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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읕 Feb 04. 2023

23년 일기 겸 메모


2/3

어제부터 옥천에 와있다. 설날 연휴가 짧은 탓에 태어난지 채 4개월도 되지 않은 은재가 도로 위에서 버티지 못할 거란 생각이었다. 지금은 소영이 지오 은재 모두 잠들고 그옆에서 나는 메모를 한다.


일기를 시작하려니 묵힌 이야기가 많아 이것저것 쓸 게 넘친다. 굵직한 사건만 적어보자면


1/5 목요일에 엄마가 폐렴으로 포항성모병원 응급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 엄마가 연일에 푸른내과에 약을 타러 겨우겨우 가서 검사를 했더니 혈액 중 산소포화도가 너무 낮아서 형님과 아버지한테 긴급하게 연락을 넣었단다. 형님이랑 아버지가 그길로 급하게 달려와서 엄마를 성모병원 응급실로 데려갔고 산소포화도는 70%대(90% 밑으로만 내려가도 위험범주라고 하니 매우 위험했다)에다 폐염증 수치도 아주 나빴다.


형님은 의사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엄마를 중환자실에 넣어놓고 형님이랑 내장탕을 먹으면서 소주를 두 병이나 깠다고 한다. 엄마가 죽으면 아버지도 따라 죽겠다는 말도 함께 했다고 한다. 형님은 아버지까지 딥에 모셔다 드리고 문덕에 넘어가서 혼자가 되자 그제서야 무너져내렸다. 혼자 술을 마시고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그전날 가평에 1박2일로 놀러갔던 나는, 1/5 점심에 엄마랑 감기는 좀 나았냐고 통화하고 무심히 서울로 올라왔던 나는, 좀처럼 호들갑떨지 않은 형님이 상황이 좋지 않다고 전하는 전화를 저녁 8시쯤 받은 나는, 그길로 정신없이 짐을 싸고 바로 포항으로 내달렸다.


운전하는 차안에서 많은 것들이 후회가 되어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진작에 엄마를 큰 병원에 모시고 가지 못한 것, 얼굴을 보러 더 자주 내려가지 못한 것, 10월에 은재를 봐주러 올라왔을 때 엄마에게 짜증을 냈던 것 등등.


1/6 오전 8시 전에 아부지와 형수님을 모시고 성모병원 응급실 앞에 진을 치고 앉아있었다. 30분이 좀 넘게 지나고 8시 40분쯤 담당 의사(오미나 과장)가 복도에 앉아있는 우리를 찾아왔다. 다행히 밤사이 경과가 좋았단다. 코 삽관 호흡을 하고 있긴하지만 산소포화도도 높아졌고 염증 수치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오후에 일반병실로 옮기자고까지 얘기를 듣고 나자 어찌나 안심이 되고 감사한지 의사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물론 엄마 수치가 생각보다 빨리 안잡혀서 이틀이나 더 응급중환자실에 잡혀있다가 1/9 월요일이 돼서야 일반병실로 올라갔지만)


그길로 집에 잠시 돌아왔다가 11시반에 응급실 환자 대상으로 30분 면회가 가능해서 시간에 맞춰 아부지랑 둘이서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아부지도 엄마 얼굴을 보고 싶었겠지만 면회 기회를 선뜻 아들에게 양보하셨다. 11시반이 돼고 응급실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응급실로 들어서면서 엄마를 보면 환하게 웃어줘야지, 별거 아니고 금방 회복된다고 말해줘야지 다짐하고 발자국을 옮겼다. 그런데 엄마를 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는 약에 취했다 깨어나서인지 약간 어리둥절해 있다가 아들이 눈물을 쏟는 걸보자 당황해 하셨다. 눈물이 쏟아지는 걸 억지로 멈추며 엄마 손을 부여잡고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엄마는 응급실로 오게된 얘기, 꿈에 외할머니가 나왔는데 자기를 안데리고 혼자 돌아간 얘기 등을 잔해줬다. 눈으로 엄마 모습을 보니 안심이고 크게 위험하지 않은 모습에 너무나 감사했다.


엄마가 일반병실로 올라가면서 보호자 한 명이 상주를 해야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를 수시로 바꿀 수 없다는 거다. 딱 한 명 지정된 보호자만 있을 수 있는 데다 그 보호자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부지 형님이랑 긴 논의 끝에 1/9-11(월-수)는 형님이, 1/11-14(수-토)는 내가 보호자로 상주하기로 했다.


나는 잠시 서울에 올라왔다가 수요일 아침 ktx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다. 포항에 도착해서 병원에 주차돼 있는 형님 차를 타고 이동 이마트에서 엄마가 먹을 과일, 음료수, 과자 등을 이것저것 샀다. 10월에 은재를 보러와서 2주 정도 서울에 같이 있었는데 그때 남대문시장을 같이 갔다가 엄마가 일본과자(이름을 또 까먹었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덕분에 카트에다 그걸 실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점심이 지나고 1시 반에 코로나 응급선별검사를 받고 3시반쯤에 음성 결과를 받았다. 그길로 형님과 교대를 하고 엄마와 3박4일의 병원동거가 시작됐다.


엄마는 염증 수치가 많이 좋아지긴했지만 여전히 숨이 많이 가빴다. 코에 삽관한 공기튜브도 빼지 못한 상태였다. 아직 거동을 못해 소변통도 달고 있었고 링거 자국으로 손에 멍이 많이 들어있었다.


나머지는 내일 다시 쓰자. 졸리다. (지금 시간 11:58)


오늘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

티칭과 코팅은 다르다. 티칭은 정해진 답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고, 코칭은 지도 받는 사람이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것이다. 티처보다 코치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 많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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