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픈 아이들
내 작은? 가슴으로 세 아이를 품은 날
오늘은 9월 모의고사 날이다. 1, 2학년에게는 아직 수능이 먼 미래의 일이라 모의고사는 한 두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모의훈련 같은 느낌이다. 하루종일 100분짜리 롱텀의 시험을 네 과목이나 본다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므로, 수능 때까지 2년여의 시간동안 한 학기에 두어 번 보는 모의고사는 그 자체로 수능시험을 위한 육체적, 정신적 훈련이 된다. 그러나 그건 다 애들 입장이고, 선생 입장에서는 정기고사만큼 긴장하지 않고 감독하며 수업도 하루 쉴 수 있는 휴가같은 날인 것이 사실이다.
1교시 감독이 마침 우리 반이었다. 100분의 긴 국어시험이 끝나고 답안지를 걷어 나가려는데 칠판 앞에서 아이가 한 손은 이마에 한 손은 가슴에 올린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1학기때 갑자기 아팠던 그 친구였다.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속에 품고 있다 갑자기 터진 사건이었고 이후 계속 병원 치료와 상담을 받고 있었다. 너무 힘들면 학교를 잠시 쉬어도 된다고 했지만 본인은 시험이 스트레스인거지 음악으로 대학을 가도 된다면 학교 다니고 수업 듣는걸 누구보다 즐기는 사람이므로 학교를 쉬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결국 기말고사가 끝난 다음 날부터 등교하게 되었다.
2학기 들어 힘들다고 해서 부모님이 중간에 데려간 날이 이틀 정도 있었지만 그래도 본인이 많이 노력하고 있었다. 며칠전에는, 자기가 많이 좋아져 지난 몇 달 간 자기 때문에 고생한 엄마가 친구들이랑 해외로 여행 가신다고 자랑 아닌 자랑도 했다.
제대로 숨을 못쉬고 헉헉대는 아이를 그냥 품에 안고 '괜찮아 서둘지마 천천히 천천히' 를 속삭여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아이는 곧 진정되었고 친구들이 아이를 보건실에 데려가 주었다. 그리고 나는 또 부랴부랴 2교시 감독에 들어갔다. 감독을 하며 어머니 연락이 안되는 것을 확인하고 아버님께 문자드리니 점심시간에야 오실 수 있다고 하신다. 걱정마시라고, 보건실에 안전히 누워 쉬고 있으니 되는대로 오셔서 데려가시라고 했다.
공황장애로 교실에서 시험을 보지 못하고 보건실에서 시험을 본 3학년 아이 시험감독까지 하시던 보건선생님은 우리 아이의 호흡과 맥박, 산소포화도를 체크하시며 돌보시느라 점심도 못 드셨다. 점심시간 끝에서야 겨우 회사에서 달려오신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셨다는 얘기는 오후에 자리에 돌아와 메신저를 열고서 뒤늦게 들었다.
마침 오늘 급식지도가 있는 날이었다. 교사들에게는 점심시간도 근무시간이다. 초등선생님들이 매일 아이들과 점심을 함께 먹는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한달에 한 두 번 급식실 지도를 하는 중고등선생님들은 그나마 감사하게 생각한다. 밥이라도 편하게 교직원 식당에서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나도, 내 아이들도 학교급식을 통해 '하루 중 가장 균형잡힌 식단, 최고급 식재료로 늘 새로운 식단으로 누군가 정성껏 지어주는 식사를 할 수 있는 복된 시간'을 보내는 입장에서 애들 밥 먹는 것만 보고 있어도 흐뭇한 시간이기는 하다.
내 구역이 아이들 식당 들어가는 입구여서 적당히 줄세워 입장정도만 지도하면 되었고, 3학년 2학년 1학년 순서로 입장하며 거의 끝이 날 타이밍이었다.
갑자기 한 여자아이가 내 앞에 우뚝 선다. '어?' 하는 순간 훅 내 가슴에 머리를 묻는 아이.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 아이 얼굴도 못 봤고 상황을 인지할 새도 없이 흑흑흑흑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점점 꺼이꺼이로 커져간다. '어 그래 어 그래 아이고...'하며 등을 쓰다듬어줄 수 밖에. 대체 오늘 무슨 날인건지. 그렇게 흡수율이 좋은 재질도 아닌 원피스를 입은 오늘 같은 날 이 가슴에 하루에 두 아이나 품게 될지 누가 알았는가. 일년에 두 번도 힘들 일을....
3학년이라고 해서 담임에게 데려다주려고 교사식당을 통과하는 길에 아이를 알아본 3학년 선생님들이 아이를 데려가셨다. 조울증이 심하고 수업중에도 툭하면 울어대서 선생님들이 힘들어 하신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던 그 아이임을 알게 되었다. 시험이 너무 힘들다고 조퇴하겠다고 오전에 한번 담임샘에게 말씀드렸는데, 엄마가 아이의 잦은 조퇴를 싫어하시는걸 아는 담임샘이 보내주지 않자 2차로 뭣모르는 내 앞에서 또 울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아마도 두 번 울었으니 아이는 조퇴에 성공했을거라고.
