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나다아재 Oct 23. 2024

아내를 렌탈하다.

아내를 렌털해 준다는 전단지를 받았다. 

이혼을 하고 8평 남짓한 오피스텔에 혼자 들어온 지도 벌써 육 개월째다. 결혼한 지 10년을 채 못 채우고 아내와 헤어졌다. 28살에 결혼해서 참 아웅다웅 살았는데, 아내는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수학선생과 바람이 났다. 그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맨날 TV의 ‘사랑과 전쟁’이란 프로그램을 유튜브로 본 적이 있었다. 실제 경험해 보니 드라마가 아니고,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탐정은 100만 원으로 친절히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주었다. 


모텔 입구로 들어가는 두 남 여.


굳이 내부는 안 봐도 뻔했지만 친절한 탐정 덕분에 현장 급습까지 이루어졌다. 

상간남에게서 위자료 3천만 원을 받아서 이 오피스텔의 보증금으로 냈다. 덕분에 월세는 낮춰서 50만 원으로 하기로 했다. 이혼소송하고, 재산분할도 했다. 재산이라야 겨우 산 시흥의 25평짜리 아파트 하나여서 은행대출을 갚고 나니, 내 손에 떨어진 것은 달랑 1억 남짓이었다. 


9급 공무원으로 많지는 않아도 매달 고정적인 수입이 있으니, 큰 걱정할 것은 없었다. 내가 근무하는 주민센터 인근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 정도를 일부러 구했다.


이혼을 하고 나니 할 일은 절반이상 줄었다. 주말이 되어도 할 일이 없었다. 마트를 갈 일도 없고, 쓰레기 분리수거할 일도 절반으로 줄었다. 아니 절반 이상인 것 같았다. 둘이 살 때는 그렇게 많던 쓰레기는 혼자가 되면서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친구를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아이도 없던 둘이었는데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대화의 절반은 아이들 얘기로 흘러갔다. 내가 없는 결핍이 강조되는 자리는 부담스러웠다. 


오피스텔에는 큰 창문이 하나 있는데 하단의 양쪽은 미는 형식으로 창문을 열 수가 있었다. 고층이라서 그걸 밀면 밑에서 지나가는 도시의 바람이 밀려들어왔다. 26층이라 밑에서 나오는 생활소음들은 잘 올라오지 않았다. 


‘쉬잉’ 


창문을 열 때 나는 그 바람소리가 너무 좋았다. 시원하기도 했고, 답답한 마음의 찌꺼기들을 빨아가는 무슨 마음의 진공청소기 같은 느낌도 났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오피스텔이 바로 보였다. 큰 길가에서도 내가 사는 오피스텔을 보면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주인도 아닌데, 거처가 있다는 것은 이 삭막한 거리에 내려놓은 닻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닻 하나도 없으면 마치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어딘지 모를 시궁창으로 내려 꽂힐 것 같았다. 


금요일 오후, 걸어가도 되는 거리를 굳이 전철을 탔다. 한 정거장을 위해서 지하를 내려가고 올라오는 것은 거의 낭비에 가까웠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나오는데, 지상 보도블럭에 발을 내딛자 마자 검정 두건을 쓴 남자가 주변을 살피면서 전단지를 찔러주었다.


아마 그날 도보로 왔으면 이 얘기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양복상의는 보통 사무실 의자에 걸쳐 두고, 출퇴근 시에는 두건이 달린 후드점퍼를 애용했다. 큰 주머니가 특징인 잠바로 항상 손을 넣고 음악에 심취해 고개를 흔들면서 퇴근을 하곤 했다. 가끔 군중 속에서 혼자 있고 싶을 땐 후드의 모자만 뒤집어쓰면 완벽했다. 시선차단과 소음차단이 동시에 되는 효과였다. 귀에서는 무선이어폰 소리가 빠른 비트를 타고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때였다. 손이 쑥 들어왔다. 


깜짝 놀라서 보니 전단지를 내 호주머니 꽂은 남자는 축지법이라도 쓰는 듯이 벌써 멀리 가 있었다. 가을의 끝이 오고 있는 10월 말이었기에 지하철에서 막 빠져나온 저녁 퇴근길에는 겨울의 한기가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손을 빼지도 않았다. 그냥 손등을 구겨진 종이의 차갑고 꺾인 부분의 모서리가 이따금씩 찔렀다. 

