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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란 Mar 03. 2024

수학에 고개숙인 친구들에게

탄탄한 4등급을 유지하자.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험을 치르고 성적표를 나누어주다보면 교사도 자괴감에 빠진다. 함께 즐겁게 수업을 듣고 이해도 잘 하고 문제도 곧잘 풀던 아이들이 내가 낸 시험문제를 풀고 54점을 받아든다. 사실 이건 배신이다. 배신자는 선생이다. (진짜 미안해 얘들아..ㅠㅠ)


사실 이 정도 성적을 받았다면 이 친구들은 도달해야 할 성취목표에 충분히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취목표란 해당 단원의 핵심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상황에 이를 적용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 정리를 배우는 단원에서 정리에 대해 배우고 난 후, 직각삼각형의 세 변 중 두 변의 길이가 주어졌을때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용하여 나머지 한 변의 길이를 구해낼 수 있으면 성취목표를 달성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험은 그것만 묻지 않는다. 마치 피타고라스 정리를 배운 것을 기회삼아 사람을 괴롭히려는 목적을 가진 듯 '이것도 풀어볼래? 그럼 이건 어때?'하며 점점 어려운 문제를 들이민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번째는 전에 말한 수학공부의 목적과도 관련이 있다. 써먹기 위한 수학이었다면 거기까지만 알면 끝이겠지만 우리는 그 수학을 도구 삼아 우리 뇌근육을 단련시키려는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두번째는 우리가 대학을 가야한다는 데 있다. 고등학교는 개개인의 학습능력에 등급을 매겨 상위교육기관인 대학에 보내야하는 책무를 가진다. 나의 수업에서 100%의 학생들이 다 훌륭히 성취목표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 학생들 모두가 100점을 맞도록 시험문제를 내면 안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100점의 비율은 절대로 4%가 넘으면 안 된다. 어떻게든 학생들을 겹치지 않게 줄을 세워야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1번부터 10번까지의 교과서수준 문제를 다 풀면 그 친구는 최소한의 학습을 한 것이고 아마도 6, 7등급 정도를 받게 될 것이다.(총 9등급 중 중간이 5등급이다) 


이후 11번부터 20번까지는 문제집 기본유형이다. 나머지 11번부터 20번까지를 풀어냈다는건 수업에서 배운 수학적 사실을 활용하는 기본 유형의 문제들을 능숙히 풀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이 쉽지 하루에 최소 네 시간 주 5일 이상의 수학 순공 시간을 투자해야 가능한 수준이다.


그 다음 21번부터 25번까지는 솔직히 말하면 1, 2등급을 가리기 위한 문제이다. 수학시험에서 1, 2등급의 성취도를 보인다는 뜻은 수학적 문제해결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꼭 타고난 머리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성실한 학생이라는 뜻이고, 자기한계를 극복해야할 정도의 고통의 시간을 이겨낸 학생이라는 뜻이다. 센스도 있어야하고 순발력도 있어야한다. 솔직히 말하면 제한된 시간동안 과도한 분량과 난이도의 문제를 풀어야하는 우리나라 학교 시험의 특성상 운도 따라야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여러분이 고등학교에 들어와, '설마 이게 내 수학등급이 될 줄이야'하는 성적을 받았을 수 있다. 그러나 올릴 수 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고 한다.

나는 빠른 속도로 많은 비율의 친구들이 수학을 곧(빠르게는 오늘이나 내일도) 포기할 것을 안다. 여러분이 포기하지 않고 있으면 옆의 친구들이 수학을 포기해서 반사작용으로 여러분의 등급이 올라갈 것이다.

수학을 못하는 사람들이 포기할 것 같지만 둘러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학은 게으른 사람들이 포기한다. 게으른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욕심은 많다는 것이다. 제대로만 하면 4등급은 받을 수 있는데 안 하면서 왜 2등급이 아니냐며, 그런 수학이라면 내가 버릴테다 하는 모습이다.