아이 사정을 잘 아시는 진로부장님이 '저 정도이면 엄마가 모의고사날은 그냥 아이를 안 보내면 좋을텐데..'하시니 아이 키우는 선생님들은 '엄마도 너무 힘드신거죠'하며 엄마편을 든다.
시험을 보는 날은 보건실 뿐 아니라 상담실도 시험장이다. 공황장애나 시험불안 등의 이유로 분리고사실이 필요한 아이들 중 심리적 지원이 더 필요하면 상담실에서, 의학적 지원이 더 필요하면 보건실에서 커버한다. 이날은 상담실에서 시험보는 아이도 두 명 더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예전과 달리 심약한건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큰 것인지를 얘기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 아이들만 보아도, 내가 아이들을 더 강하게 키우겠다고 극기훈련을 시킬 수도 없었고 내 엄마보다 아이들의 요구를 더 들어줄 만 했으니 들어주며 키웠던 것 뿐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가 갑자기 마음이 아프다고 하거나 학교를 다니기 싫다고 하는 일이 생기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내게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지만 누구도 단정할 수 없는 그런 재난 같은 일이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때 그 아이를 감당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된 부모인가가 더 중요하다. 오늘 3학년 아이의 부모처럼 생각보다 많은 부모님들이 그런 자녀를 인정하지 않고 꾀병으로 여기거나 학교에 떠 넘기려고만 하는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반 아이의 부모님들은 문제가 터지자마자 와락 아이를 안으셨고 문제의 원인을 본인들에게서 찾으셨다. 언니까지 합세해 아이를 지지해주고, 그렇게 문제가 있어보이지도 않았지만 부부상담까지 자처하시며 근본적으로 달라지려고 하셨다. 이 아이는 그나마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나마 첫째 둘째가 착하게 잘 버텨주어서 감사할 따름. 그런데 우리 막내가 위태롭다. 그날 세 번째로 내 가슴에 안긴 아이는 우리 막내였다.
그날 밤 수학학원에 잘 다녀와서는 '학원이 의미가 없다. 집중이 안된다. 나는 아무래도 공부를 할 사람이 아닌 것 같다'며 또 운다. 여름 내내 이 문제로 학원도 잠시 쉬어보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집중력 검사까지 받아보며 고군분투하다 다시 학원에 나가기 시작한지 딱 이 주째였는데. 이제 이만 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할 때가 된걸까?입 밖으로 내뱉기 두려웠던 말을 결국 조심스레 했다. '꼭 이 길만 있는 건 아니야. 다른 길을 알아보고 싶니?'
너무 무서웠다. 공부해서 대학가는 길만이 유일한 정도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이 길 외에는 내가 아는 바가 없어서 아이가 이 길을 이탈하겠다고 하는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러면 새로운 길을 알아보러 뛰어다녀야하고, 낯선 정보에 적응하며 에너지를 써야하는 것이 너무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었다.(귀찮다는 단어가 적절한가 싶지만 짜증스럽다는 의미가 아니라 버겁다는 의미에서 귀찮음이 가장 적절한 단어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얼른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어주었다. 그리곤 '나도 인문계가서 좋은 대학 가고 싶지. 내가 그걸 안 하겠다는건 아닌데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모르겠고 잘 안 되니까 방법을 찾고 싶은거라고~~'하며 꺼이꺼이 운다.
땡큐 갓.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상황을 잘 분석하자. '그래. 너는 엄마가 너무 어릴때 복직을 하며 학원으로 돌아서 언니 오빠처럼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작은 성취를 쌓아 나가며 자기확신을 갖는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했잖아. 엄마가 지금이라도 도와줄게. 수학학원은 끊자. 언니 오빠 끼고 공부습관 들여주었던것처럼 엄마가 지금이라도 너랑 같이 해줄게. 스마트폰도 엄마랑 같이 조절하고 하루에 한두시간씩으로 시작해서 집중해서 공부하는 능력도 길러나가면 되지. 엄마가 올해는 매일 칼퇴하고 와서 너 공부 봐줄게.'했다. 솔직히 학교를 안 다니겠다고 말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학교가서 수업은 듣고, 점심도 먹고 와준다고 하지 않는가.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냔 말이다.
이렇게 고단한 하루가 끝났다.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있는 오늘은 이 날로부터 삼 일 후 토요일. 세 아이를 품에 안느라 너무 힘들었는지 기관지염이 폐렴으로 발전되었다는 진단을 어제 받고 오늘은 하루종일 누워있었다. 다행히도 고열은 없고 미열만 계속 있는 상태로 가래만 끓는 정도. 주사도 한 대 더 맞고 항생제도 두 배로 늘려 먹고 있으니 주말이 지나면 좀 낫겠지. 설마 폐렴으로 죽기야 하겠나. 자신에게 낙담하거나 주어진 상황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 숨을 제대로 못쉬거나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의 병보다는, 차라리 가래가 끓고 열이 좀 나도 항생제나 소염제로 다스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이런 몸의 병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더 확실한건 내가 아픈게 낫지 내 애든 남의 애든 아픈 아이를 지켜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은 정말 힘든 일이다. 제발 그런 무력감을 느낄 일이 많지 않기 만을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