 

어차피 집에는 아무도 없다. 지하 1층의 8천 원짜리 한식뷔페에서 저녁을 때우고, 오피스텔 번호키를 빠르게 눌렀다. 크로스백을 책상 위에 던지고, 호주머니 속에 있던 것들을 다 책상 위에 올렸다. 퇴근할 때마다 하는 루틴이었다. 


전자담배와 무선이어폰 케이스, 지갑과 핸드폰이 나왔다. 가끔은 점심 먹고 현찰을 쓸 때가 있는데 그럼 천 원짜리와 동전이 섞어서 나올 때도 있었다. 책상 끝에는 형광색의 투명 돼지저금통이 있는데 그곳에 잔돈은 넣곤 했다. 미안하다. 오늘은 너 먹일 잔돈 간식이 없단다. 난 돼지에게 눈길을 한번 줬다가 거두었다.


오피스텔 입구 문을 열고 들어오면 왼쪽에 화장실이 큼직하다. 샤워부스와 화장실 그리고 화장실 입구 쪽 문 밖에는 신발장과 수납장이 있다. 수납장을 둘러서 더 안으로 들어오면 한쪽 벽면에 싱크대와 개수대 그리고 싱크대 상단에도 수납장들이 빼곡히 벽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싱크대 바로 앞에는 두 명이서 충분히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탁은 별도로 두었다. 실평수 8평은 생각보다 넓기도 했고, 책상에 앉아서 궁상맞게 밥까지 먹고 싶지는 않았다.

  

샤워를 하고 나왔다. 바싹 마른 수건들을 넣어 둔 수납함에서 한 장을 꺼내 잘 닦고, 속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아래로 색이 다른 운동복도 입고 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금요일 오후라서 이제 내일과 모레 이틀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푹 쉴 생각을 하니 너무 행복감이 몰려왔다. 


그래, 이런 맛에 직장생활을 하는 거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서 앞으로는 웬만하면 저녁은 집에서 해 먹어야지. 


침대에 몸을 던지고 TV를 틀었다. 이혼하면서 유일하게 챙긴 것이 TV와 컴퓨터였다.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 50인치 TV는 과할 수 있었지만 영화관 부럽지 않았다. 나머지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등은 다 아내가 가지고 갔다. 책들도 다 가지고 갔고, 무엇보다 키우던 뽀삐도 그녀가 데리고 갔다. 내가 가지고 온 두 개를 빼고는 그녀가 다 가지고 갔다. 


따지고 보면, 내게 가장 큰 애완견은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떠나간 마당에 개새끼 따위는 알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내가 키워봐야, 하루종일 산책도 못 가고 이 좁은 오피스텔에서 혼자 있어야 하니 난 기꺼이 양보했다. 


TV로 넷플릭스 영화를 한편 시청하고 나니, 저녁 9시였다. 잠을 자기엔 너무 이르고, 누군가를 만나긴 귀찮고, 게임도 싫고 만사가 성가셨다. 간접등을 켜고 소설이나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났다. 그때였다. 내 눈에 들어온 구겨진 전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내...... 렌털......’


전혀 이질적인 단어였다. 렌털은 가전기기를 렌털하는 것이다. 정수기나 헬스기구 안마의자 같은 고가의 물건을 빌려 쓰는 것이 렌털인데, 아내... 라니. 신기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종이를 펴고 있었다. 


[ 모든 것을 렌털해 주는 시대에 이제 아내를 렌털해 드립니다. ]


허, 광고문구 한 번 누가 만들었는지 끝내주게 만들었네. 눈길이 확 갔다. 심지어 그 아래에는 팬츠에 탱크톱 차림을 한 여자가 가죽장갑을 끼고 바벨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헬스장 광고 사진 같은 배경 화면을 넣은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이런 아내가 어딛어.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내 시선은 어느새 아래의 깨알 같은 영업문장들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사랑스러운 아내가 아직 없냐면서 위로의 말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연락처.

이런 아내만 10명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갑자기 술이 당겼다. 얼른 슬리퍼를 끌고 1층 편의점에 가서 소주와 소시지를 사가지고 불닭면을 끓였다. 


다시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고는 한입에 털어 넣었다. 달콤쌉쌉한 알코올 향기가 입안 가득 퍼졌다. 목을 통해서 내려가는 따스한 느낌. 


