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독립을 위한 인생 첫 알바

정신적 캥거루족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

by 지피지 jipiji


앞의 글에서 말했듯 나는 참 낭창한 삶을 살아왔다. 알바를 할 생각도 없었고 할 필요도 없었다. 친구가 하는 과외를 땜빵으로 한두 번 해본 것이 다였다. 물론 회사를 다니면서 스스로 돈을 벌어보기도 했지만, 월급과 별개로 용돈을 따로 받아왔다.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아빠는 내게 용돈을 줌으로써 어떠한 마음을 또 느끼시는 듯했다. "니 월급은 따로 모아두고 용돈으로 생활해라."였고 그 덕에 나는 회사를 다녀도 딱히 경제관념 없는 어른으로 자랐다.



적고 보니 이건 뭐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인 동시에, 되려 부모님 탓을 하는 양심 없는 한 인간의 재수 없는 소리의 나열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나는 정말이지 독립적인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이러한 환경에서 스스로 바로 서기란.. 그 역시도 꽤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나도 꽤나 나름대로는 힘들고 지난한 시절을 보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24년, 인생이 이렇게까지 이럴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된 이 지독한 한 해를 통해 나는 여태까지의 힘듦이 참 별것 아니었다는 것을 감각하게 된다. 나는 정말이지 따뜻하고 포근한 온실 속에서 나름대로 나는 힘들다고! 하며 외치는 화초 그 자체였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오늘은 내 인생 일대의 날이다. 처음으로 알바를 해본 날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서비스직. 카페 알바를 처음 해본 날이다. 엉덩이가 가벼운 탓인지 여러 회사를 다녔었는데 그 어떤 회사의 첫 출근 날에도 오늘처럼 긴장이 됐던 날은 없었다. 대충 회사 일이 다 비슷하지 뭐, 하는 마음으로 예상이 돼서 그러했겠지. 하지만 카페 알바는 처음이라 정말 감이 오지 않았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진상이 오면 어떡하지, 같이 일하는 분들이 반겨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등등 최악을 상상했다. 그리고 역시나 상상했던 만큼의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는다. 이 맛에 미리 걱정하지!



첫날은 으레 그러하듯 잡일로 산뜻하게 시작된다. (지독한 반어법) 하지만 이 매장은 오픈한 지 두어 달밖에 되지 않아 매장의 기물들이 대체로 깨끗했고 협소할 뿐 나름 깔끔한 공간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여전히 버리지 못한 나의 마지막.. 욕심이 바로 근무 환경인 탓에, 알바일지라도 정갈한 공간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그러한.. 니즈가 있었다. 다행히 그 니즈가 정확히 맞는 곳이고 나름 직주 근접이라 꽤나 쾌적한 알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에 회사가 많은 동네라 11:30부터 13:30까지가 대체로 러쉬 타임이다. 나름 자취 경력 꽤 된다고 설거지를 야무지고 빠르게 해내고 성취감을 느낄 새면, 또 쌓이는 설거지거리에 누가 이기나 대결하자의 마음으로 스퍼트를 냈다. 하지만 이내 성취감보다는 지겨움을 더 느낄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마음이 조금 힘들어졌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따금 홀로 들어가 식기류를 다시 가져올 때였다. 밖에는 점심시간을 맞은 회사원들이 마구마구 포진돼 있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나.. 따위의 어린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마구 피어올랐다.



정신적으로 독립하기 위해서 다시 회사로 들어갈 수도 있다. 원한다면 용돈은 정말 냉정히 끊고, 집세까지는 어렵더라도 관리비, 주유비, 통신비 등등은 내가 내겠다 하면서 독립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나는 올해 이러저러한 난관들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고, 잠시 가볍게 회사를 다니려고 했지만 3일 만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무직 특유의 고요함과 새로 바꿔본 직무에 핏하지 않음 등등의 이슈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인 나는 설명 안 되는 증상을 호소하며 사번이 나온 날 퇴사를 했다.



