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죽음은 잘 준비되고 있나요

12월의 단상, 성탄을 기다리며

by 윤노엘

12월의 갈색빛을 나는 사랑한다.

늦가을이라고 하기엔 많이 지나버렸고 초겨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견딜만한 짜릿한 차가움까지도 덤으로 사랑한다. 메타세쿼이아가 가지런히 줄 서 있는 가로수 길은 보암직하고 걸음 직한 곳 중 하나다. 그러고 보니 꼭 가을에만 걷게 되는 끌림의 이유가 있었구나 싶다. 초록이 주는 싱그러움도 좋지만 울긋불긋 가을의 향연을 마치고 텅 빈 무대를 침묵 속에서 지켜주는 그 고운 갈색빛이 우리 삶을 닮아있다. 나도 곧 그 빛깔을 닮아가겠지. 내 눈에만 고와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갈색빛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주는 것만 같다. 누가 찬탄하지 않아도 돌아봐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지나가는 가을과 다가오는 겨울을 맞으며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12월의 아모르파티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 세 가지 관점에서 평준화가 이뤄진다고 한다. 학력 평준화, 외모 평준화, 경제력 평준화를 말하는 것 같다. 스펙을 쌓고 나를 드러내며 사회적 성공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은 과거의 모습이다. 이제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끌어모아서 인맥을 넓히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즐거움을 누리는데 필요한 지출이 아닌 꼭 필요한 지출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게 된다는 뜻 같다. 즉, 삶의 스트레스가 현저히 줄어든다. 인생이 안온해진다. 출렁임이 없는 삶, 어쩌면 생의 전환기에 맞이하는 선물 같은 자유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저 키다리 메타세쿼이아 갈색빛과 너무나 많이 닮아있다. 평준화, 내가 느끼는 섭리다. 그래서 자꾸만 올려다보게 되고 마음에 그 빛을 담아본다. 요란하지 않게 하지만 우아한 갈색빛으로 내 노년이 채워져나가는 꿈을 꾸게 된다.

키케로는 로마시대 청렴의 상징이었던 대카토의 입을 빌어 노년을 옹호한다. 삶을 깊이 숙고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의 탄식은 대부분 이럴 것이다. 나이 들면 비참하다. 활동할 것도 없어지고 몸도 약해지고 즐거움도 없고 죽음은 지척에 있다고. 수사학의 대가답게 키케로는 하나하나 논박을 통해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려 했다. 우리는 어떤가. 나이 듦이 힘 빠지고 슬프기만 한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내 목소리의 대답을 스스로 만들어본다.


왕관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지만 내려놓을 수 조차 없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스스로 무너지지 않도록 늘 자신을 들여다보고 죽음을 직시하며 살았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막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은 잘 알지 못한다. 나는 그 답을 황제의 삶을 바라보며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죽음을 마주할 것, 겁내지 말 것, 매 순간 치열하게 살 것, 죽음 앞에서는 장렬하게 전사할 것, 그리고 부활할 것, 이것이 황제의 삶을 통해 배운 삶의 철학이다.

활동과 충동과 판단의 정지는 휴식이자 일종의 죽음이지 악은 아니다. 지금 네 생애의 여러 시절, 예컨대 소년기와 청년기와 장년기와 노년기를 회고해 보라. 이 시기의 변화도 모두 일종의 죽음이었다. 그게 과연 두려운 것이었는가? 너 자신에게 물어보라. 인생 전체의 정지도 휴식과 변화도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다.
(명상록 9권 21)



성탄이 다가온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예수님의 탄생, 그분의 생일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움을 나눈다. 내가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날도 크리스마스다. 올해 한국에서는 케이크 판매량이 예약을 안 하면 못 살 정도로 주문량이 많아졌고 40만 원이 넘는 고가 케이크 주문이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왜 그럴까. 예수님 생일인데 왜 사람들은 자축연을 벌일까. 구원과 메시아를 믿지 않는 일반인이라면 이렇게 해석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분은 섭리를 알았고 그리고 죽음을 푸념하지 않고 잘 받아들이신 인류의 표본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죽어야 하는 시점에 잘 죽지 못한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유보하려 한다. 과거보다 현재로 다가올수록 더 그렇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소년기를 잘 마무리하고 죽어야만 멋진 청년으로 우뚝 설 수 있다. 청년기를 잘 지낸 사람은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장년기 그리고 노년기를 맞을 수 있다. 요즘은 나이 든 청년들이 너무 많다. 희끗희끗 자연이 내려준 그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철없는 말투, 어리석은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발적 비혼을 선언하고 YOLO의 삶을 사는 청춘들 또한 청년기를 잘 죽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것들을 선택의 자유라고 착각하고 더 나아가 한번뿐인 삶을 더 잘 사는 방법이라고까지 외친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인상(impression)을 믿지 말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의 내면의 진실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진심을 해석해 보자면 그들은 두려워한다.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도 두려워할뿐더러 죽음도 두려워한다. 그러니 부활의 경험 또한 알지 못한다. 어떻게든 리즈시절을 끌어안고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요즘 줄기세포 시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자본주의 마케팅은 인간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기가 막히게 잘 파고든다. 수천 만원의 고가 줄기세포도 수명연장과 무병장수를 약속한다면 누구나 솔깃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선택은 자유의지이니 어쩔 수 없지만 12월의 타오르는 떡갈색 잎사귀의 갈변과정을 단 한 번이라도 묵묵히 바라보라고 말하고 싶다. 싱그럽지 않지만 우아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아름답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필멸은 비켜갈 수 없다. 어차피 소멸해야 할 삶이라면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연옥의 꼭대기 에덴동산에 올려주고 말없이 사라졌듯이 요란 떨지 말고 아름다운 여운으로 사라지길 희망한다.


나는 12월의 갈색빛이 참 좋다.

내가 가야 할 길이 꼭 저 빛깔을 닮아가길 바라본다.

2024년 12월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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