아까의 전단지는 식탁 위에 구겨진 부분이 올록볼록 올라온 상태로 펴져 있다. 가독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런 광고는 이전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거 불법일 텐데, 이런 식으로 광고전단물을 나눠줘도 되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니면 단순한 AI 로봇인가. 아무리 전단지의 앞뒷면을 봐도 로봇을 대여한다는 말은 없었다. 


허허, 신기한 광고일세, 그러고 보니 그냥 무작위로 전단지를 나눠준 것도 아니다. 아까의 후드 쓴 남자는 달랑 내게 전단지를 찔러 넣고는 유유히 군중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던가. 


[ 선착순 10명만 모십니다. ]


이런 문구는 보통 광고용어에서 ‘훅’라고 한다. 보통 낚싯바늘을 ‘훅(HOOK)’라고 표현하는데, 끝이 휘어져 있어서 물고기가 한번 물면 빠지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다. 굳이 어색하지만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핵심문구 내지는 마지막 갈고리 정도라고 해야 할까. 


선착순 10명이란 말에 난 걸리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송어였고, 광어였고, 도다리였다.

낚시터의 붕어들이 미끼를 보면서 유혹이라는 것을 알고 물듯이, 나도 뻔히 영업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 광고에 나 자신이 걸리고 말았다.


그래, 전화 한번 해보자. 대한민국에서 누가 그랬다. 안 되는 게 어딨 니?

아마도 AI 로봇이겠지. 

아니면, 리얼돌 인형일지도 몰랐다. 

설마 진짜 사람 일려고.

 

말도 안 돼.  


“.............. 여보세요. 아내를 렌털해 준다는 광고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사람은 아니죠?”


“사람입니다. 저희는 AI로봇으로 홍보한 것이 아닙니다. 고객님, 상세내용을 보내드릴게요. 보시고 마음에 결정이 되시면 전화 주세요.”


이런 황당한 답이 있나. 내가 전화를 끊기도 전에 전화를 먼저 끊었다. 

아니, 내 질문은 이게 혹시 사기 아니냐, 뭐 이런 것부터 하려고 했던 것인데. 


‘띵동’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방금 통화를 한 사람이 보낸 메시지였다. 


[ 이제, 건강하고 싱싱한 아내를 렌털해서 사용하세요. ]

[ 5년 계약에 기본 월 70만 원부터 ]

[ 20대 아내는 300만 원 ]

[ 30대 아내는 200만 원 ]

[ 40대 아내는 100만 원 ]

[ 50대 아내는 70만 원 ]


흠... 나는 일단 30대도 버거웠다. 200만 원 저축도 힘든데, 월 200만 원이라니. 그럼 그렇지 정상적인 가격이 나올 리가 없지. 내가 나이가 38살인데 50대 여자는 좀 그렇다. 그럼 내 급여 커버할 수 있는 가격대는 월 100만 원 정도.


전단지를 눈으로 보면서 소주잔에 소주를 부어서 또 원샷을 했다. 매콤한 불닭면을 넣으니 입안에서 매운맛이 번지면서 화끈거렸다. 이렇게 매웠던가. 얼른 일어나서 정수기에서 컵을 대고 찬물 받았다. 


‘벌컥벌컥’


소주보다 물을 더 많이 들이켰다. 시원한 물은 언제나 상쾌하게 해 준다. 다만 그 시간이 짧아서 그렇지.

더구나 지금처럼 온갖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전단지에는 예쁜 아가씨가 아내가 되어 달라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십오 분 정도 지났을까. 


‘따르릉... 따르릉’

아까의 전화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관심 있으신가요?”


“네, 있습니다.”


“생각하시는 나이대는요?”


“30대를 하고 싶은데, 가격이 좀 비싸서요....”


“첫 이벤트라 50% 할인을 하고 있어요. 첫 고객에 한해서요.”


“제가 신청하면 첫 고객인가요?”


“네, 맞아요.”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나이대는 40대에서 30대로 내려왔다. 

내일 오전에 오기로 했다. 10시라고 했지. 알람을 맞췄다. 9시 30분으로. 최소 머리는 감고 있자.