정신적 독립기를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그냥 올해의 내 인생 한탄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돌고 돌아 오늘은 알바를 처음 한 날이고, 설거지를 많이 했다. 사람들 얼굴보다 식기류를 더 많이 쳐다본 날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정했고, 나는 그 공간에서 3일 다닌 회사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어떠한 평안함을 느꼈다. 그래 지금은 내가 고정적으로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상태이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그 덕에 이렇듯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긍정적이게.



실제로 내 상태를 아는 친구들 몇몇은 내게 알바를 추천했었다. 일단 뭐라도 해야 해서 가는 게 필요하고 알바라면 비교적 덜 빡빡하게 하루를 운용할 수 있지 않겠냐는 장점에서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완전히 새로운 도전 앞에서는 주저하게 되는 나였고, 알바를 하려고 이력서를 쓰려고 할 때면 늘 '이럴 거면 그냥 취업을 하겠다' 하면서 창을 꺼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3일이라도 찍먹 하듯 회사를 다시 다녀보니 지금은 알바를 해야 할 때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알바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회사를 잠시 다녔던 것일지도 모른다.



쓰면서 느끼는 것은 참 개인적인 내용의 나열이고 나는 참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글은 블로그에 나만 보기로 올려야 하는데 왜 나는 브런치에다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알 수가 없지만 일단은 쓰고 본다.



물 마시며 하라면서 물을 떠다 주던 분, 차카니를 입에 넣어주던 분, 내 샌드위치에 치즈 더 많이 넣어드렸다고 해주던 분,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 잠시 쉬면서 하라고 해준 분, 집 갈 때 수고했다고 어깨에 손을 올려줬던 (여자) 점장님. 모두가 다정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기분이 좋았던 순간은 일본인 노부부가 내게 질문을 했던 순간. "하또 커피와 아리마스까?" (맞나..) 대충 따뜻한 커피 있냐고 여쭤보시는 듯하여 키오스크에서 알려드리고 "아리가또"를 연신 듣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를 도울 때가 제일 기쁘구나, 모르는 사람과 짧게 대화하는 것에서 나는 꽤 큰 행복을 느끼는구나, 이러한 것들을 다시금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일희일비의 아이콘으로서 또 앞으로 어떤 것에 쉽게 마음이 지치고 또 어떤 것에 쉽게 치유를 받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일련의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나는 스스로 '정신적으로 독립해야겠다'라고 피부로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이 알바는 내 인생 중 하나의 진한 분기점으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면 겨우 5시간 일한 거지만 꽤나 지친 상태로 글을 무지성으로 쓰다 보니 문장들이 길고 지저분하다. 하지만 이렇듯 토해내듯 쓰지 않으면 날 것의 생각을 써 내려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설거지를 하는 내내 얼른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내게 꽤나 작가스러운 면모가 있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감사하게도 비교적 많은 것을 경험해 온 삶이라 자부했지만 여전히 당연하게도, 새로 해보는 것들이 많다. 커피를 마시러만 가봤지 안쪽 매장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처음 알았고, 머리망도 처음 써보고, 유니폼도 처음 입어보고, 카페 알바를 해본 친구들이 왜 트레이와 식기류를 정리할 때 그토록 꼼꼼히 해오는지도 알게 되었다. 역시 뭔가를 해본 입장이 되면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래서 생산자의 입장이 되어봐야 하는 것이다. 소비만 하는 삶을 살던 내가 비로소 제대로 된 노동의 참맛을 알게 돼 생산적인 삶을 살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나는 아직 좀 더 철이 들어야 하고 갈 길이 멀지만, 그 역시 또 기대되는 바다.



인생은 알 수가 없고 모두가 저마다의 서사가 있으니 굳이 누군가의 서사와 내 서사를 비교할 생각일랑 접고 내게 주어진 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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