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제 임기 내에 반드시 집값을 정상화시키겠습니다. ”
TV에서 대통령이 부동산 망국론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김점백 상무는 집무실에서 신경질적으로 TV리모컨 끝을 들고 머리를 톡톡 치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구두는 책상밑에, 양발은 책상 위에 두고 있었다. 신문 편집 초안을 볼 때 하는 행동이었다. 그는 메일로 본 신문 가쇄(假刷)가 맘에 들지 않았다.
인터폰을 눌러서 편집부장을 불렀다.
“가쇄 좀 가지고 들어와 봐.”
똑똑하는 소리와 함께 황 부장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김 상무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심지어 시선도 모니터를 향한 채였다.
“황 부장, 내가 사인 줄 때까지는 절대 부동산 폭락 같은 단어는 쓰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말씀하셨습니다.”
점백이 자세를 풀고, 일어섰다. 황 부장에게 다가가서 가쇄를 낚아채듯이 받아, 책상 위에 펼쳤다. 그리곤 기사 헤드라인 하나를 콕 짚었다.
“부동산 폭락이라고 쓰면 당신 같으면 본사에서 와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나올까?”
점백의 눈이 황 부장을 잡아먹을 듯이 이글거렸다. 손가락으로 황 부장의 머리를 눌렀다.
“마, 생각을 좀 해봐. 우리 언론사 대주주가 건설사야. 건설사는 뭐해서 돈을 버니?”
“건물을 지어서요.”
황 부장은 지금 진화를 시키지 않으면, 재떨이가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답했다.
“건물은 왜 지을까?”
“필요해서요.”
“누가 필요로 할까?”
“회사가요?”
“모든 회사가 사옥을 짓니?”
황 부장이 고개를 두어 번 크게 끄덕였다.
“아... 서민들이 부동산을 갖고 싶어야 하는군요.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어야.”
“그래, 황 부장 말 잘했다. 그 부동산 경기 활성화가 뭐라고 생각하냐?”
“그... 글쎄요?”
“이런 쉐끼가 스카이를 나왔다고? 그 머리를 하고?”
김 상무는 책상 위에 재떨이를 신경질적으로 집어, 담배를 피워 물었다. 황 부장은 회사 내에서 금연입니다란 말은 생각도 못 했다. 재떨이 쪽으로 갔을 때 몸이 움츠려졌을 뿐이었다. 김 상무가 낡은 쇠창문을 옆으로 열었다. 쇠창문이 뒤틀린 창틀을 따라가면서 삐익하는 쇠 긁는 소리를 냈다. 신기하게도 조금 열린 틈으로 담배 연기가 휘어진 일자 모양으로 빠져나갔다.
“너 임마 정말 몰라서 얘기하는 거야?”
황 부장의 이마에 땀이 배어 나왔다.
“좋아, 모를 수 있어. 다시 말해 줄게. 부동산 활성화란 말이지. 사람들이 아파트를 갖고 싶어서 환장을 하게 만들어서 모두의 꿈이 아파트를 갖게 만드는 걸 말해.”
“그... 그런가요?”
황 부장은 소심한 대꾸를 시현했다.
“넌 그 머리를 하고 무슨 경제학을 전공했다고 어디 가서 떠들어 대지 마라.”
“내가 다시 말해줄게. 건설사는 뭔가를 지어야 먹고살아. 그중에 제일 큰 시장이 재건축 재개발이지. 요즘은 아파트 가격이 올라서 한번 지으면 단지당 사업비가 1조에서 2조는 기본이야. 그런데 그렇게 큰 아파트를 지었는데 분양이 안되면 어떻게 되겠니?”
“마... 망하겠죠.”
“물론 선 분양 시스템이라 건설사 입장에서 당장 영향을 받거나 망하진 않지만 전반적인 수요가 없으면 미분양이 되고 그럼 당장은 괜찮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반드시 건설사에 손해가 돼요. 즉 시장이 얼음물이 되면 일반 사람들이 와서 수영을 안 하는 거하고 같은 원리야. 그러니 건설사들은 계속해서 부동산 시장의 물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 하지.”
“그.. 그럼.”
“맞아. 그래서 자꾸 서민들의 불안 심리를 키우는 거야.”
김 상무는 손으로 머리를 한번 쓸어 올렸다.
“시장에서 기업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어. 특히 왜 건설사들이 언론을 쥐고 있나 잘 생각해 보면 답이 나와. 황 부장 올해 몇 년차지?”
“20년 차입니다.”
“잘하자. 좀. 이리와 봐.”
김점백 상무가 자세를 풀고, 구두를 신었다. 그리곤, 가쇄를 들어서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황 부장에게 헤드라인에 대해서도 몇 가지 고칠 부분에 대해서 언급했다.
“네네.”
황 부장은 맞은편에 앉은 채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김 상무의 생각에는 뭔가 인사이트가 있었다.
잠시 후.
황 부장이 고개를 구십 도로 숙이고, 가쇄를 끼고 편집실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서 해당 기자들과 통화를 했다. 해당 기자들을 보낸 수정본을 처리하느라 편집실 불이 밤늦게까지 켜져 있었다.
다음 날 신문 헤드라인은 다음 같았다.
[ 강남 00 아파트, 한 달 사이 5억 올라. ]
[ 한강변 돈 주고도 못 사 ]
[ 자고 나면 오르는 서울 부동산 ]
김 상무는 출근해서 커피잔을 든 채로 집무실 창문을 좀 보고 서 있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새벽같이 나오느라 인사도 못하고 나온 터였다.
= 여보, 부동산에서 아파트 파실 거냐고 물어보는데?
= 슬슬 매물 집어넣어. 당분간 더 올라갈 것 같으니까.
= 하여튼 당신 참 대단해. 존경스럽기까지 해.
= 어차피 인플레이션은 자본사회의 기본이야. 누가 올리던지 먼저 올리는 놈이 임자거든.
= 저녁에 꽃게탕 끓여 놓을게요. 서방님, 잘 알겠습니다.
김 상무의 핸드폰 번호가 또 울렸다. 회사 대표인 처남의 번호가 떴다. 이번에는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매형, 이번에 기사 또 제대로 뽑았더라. 본사에서 회장님이 너무 세게 쓴 사람이 누구냐면서 전화 왔었어. 고마워 형. 헤드라인은 누구 작품이야?”
“누구겠어. 니 매형이지. 아직 황 부장은 야마 잡는 게 좀 약해.”
점백은 황 부장을 살짝 누르면서, 자신도 언론사 기자 출신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우리 매형 참 대단하다.”
“참, 대표님, 아니 처남, 편집부원들 이 참에 회식이나 한번 하라고 하는 건 어때?”
“에이, 그런 건 뭐 쓰시고 결재 올리시면 되지요. 뭐 이렇게 통화까지 해야 해요?”
“이번에 사기 좀 높이라고, 세게 쓰라고 하는 거지.”
“어이쿠,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건별로 50만원 안 넘게, 잘 잘라서 결재 올리라고 해 주세요.”
김 상무는 황 부장을 불렀다.
“그 편집부 고생 많았어. 덕분에 칭찬 받았다. 이번에 기사 제대로 쓴 기자들 데리고 나가서 회식 한번 하고 올려. 내가 매형한테 얘기해 두었으니까.”
김 상무가 손을 들어 소주잔을 말아쥔 듯이 입에 대고 마시는 시늉을 했다.
“찐하게 멕여.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