컴퓨터를 켜고 모처럼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켰다. 지난 3개월간 내 돈을 쭉쭉 빨아먹은 놈이었다. 월 20만 원은 여기로 들어갔다. 뭐 남들은 월 50만 원도 쓰고, 100만 원도 쓴다고 하지만 내 급여 수준에서는 딱이다. 난 월급의 10% 이상을 유흥비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이것도 많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어차피 친구들을 만나도 한 번에 5만 원 10만 원은 그냥 나간다. 더구나 공무원 10년 차라서 세후 350만 원 이상 벌고 있다. 분명 신기한 것은 내일 상담을 하기 전에는 의욕이 없었는데 미팅 약속을 잡고 나서 뭔가 내 일상의 변화가 시작된 느낌이었다. 


내 마우스질은 매우 활기찼다. 그날 좋은 아이템을 많이 구했다. 

오래간만에 시작한 게임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나를 놓아주었다.  


‘부웅, 부웅, 부웅’


알람소리에 눈이 떴다. 벽시계를 보니 오전 9시 30분이다. 알람을 맞춰 놓기를 잘했다. 역시 준비성 하나는 괜찮다고 스스로 칭찬했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나서 창문을 열고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보통은 1층에 내려가서 피우지만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고, 무엇보다 귀찮았다.


‘띵동’


담배를 채 피우지도 못했는데 벨이 눌려서 그냥 전자담배 채로 책상 위에 올려두고 문을 열었다. 

정장을 입은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어제 예약하셨죠? 정찬주 씨라고.”


“네, 접니다.”


잡고 있던 손잡이를 당기고 몸을 한쪽벽으로 바싹 비켰다. 


“들어오세요.”


오피스텔 현관문을 닫고 입구에서 여자는 은색 반짝이 술이 달린 하이힐을 벗었다. 하이힐을 벗으니 여자의 키가 아담하게 바뀌었다. 딱, 취향이었다. 믹서커피도 흔쾌히 좋다고 해서 종이컵을 두 개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여자가 들고 온 신청서를 보았다. 나는 정장을 입고 온 여자가 맘에 들었다. 약간 살이 통통하고 튼튼해 보이는 여자였다. 검정 투피스에 하얀색 셔츠깃이 투피스 상의 밖으로 크게 나와 있고 목에는 스카프를 둘렀다. 

AI를 통해서 이미 내 성향에 대한 파악을 하고 온 것이라고 얘기를 해주었다. 내 AI성격활용 동의서에 사인한 기억이 났다. 


신청서를 들어보니 다음 장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어제 문자로 온 내용과 동일했다. 


“그럼, 30대 렌털 아내는 100만 원인가요? “

“네, 특별 할인기간이니까요.”


옅은 화장을 한 여자는 젊어 보였다. 이십 대 후반이나 뭐 그즈음으로 보였다. 붉은 립스틱을 바른 매끈한 입술 사이의 하얀 치아가 고르게 빛났다. 쌍꺼풀은 없는데 눈 끝은 살짝 내려간 강아지상의 여자였다. 

이것도 계약이니 정확하게 따지고 가야 했다.


“5년은 의무계약기간인가요?”

“맞아요, 5년은 무조건 아내로 맞이해서 살아야 합니다.”

“중도 해지는요?”

“불가능합니다. 저희가 렌트해 드리는 여성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교환이나 반품은 가능하고요.”

“아...”

“하지만 거의 없을 겁니다. 특약에 보시면 사실 건강상의 문제나 심각한 정신장애 같은 경우인데 저희가 이미 약 6개월간 사전 교육 및 훈련을 통해서 다양한 테스트를 하거든요.”

“그렇군요.”


지금 내 앞에 상담차 방문한 여자가 맘에 들었다. 화려한 미인은 아니지만 말을 조리 있게 하고, 수수한 것이 딱 내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말끝마다 미소를 짓는다. 물론 훈련을 받은 것이겠지만, 어색하지 않다. 어색한 것과 자연스러운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여자가 입은 투피스가 몸에 꽉 낄 정도로 몸집이 있지만, 오히려 건강해 보여서 맘에 들었다. 아이를 낳아도 순풍순풍 낳고 바로 일할 것 같은 건강함이 보였다. 


“참,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요?”


“아이는 낳아야죠. 5년 렌털기간에는 임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리 합의하셔서 낳지 않겠다면 모르겠지만, 보통은 낳아서 장기렌털로 연장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아이에 대한 보험 같은 것은 저희 본사에서 책임지고 관리해 드립니다.”


