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엿보기

그림으로 풀어보는 아이들 마음

by 가지

난 남들이 소위 말하는 미술쌤이다.

어릴 적부터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고, 예술적인 집안의 분위기 덕에 자연스레 미술의 길로 접어들었다.

나이가 제법 찬 지금도 여전히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있고, 아이들에게도 미약한 나의 예술혼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언제나 고군분투 중이다. 그런 나에게 오늘은 새로운 기수가 시작되는 교육원 수업이 있는 날이다.


3개월 주기로 기수가 바뀌는 교육원의 특성상 아이들과도 정들만하면 이별이라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동시에 언제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첫 수업이 있는 날엔 부모도 아이도 교사인 나도 기대감으로 가득 찬 눈을 반짝거리며 강의실 문을 들어서곤 한다.

물론 그들의 기대감과 나의 기대감은 지향하는 바가 매우 다르겠지만 말이다.


부끄럽지만 많은 아이들이 나와 함께하는 수업시간을 재미있어해주고 기다려준다.

다른 미술학원으로 옮겨 갔다가 싫다며 다시 돌아오는 아이도 생기는 걸 보면 말이다.

왜일까?

특별히 내가 다른 미술 선생님들보다 실력이 월등한 것도 결코 아닌데 말이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난 그들에게 좀 더 많은 선택권을 주었을 뿐이다.


각종 경쟁 속에 시달려 좋던 싫던 의무만 가득했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미술 시간만큼은 편안하고 자유롭게 본인의 의지대로 그리고 토론하며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물론 그리기를 기본적으로 좋아하거나 그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 한해서 말이다.

그리기를 싫어하는데 부모가 시켜 억지로 해야만 하는 아이들은 아무리 편안하게 해줘도 서로 힘들기만 하다. 그리기를 싫어하는 이유가 자신감 부족이라면 개선될 수 있지만, 그리기 자체를 싫어하는 아이라면 교사 입장에서도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런 아이를 억지로 시키면 미술에 대한 거부감만 더 심해질 뿐이니, 종이 접기나 만들기 등 조금이라도 흥미 있어하는 것들 위주로 시켜주며 천천히 접근해가면 약간의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각자의 의지와 취향을 존중해가며

예술적인 표현방식으로

본인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게 알려주고 도와주는 일"


내가 생각하는 미술쌤의 정의이며, 지금껏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수업 원칙 중 하나이다.

그렇게 나만의 원칙을 세워 그림을 가르쳐온지도 15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는 아이들 그림만 봐도 성격이 읽힐 정도로 도사급이 되긴 했지만, 누군가에게 그림을 가르친다는 건 어른 아이를 떠나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시간이 갈수록 들고 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르고 얼굴이 다르듯이 생각도 천차만별인데, 내가 무엇이라고 나만의 잣대로 그 안에서 나온 그들의 생각과 표현방법을 저울질할 수 있단 말인가.

현장에서도 수업을 하다 보면 한 장의 그림을 두고도 미술 선생님마다 의견이 달라 아이들이 혼란을 겪는 일도 왕왕 있다. 기본적인 표현이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발상의 표현에 있어선 미술 선생님들도 그들만의 표현방식이 다 다르기에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학원들마다 가르치는 선생님에 따라 고유의 화풍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이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운영상 최고의 효과를 거둬야 되는 학원의 특성상 학원 고유의 화풍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긴 하다.


그런 현장에서 일치감치 탈피한 나에게 교육원 수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평생교육원의 특성상 적은 금액으로 3개월을 진행하는 수업이기에 부모 입장에서는 부담이 덜하고 (그렇기에 부모의 스케줄 따라 아이들 출석률이 널을 뛰긴 하지만) 그만큼 나도 내 스타일대로 진행할 수 있는 부담 없는 수업이기도 해서 난 이 수업시간을 매우 좋아한다.

