 약밥을 해보고 싶어 졌다. 가족에게 새롭게 도전하는 음식을 맛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사실은 내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음이 사실이다. 아직은 조심스러운 몸을 움직이며 찹쌀을 불리고 땅콩을 삶고 대추꽃을 만들었다. 만들어본지가 오래되어 간장과 설탕, 물의 배합이 확실치 않아서 유튜브를 검색했다. 요리책을 찾아보던 아날로그식 검색 방법을 선호하던 세대가 이렇게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통해 요리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이 찾을 때마다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유튜브 검색 덕분에 맛있는 약밥을 실패 없이 성공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하나 둘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고 10년 만에 처음 만들어본 약밥을 새해 첫 음식으로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어젯밤과 다르게 생생하게 살아난 내 모습에 가족들은 다행스럽게 생각해주었고 앞으로 근력 약한 엄마를 위해 스파르타식 근력훈련을 시켜주겠다고 아들이 농담처럼 이야기를 던진다.
나의 건강이 가족의 건강이 됨을 알았다. 내가 아프니 모두가 걱정하는 그 마음에 나도 몹시 걱정되고 불편했었다.
해마다 사람들이 새해 소원으로 가족건강을 최우선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진부하고 재미없는 대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