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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란 Feb 02. 2024

그레이스의 사교육 이야기 (1)

초등 연산

'선행 없이 사교육 없이'라고 했지만 그건 뭔가 극적 효과를 위해 던진 말이고, 이렇게 훌륭한 학원시스템을 갖춘 나라에서 엄마가 직장까지 다니며 학원을 활용 안 하는건 불가능하다. 그레이스도 해 볼 건 다 해봤다. 이 참에 한번 정리해볼까?


초1~초5 피아노학원, 초2~초4 무용학원, 초3~초4 동네 영어학원, 초3~초5 눈**수학(연산방문문제지), 초4~초5 방학에만 미술학원, 중1 피아노레슨 3개월, 중1 학교앞 수학학원 2개월, 중1 청*어학원 1개월, 고1 내신대비 영어학원 5개월, 중3 강남인강, 고1~고3 메*스**, 대*마** 패쓰구입, 고3 대치동 시***학원 미적분, 물리, 지구과학 단과수업 5개월.


과목별 공부역사를 짚다보면 다 언급될 것 같지만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참 돈이 안 들긴 했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서 진짜 의미는 경제적 효율성이 아니다. 우리만의 기준으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나갔던 그 과정과 시행착오, 그리고 배움이 진짜 의미이다.




선행은 따로 얘기하더라도 수학의 특성상 학교 수업만으로 수학을 공부할 수는 없다. 수학은 개념을 배우면(學) 이해하고 적용하며 그 원리를 익히는(習)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學은 학교에서 이루어지지만 習은 방과후에 이루어지므로 가이드를 해 줄 부모가 여력이 안된다면 사교육기관의 도움을 받으면 좋다. 때문에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 무엇이 좋다고 내가 일방적으로 가르칠 수는 없다. 그래서 최대한 딱 그레이스 얘기만 전하고자 한다.


이것저것 다 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시간도 금전도 에너지도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순간순간 선택과 포기를 해야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각 두 살 터울로 세 아이를 동시에 돌보기에는 아무리 전업이어도 엄마가 아이 학교 공부까지 챙기기에는 여력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초등때는 책읽기와 영어에 집중했고 초등수학은 수업만 들어도 쫓아갈 수 있으려니 하고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그런데 3학년 봄에 그레이스가 '엄마 내가 우리반에서 계산이 제일 느려요'라고 얘기해서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수학 교육과정은 나선형 구조이다. 수학의 각 영역을 일년단위로 순회하는 식이다.

예를 들면 2학년 봄에 연산을 배우고 여름에 도형을 배우고 가을에 자료의 정리를 배운 후 3학년 봄에 더 어려운 연산을 배우고 여름에는 더 어려운 도형을 배우고 가을에는 더 어려운 자료의 정리를 배우는 식이다. 그러니 구구단 단원에서 그걸 잘 했더라도 여름과 가을을 지나며 계산을 할 일이 없으니 3학년 봄에는 외웠던 구구단마저 까먹을 수 있다. 그래서 초등때는 일년 내내 연산 연습만은 조금씩 계속 해줘야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 옛날 나도 눈**수학을 했었다. 후에 서울대 물리학과에 간 수학 잘하던 남학생 엄마가 학부모 모임에서 준 정보덕에 나의 모친도 초6이던 내게 눈**수학 선생님을 불러주었고, 1년 남짓 재미있게 하며 수감각을 익히고 식을 조작하는 훈련을 통해 계산속도가 많이 빨라져서 이후에는 계산때문에 곤란을 느끼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반면, 아인슈타인처럼 이론물리를 하고 싶었으나 수학계산이 자꾸 틀려 포기하고 실험물리로 방향을 튼 아픈 기억을 가진 남편은 말이 나오자마자 꼭 시키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짧은 육아 역사를 통해 그때쯤 터득한것이 학원은 아이가 간절히 원할때 보내야지 엄마가 먼저 제안하거나 강요해서 다니기 시작하면 보내는 내내 힘들고 결국 끝도 안 좋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선택지를 제시했다.


1. 기*수학 - 하루에 한 장씩 뜯어 푸는 연산 연습 문제집. 서점에서 구입가능. 엄마랑 분량을 정해 매일 꾸준히 푼다.


2. 구*수학 or 눈**수학 - 선생님이 집에 오셔서 내용을 설명해 주시고 일주일치 문제지를 놓고 가시면 매일 분량만큼 풀어두었다가 선생님께 검사받는 방문학습지.


3. 눈**학습센터 - 집에서 매일 아이들을 자리에 앉혀서 학습지를 풀게 시키는 것도 여러 이유로 힘든 부모를 위해 학교 앞에 센터를 만들어놓아 아이들이 하교길에 들러 학습지를 풀고 검사받고 집에 가게 하는 시스템.


곰곰히 생각하던 그레이스는 기*수학은 밀릴 것 같고 눈**학습센터는 학원을 하나 더 다니는 기분일 것 같아 싫고 일 주일에 한번 선생님이 오시는 것이 가장 적당한 수준의 구속력일 것 같다고 2번을 선택했다. 늦기 전에 시작해서 다행이었고 덕분에 두 살 어린 조슈아는 1학년때 연산문제집을 시작하는 특혜를 누렸다. 정말 싫어했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오시는 선생님이 수학 전문가가 아니시다보니 학교 진도보다 앞서 진도가 나가게 되었을때 개념설명을 제대로 해주시지 않고 외우라고 하셔서 '아~~ 저러면 안 되는데~~' 가슴이 미어졌던 기억은 있다. 초등수학은 내용의 전문성 때문이 아니라 대상의 특수성 때문에라도 전문가인 초등 선생님이 가르치는게 맞다. '엄마가 설명하면 이해가 안 되고 우리 선생님이 설명해주셔야 이해가 된다'고 해서 나는 애초부터 아이들의 초등수학은 가르치지 않았다.


<첨언>

경험으로 알게 된 구*수학이나 눈**수학의 장점이 있다. 커리큘럼이 있지만, 아이가 힘들어하여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선생님이 판단하면 그 영역만 두번 세번 문제지를 다시 가져와 반복시키거나, 아이의 심리적인 반응을 살피며 숙제 분량을 조절하여 속도를 빠르게도 느리게도 진행할 수 있다. 기*수학을 한 권 구입하면 그대로 다 풀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양을 줄이거나 늘릴 수 없다. 아이의 반응을 잘 살피고 그에 맞게 대응할 수 있는 엄마라면 기*수학이 당연 더 경제적이고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세 명 모두 연산문제집을 꾸준히 했으면 했지만, 시간에 쫓기며 무엇을 하는 것 자체를 너무 힘들어하던 조슈아는 얼마 못 가 그만두었고, 일찍부터 수학학원에 보낸 올리비아는 학원에서 연산이 필요한 부분은 따로 훈련을 시켜주는 것 같아 따로 시키지 않았다.



교육에 must가 어디 있나. flexible하게. 융통성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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