수업료가 높으면 높을수록 부모의 기대심리도 높아지고 그만큼 교사 입장에서는 본인의 수업방식을 고수하기보다 부모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거에 치중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가지는 고유의 생각을 작품 속에 그대로 담아내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게 된다. 그래도 요즘의 부모들은 생각이 많이 열려 있어서 다소 난해한 그림들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써주는 모습이 보여서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술 선생님으로 학원에 재직 중이던 어느 해, 순수한 아이의 실력보다 완성도를 훨씬 높여 부모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야만 했던 학원 시스템에 거부감을 느껴 프리랜서로 전향해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즐겁게 했었던 작업들, 기본을 익히는데 꼭 필요한 작업들 등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나만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수업을 하기 시작했고, 다시 한번 열정을 회복하며 다행히 적지 않은 나이까지도 수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감이 부족했던 초창기, 혼자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시스템 탓, 애꿎은 부모들 탓하며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지금의 나라면 아이들의 현재 상태와 수업 방향을 소신껏 설명하며 그들의 이해를 구하는 일에 애썼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덩치 큰 학원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

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하듯 나 자신도 늘 자유롭고 싶은가 보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나만의 커리큘럼 첫 시간은 자유 주제 속에 집, 나무, 사람이 들어가게 그려주는 일이다.

교사의 간섭은 일체 없이 말이다.

첫 시간은 아이들의 성향과 앞으로 개선시켜야 될 부분을 미리 봐 두어 각자에게 맞는 수업 방향을 잡는 시간이기에, 부지런히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들의 습관과 성격을 파악하는 일이 주된 일이다. 이 시간은 내게도 매우 흥미롭고 설렘을 주는 시간이기에 개인적으로 난 이 첫 수업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이때만큼은 교사의 색깔이 들어가지 않은 가장 순수한 아이들만의 그림을 볼 수 있으며, 그 그림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아이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 미술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따면서 임상실습도 여러 번 나갈 일이 생겼고, 과정 속에서 그림 속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심리가 꽤 높은 적중률을 나타낸다는 걸 알면서 매우 신기하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나 아이들은 자기 마음을 숨기질 못하기에 어른들보다 그 심리가 더 명확히 보이는데,

첫 시간 아이들에게 집, 나무, 사람을 주문하는 이유는 미술심리상담 시 상대방의 성격 및 잠재된 욕구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이 세 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쌤을 오래 하다 보면 앞서도 얘기했듯이 이런 이론적인 부분이 아니어도 반 도사가 되긴 한다. 그림만 보고 척척 아이 성격을 얘기하는 나를 보며 놀라워하는 부모들도 많았으니 말이다.

아이가 그리는 모습, 색을 칠하는 모습, 그리는 크기 등등에서 그 아이가 가진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마 현장에서 오래 일한 대부분의 미술 선생님들은 선 긋는 모습만 봐도 그 아이 성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장의 그림만을 가지고 판단할 순 없겠지만, 미술쌤으로 일했던 다년간의 경험과 심리상담이론이 합쳐져 꽤 많은 부분을 파악할 수 있으니, 그 유혹은 꽤 달콤하여 첫 시간엔 언제나 이 주제로 문을 열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초등 고학년 지민이는 이제 막 사춘기로 접어든 천상 소녀인 아이다. 미적인 부분이나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지만, 아직 자기를 나타내는 부분에 부끄럼이 많고 조심성이 많은 편이다. 완벽주의적인 성향도 살짝 보이며 세상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아직 정서가 불안정해 자신을 드러내길 힘들어한다. 공감대를 형성해 대화를 이끌어주고, 따뜻한 감성과 조화로움을 아는 아이기에 적절한 주제와 환경이 주어진다면 좋은 그림이 나올 가능성이 많은 친구다.

이 한 장의 그림 안에 지민이를 느낄 수 있을만한 요소가 이렇게 많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이 그림은 임상실습을 나갔을 때 만난 8살 민형이가 그린 그림의 일부분이다.

민형이는 쌍둥이 중 형이다. 동생과 비교해 평소 꾸지람을 많이 듣던 민형이는 자기 자신을 괴물처럼 표현해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었다. 아이가 쓰기엔 험한 말을 달고 살았으며 순간순간 폭력적인 부분이 실생활에 나타나 어머니도 매우 힘들어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부모가 아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순간적인 감정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아 부모상담이 꼭 필요하다.


이렇듯 그림에는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담겨있다.

물론 감정이란 때에 따라 변화무쌍하여 그에 따른 그림도 수없이 변화될 수 있지만, 최소한 그림을 그릴 당시 본인도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상태를 알아보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이제 나의 마음 상태를 그림으로 한 번 그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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