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공부하는 삶>
#영감을 준 문장
듣는 법을 배워라.
(중략) 가장 단순한 대화에서도 수많은 진리를 얻을 수 있다.
<공부하는 삶> 119p (유유)
밥벌이 잘 하고 계신가요?
소설가 양귀자의 말처럼 “밥을 구하기 위한 삶은 너절하고 지저분”하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빛나고 존엄”한 일인지 구태여 말 보태지 않아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알지요. 저도 매일 밥벌이 전선에 뛰어들고 있어요. 밥벌이는 필연적으로 힘들기 마련인데, 이걸 견디려면 자기 안의 힘을 길러야 하는 게 이 게임 논리이기도 하지요.
힘.
금문(청동기에 주조되거나 새겨진 문자)을 보면 힘力자는 사람의 손모양을 본떴다고 합니다. 왼쪽으로 뻗은 세 갈래가 손가락인데 이건 사람이 손을 쓰는 일, 그러니까 마음과 몸을 쓴다는 걸 뜻한다고 해요. 즉 힘을 쓴다는 건 어느 방향으로 마음과 몸을 밀고 갈지 결정하는 것과 같은 말이겠지요.
예전 회사에서 참 어려운 임원을 만난 적이 있어요. 이름난 컨설팅 회사 출신으로 해박한 이론에 실전 경험까지 풍부해 내로라하는 각 팀의 에이스들도 그 임원 앞에서 얼어붙기 일쑤였지요. 그런데 딱 한 명, 제 뒷자리에 앉은 선배는 그 임원에게 별 어려움 없이 프로젝트 아이디어의 오케이 사인을 곧잘 받아내곤 했지요. 우연한 기회로 그 선배와 짝이 되어 한달 가량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고 임원에게 보고하는 날, 드디어 그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배와 함께 임원실에 보고를 들어간 저는 평소와는 다른 그 임원의 분위기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보통은 절대 먼저 말을 꺼내는 일 없이 보고를 다 받은 후에야 피드백을 주는 게 기본이었는데요. 그날은 보고에 들어가자마자 임원이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 애가 고등학교 올라가더니 자꾸만 학원을 빼먹어서 큰일이에요.”
“저런, 속상하시겠어요.”
“요새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 그래도 이번 여름휴가 때는 안 간다는 애
억지로 끌고 같이 제주도도 다녀왔지 뭐야.”
“애들한테 분명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예요. 저도 그랬거든요.”
“아 참, 거기 중문해수욕장에 숨은 맛집을 하나 찾았잖아요 제가.”
“저도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조만간 제주도 갈까하거든요”
옆에 앉은 선배는 눈을 반짝이며 임원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담아 듣고 있었어요. 대화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요. 그러고 나서 준비한 업무 보고는 10분 남짓. 임원이 자기가 생각한 아이디어가 몇 개 있으니 원래 계획에 추가해서 당장 진행하라는 거였어요.
임원실을 나서며 토끼눈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한 선배는 고생했다는 인사와 함께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은 아니지? 임원은 쓸쓸한 자리야. 상상 이상으로 외롭거든.”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리 속에 번쩍하고 불이 켜지는 느낌이 들었지요. 그 선배의 무기는 강력한 주장도, 철저한 논리도 아니었어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진심을 다해 귀 기울여 듣는 것, 경청이 선배의 숨겨진 무기였던 거지요.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소위 대박을 쳤다는 광고 캠페인도 잘 들여다보면 대부분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잘 기울인 흔적이 보입니다. 유명 광고인 박웅현이 히트시킨 대림산업(현재 DL이엔씨)의 “진심이 짓는다” 캠페인도 유명 연예인을 앞세운 게 아니라 그 아파트에 살고 싶어하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요. 또 제가 아는 선배는 “보내버리고 싶은 그들에게 추천하라”라는 캠페인으로 잡코리아 광고를 성공시켰는데요. 누구나 회사에 싫은 사람은 꼭 한 두 명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귀담아 들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였어요.
공자는 “세상을 다스리는 선한 이치는 언어의 절제에 달려 있다”고 했다지요. 말하기의 총량은 정해진 거라서 내가 먼저 이야기를 채워버리면 상대방이 말할 절대량은 분명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내 생각과 주장을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세요. 그리고 귀담아 들어보세요 그 안에서 “수많은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책 <공부하는 삶>에서 세르티앙주가 이야기한 내용을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듣습니다.
영감 충전 지수(오점만점) : ★★★★★
어떤 자세로 삶을 살 것인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책.
자극과 사유 모두 충족시켜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