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하기 나름

선생 맘은 못 말려

by 가지

오랜 시간 수업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눈에 자꾸 들어오는 아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예쁘게 하고 예의 바른 행동과 출중한 미모, 그림솜씨까지 뛰어나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미술 선생님으로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초창기, 당시 다녔던 학원은 유치원 시스템을 가지고 운영하던 예체능 전문학원이었다. 발레, 미술, 피아노, 성악 등 전문 강사들이 포진해있던 그 학원은 그때만 해도 그런 시스템이 흔치 않았기에 어머님들의 강력한 지지 속에 성장을 하고 있던 학원이었다.

팔방미인이라 불렸던 7살 서연이는 그림뿐 아니라 모든 면에 탁월함을 드러내 선생님들의 총애와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런 아이였다. 그녀의 엄마를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유치부를 운영하다 보면 차량 운행 시 기사 아저씨 외에 아이들 승하차를 도와주는 선생님이 한 명씩 탑승하게 되어있다. 선생님들이 당번제로 번갈아가며 차량에 탔었고, 그 날은 내 차례인 눈 내리던 겨울 아침이었다.

학원 특성상 원거리 아이들도 많아 차량 운행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날따라 지리에 익숙지 않은 새로 운행하시는 기사 아저씨가 운전을 하게 되었고, 조금씩 내리던 눈발은 점점 더 굵어져 길조차 많이 미끄러워지게 되었다. 차량속도는 더욱 느려져 가는 내내 마음 졸이며 약속된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첫 번째 아이를 데리러 가게 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새내기 어린 선생님이라 부모들을 상대한다는 거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던 나는, 수고하셨다는 말 대신 추운 날씨에 늦게 온다며 울 그락 불 그락 하는 부모의 화난 얼굴과 노기 띤 목소리를 듣고는 상황설명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늦게 온 잘못이 크니 말이다.

요즘에야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바로 문자로라도 알려줄 수 있지, 당시만 해도 핸드폰이 보급되기 전이라 유선전화 외에는 다른 통신수단이 없었다. 이제오나 저제오나 오도 가도 못하고 기다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아니 내가 운전한 것도 아닌데 그저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줄줄이 잘못 꿴다고 했던가 첫 번째 아이 승차가 늦어지니 줄줄이 밀리게 되면서 무슨 정신으로 부모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태웠는지 모르겠다. 많은 부모들이 당시 상황을 이해해 주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큰 목소리로 역정을 낸 부모가 있었으니 바로 서연이 어머니였다.


학원으로까지 전화하여 기사를 바꾸라는 둥 애 아프면 책임질 거냐는 둥 소리소리 지르니, 그 심정을 이해하고 싶다가도 누군 늦고 싶어 늦었나 싶어 맘이 싸늘해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

다행히 언변 좋은 원장 선생님의 화려한 기술 덕에 서연 어머니도 맘을 풀긴 했지만, 학원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저런 화끈한? 성격을 가진 엄마를 둔 서연이를 전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급기야 서연이의 출중함이 엄마의 극성으로 인한 것이라 다들 결론 내리며 조금은 짠한 마음으로 서연이를 바라보는 선생님까지 생겼으니, 선생 맘은 부모 하기 나름인 것 같다는 어처구니없는 궤변이 생각나더라. 역시 세상은 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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