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서만 통하는 필살기 훈육법
아주 오래전에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두식 교수의 <헌법의 풍경>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한가지 기억나는 포인트가 있다면 법은 절대적이거나 불변하는 기준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심지어 헌법도 사회 전체가 합의하면 수정할 수 있다.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에 의하면 인지구조의 성장에 따라 도덕판단의 양식도 변형되며 발달한다. 법과 질서를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던 나이에서 조금 더 성장하면, 아이는 이 법이 사회적인 유용성에 따라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절대적이던 법이나 규칙의 권위가 끝을 모르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게 문제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선은 넘으면 안된다는 것을 모르는 어줍잖은 망아지들... 예를 들어, 안전을 위해 설치한 신호등이므로 내 안전을 내가 확보하고 건넌다면 빨간불에 건너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이 말이다.
매일 학교 가는 것, 교복 입는 것, 교복 치마의 길이가 정해져 있는 것까지, 어떤 것도 아이들에게 당연한 것은 없다. 편하게 결정한 행동이 선생님이나 부모에게는 분노의 원인이 되고 권위의 도전이 되는데, 반면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어 서로 엇갈린 대화와 갈등만 반복된다.
**아, 교복을 안 입는 것이 비난받을 죄는 아니야.
그러나 우린 이 학교에서 의미있다고 합의한 것들에 대해 교칙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입학하며 그 가치들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했잖아.
어느날 그 의미가 사라졌다고 느낄때 교칙을 바꿀수는 있어.
법이나 규칙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전까지 우리가 합의했던 가치를 존중하는건 서로에 대한 예의지.
선생님은 담임으로서 **이가 우리가 합의한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실망스럽고, 그런 태도가 교복 뿐 아니라 다른 많은 학교생활의 영역에서 드러나는 것이 참 애석하다.
선생님이 완벽한 인간은 아니지만
이 학교안에서 교사로 세워지고 권위가 부여돼 너희를 가르치고 훈육하고 있어.
네가 계속 내 권유를 무시하고 교복을 안 입는다는 게
**이가 우리가 합의한 시스템 자체를 부정한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단다.
그럼 선생님은 대체 어떤 근거로 **이를 가르치고 훈육할 수 있을까.
선생님은 많이 당황스럽고 섭섭하기도 하네.
ㅋㅋㅋ
진짜로 이렇게 얘기한다고? 믿지 못하겠지만 진짜로 이렇게 말한다. 물론 이건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는 아니다. 진짜 뺀질거리는 **이가 출연했을때 가만히 앉혀놓고 말투는 조근조근, 심하게 부드러우나 극도의 문어체로 이렇게 얘기하면 저엉~~말 무섭다. 그리고 아무생각없던 아이가 눈빛을 고정하고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하는 것이 보이고, 곧 백이면 백 '죄송합니다'하고 꼬리를 내린다. 단, 그 아이와의 관계에서 평생에 딱 한번만 사용해야한다. 반복사용되면 이 서늘함의 effect는 사라지니 주의! 그냥 그대로 꼰대가 되어버릴 수 있다.
부모로서 혹은 교사로서 아이들과 갈등을 겪을때 나조차도 우리 갈등의 빌미(교복)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복이 절대적 선인지, 사회적 합의인지, 개인적 취향인지에 대해 정리되지 않은채 그걸 부정하는 아이를 만났을때 저 문제아라고 아이를 단죄하거나 나를 무시해?라며 화를 낼 수도 있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 싶은 그 때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라고 하지 말고, 아이가 메타인지를 발휘하여 자신의 생각을 좀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이런 전략은 고등학교에서만 가능하고, 그것도 애 상태를 좀 봐가며 알아들을 놈한테만 써먹어야한다. 아직 질풍노도의 시기, 반인반수의 시기, 두뇌 안이 뒤죽박죽인 상태의 아이에게는 그냥 덮어놓고 회초리가 약인데, 아~~ 체벌이 금지되어 방법이 없으니 그런 아이를 만나면 그냥 못 본 척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이 세상 모든 중학교 선생님들께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