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별 사람 없다"라는 말을 내가 처음 들어본 건 나이 마흔이 안 되던 어느 날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휴직을 하고 휴스턴에서 첫째, 필라델피아에서 둘째, 한국에 와서 셋째를 낳고 전주에 내려가 있을 때였으니 이미 휴직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명분이 있어 휴직상태이긴 했지만 다들 '돌아가면 수학문제를 풀 수는 있겠냐'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나도 코 묻은 티셔츠 바람으로 영원히 이 애들과 그 작은 아파트에서 레고조각이나 치우다 인생을 마감할 것 같던 시절이었다.
우리 애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셋이나 낳고 대학원 공부를 하던 씩씩한 과동기가, 유명한 수학저술가가 시중에 나와있는 문제집들에 대한 리뷰를 본인의 운영사이트에 써 줄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수학을 가르친 지도 오래요, 우리 아이들은 아직 너무 어려 초중등 문제집을 풀려보지도 못한 내가 문제집 리뷰를 한다고? 그런 건 훌륭한 학교샘이나 훌륭한 학원강사, 혹은 집에서 아이들과 수학문제집을 함께 고르고 풀어보며 관찰해 본 훌륭한 엄마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때 본인의 남편이 본인의 대학원 진학을 격려하며 해준 말이라고친구가 내게 전해준 말이 '세상에 별 사람 없다'였다. 나중에 책에서 보니 '세상에 별 비단은 있어도 사람은 별 사람 없다'는 말로, '비단에는 처음부터 좋은 퀄리티 나쁜 퀄리티가 있어 그에 맞게 활용되어야겠지만 사람의 재주는 다 비슷비슷하니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고 도전한 사람이 결국 뛰어난 결과를 얻는다'는 뜻이었다. 그때는 들으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말에 설득되어 일을 수락했다.
스스로 내가 쓴 리뷰에 완전히 만족하건 아니었지만 세상에 별 사람 없으니 나 말고 다른 누가 썼어도 그 정도였지 않았을까 하며 리뷰를 마친 것 같다. 그때 이후로 내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고 흔들릴 때마다 참 오랫동안 힘이 되어 준 말이었다. '세상에 별 사람 없다'
브런치를 처음 알게 된 날 빠르게 서치를 하고, 글쓰기에 대한 마음은 늘 있었던 터라 얼른 가입을 하고, 글 두 편을 쓰고, 잠들기 전 작가 신청을 하고, 다음날 오전에 수락통보를 받고서야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기 시작했다.
아, 이미 입시에 대해 나보다 훨씬 더 자세히 많은 글을 쓴 교사들도 있었고, 맛깔나고 재미있는 소재로 흥미로운 글들을 써대는 사람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거기에 비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가 또 더할 필요가 있을까. 혼자 자기만족에 취해 글을 써보았자 누가 봐줄 것이며 남들과 비교하면 또 얼마나 비천해 보일까. 갑자기 나 자신이 너무나 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에 남들 글을 좀 먼저 보고 결정할걸...
그러다가 또 떠올랐다.
'세상에 별 사람 없다'
그들이 나와 다른 '별 사람'인 건 아니다. 사실 내가 '별 사람'이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여기서 '별 사람'이란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건데, 글을 쓰는 목적이 유명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남기기 위해서라면 그냥 나를 위해 쓰면 되는 게 아닐까 얼른 생각이 바뀌었다.
애초에 우리 모두는 모두 '별 사람'들이다. 여기서 '별 사람'이란 남과 다른 unique 한 존재로서의 '별스러움'을 뜻한다. 전국에 수학선생이 수천이라고 해도 나 같은 배경과 경험을 가진 선생은 나 하나이다. 그러므로 나를 만난 아이들에게는 나만이 가르쳐줄 수 있는 무엇이 있고, 같은 내용을 배우더라도 내가 가르쳤기 때문에 무언가 별스러운 포인트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유명한 입시전문가가 아니라 고모가 얘기해 주어서 같은 내용이어도 달리 전달될 수 있는 입시정보처럼,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여서, 내가 쓴 글이어서 갖는 힘과 영향력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잠시 흔들렸다. 그리고 잠시 작아졌었다. 그러나 이 소중한 말, '세상에 별 사람 없다'가 다시 한번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리고 용기 내어 이번에는 객관적 정보만이 아닌 나의 냄새가 물씬 나는 입시에 대한 세 번째 글을 단숨에 써 올렸다.
됐다. 글쓰기 덕에 오늘 즐거웠고 보람찼으니 그걸로 됐다. 언젠가는 출판사에서 연락이 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이렇게 글쓰기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는 것도 꽤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