보통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수학 5, 6등급은 공부량이 너무 부족한 친구들이다. 그런 친구들은 수학 외의 다른 과목도 거의 비슷하게 5, 6등급인 경우가 많다. 아직 공부를 제대로 해 볼지 말지 마음의 결정을 못 내렸거나, 더 재미있는게 있거나, 지금보다 뭔가를 더 힘들게 애쓰기가 싫은 상태인 경우가 많다.

'아닌데요? 저는 열심히 했는데 5등급이에요.' 그렇다면 그냥 공부량 부족이다. 더 하면 된다. 그런데 제발 집중해서 하자.


나는 4등급 친구들에 주목한다. 4등급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수학의 기초가 부실한 것도, 공부머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껏 잘 해 왔고 더 잘 하고 싶은 친구들이다. 대부분 착한 친구들이라 4등급의 책임이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잔뜩 주눅이 들어있을 것이다. 과연 더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올라줄 것인지 확신이 안 들어 두려움에 휩싸여있다. 이 친구들에게 수학점수는 점수 그 자체라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낙인처럼 느껴져 지금쯤 자존감도 엄청 떨어져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4등급은 괜찮다. Good.

물론 Great나 Excellent는 아니다. 그러나 Good이다.

앞에서 말한 '하루에 최소 네 시간 주 5일 이상의 수학 순공 시간'을 앞으로 계속 투자해야 유지할 수 있는 성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도 안 하고 4등급 이상을 받겠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이다. 1, 2등급 친구들은 주말에는 8~12시간씩 수학만 하기도 한다. 네가 지금 '그걸 어떻게 해?'라고 생각하는 건 네 능력이 아닌 선택일 뿐임을 꼭 얘기해주고 싶지만 지금은 기를 죽이는 타이밍이 아니라 격려하는 타이밍이니 다시 마음을 가다듬겠다. 흠흠.


4등급 학생은 중학교때 SKY도 꿈꿔봤 친구들이다. 지금쯤은 인서울 정도로 꿈의 하한선을 낮추었을 수 있으그래도 이 성적에 만족할 수는 없다. 본인도 부모님도 학원선생님도 이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괜찮다Good고 말하려고 한다. 4등급은 훌륭하다. 어느 학교 어느 학과를 어느 전형으로 가느냐에 달려있지만 수학을 4등급만 유지하면 인서울도 가능하다.(물론 다른 과목들이 4등급 이상이 되어주어야하지만. ㅋㅋ) 고교 교육과정내의 수학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고 쎈B정도 수준의 문제를 모두 씹어먹은 4등급이라면 어느 공대, 심지어 어느 수학과에서도 수업을 듣고 쫓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공대를 가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 중요한건 제대로 공부한 견고한 4등급이냐이다.


물론 이 학생은 자신의 능력이 4등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화가 난다. 맞다. 그 친구가 4등급을 받은 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공부한 이상한 쟤네들, 말도 안되는 난이도의 시험 때문이다. 이게 남 탓만 하는 것 같지만 1학년에게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믿는 것이 멘탈을 부여잡기 위한 좋은 기제이기도 하다. 그러니 시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말고 정도를 걸어라. 서둘지 말고 차근차근 정석으로 공부해라. 그러려면 성적을 올리려하지 말고 탄탄한 4등급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해야한다. 


You know what? 그런 4등급 학생의 성적표에는 4등급만 있을 수 없다. 분명히 3등급, 2등급으로 오른다. 그러나 목표를 2등급으로 잡고 조급증을 내기 시작하면 만년 4등급 신세를 면치 못하고 늘 자신의 실력에 확신없이 학년만 올라가는 악순환에 빠진다. 게으르고 성질 급한 3등급 4등급들이 의외로 많아서 뚝심있게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공부한 친구가 티가 안 날 수가 없다.


잊지마라. 결국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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