“5년 후에 임대를 원하지 않고 여자와 살고 싶으면....”


“그때는 결혼하고 사시면 됩니다. 이미 5년간의 렌탈료도 다 비용 정산은 본사와 한 것이니까요.”


“그럼 왜 사람들은 재렌털을 하나요?”


“그건 5년 후에 원하실 경우 다른 사람과 교체도 가능하고, 같은 사람과 살면서 내는 경우는 결혼의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주로 선택하십니다.”


“제가 처음이라면서요?”


“호호호, 서비스 기획은 이미 5년 전부터 진행해 왔습니다. 1차분은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종에 계신 오피니언 리더들을 통해서 벌써 한번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제약으로 말하면 임상실험과 비슷한 것이죠. 일반인들 중에서는 처음이고요.”


여자는 또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정식출시는 이번이죠. 그때는 테스트였으니까요.”


“아....”


나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조금 전 여자가 말한 결혼의 부담이란 것이 뭘까. 

그럼, 그냥 동거인으로 산다는 것인지. 


“조금 전에 실장...”


내 시선이 책상 위에 명함을 향했다. 


“조선아 실장에요.”


또 미소.


“네, 조 실장님께서 말씀하신 재렌털 시의 결혼의 부담이 싫어서 그냥 재렌털을 결정하시는 분들은 동일인을 의미하신 것인가요?”


“정확히 맞습니다. 그 부분에 아마 의문이 있으실 거예요. 5년이나 살고 좋으면 그냥 더 이상의 렌탈비 100만 원이나 200만 원을 내지 않고 살면 될 텐데, 왜 재렌털비를 내면서까지 연장해서 살려고 할까 하는 부분이 궁금하신 것이잖아요?”


“네, 그 부분요.”


“어떤 사람들은 사람은 좋지만 제도 자체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그럼, 실장님 말씀은 실제 그렇게 선택하신 분이 계셨다는 말씀인가요?”


“그럼요. 물론 저희는 심리학 박사와 사회행동분석 박사들이 모여서 이런 사회적인 실험의 한 단계로 이 서비스를 기획한 것이었어요. 브라이언 박사가 그 문항을 넣자고 주장을 하셨는데 다들 동의를 했죠. 신기하죠?”

“그럼, 5년이 지나서 선택했다는 사람은 어떤 분인지 좀 여쭈어봐도 될까요?”


“흠, 변호사 분이 계세요. 서초역에서 개원하셔서 직원 서너 명 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하신 지는 약 20년 정도 되셨고요. 그분 같은 경우는 개인재산도 몇 십억 있고, 매달 매출도 잘 나오는 분이라 당연히 20대를 선택하셨죠. 28살의 젊고 예쁜 아내분을 렌털했죠. 그리고 5년을 산 뒤에는 아내분이 33살이 되셨어요. 두 분 사이에는 젊고 예쁜 여자아이 하나와 남자아이 하나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한국문화에서 당연히 혼인신고는 했는데 그분이 재혼남이라 별도 결혼식은 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5년간의 신혼생활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재렌털을 원하셨어요.”


“네? 정말요?”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젊고 예쁜 아내를 만나서 잘 서비스를 받고 5년간 20대면 월 300만 원을 낸 것인데 연간 3,600만 원으로 5년간이면 약 1억 7천만 원 정도를 낸 것이 아니던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다음 말을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내 질문은 이어졌다. 


“혹시 여성분께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조 실장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망울 색이 약간의 브라운색이라는 것을 느꼈다. 매력이 느껴졌다. 


“아뇨, 결혼은 동등해지는 것이잖아요. 한국의 방식을 따라서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들도 호적에 올리지만 렌털은 신분이 다르죠. 렌털 아내는 변호사님을 주인처럼 모셨어요. 항상 말을 존대하고 아이들에게도 늘 친절하죠. 왜냐하면 자신이 낳았지만 여전히 남편이자 주인의 소유거든요. 밤늦게 들어와도, 렌털 아내는 잔소리하지 않아요. 자신은 렌털제품이거든요. 물론 저희가 매달 주는 수당이 있어요. 그걸로 개인연금도 들어가고, 이곳 변호사님이 렌털 해지를 하면 저희는 또 다른 곳에 보내주면 되니까요. 나이가 들면 이 분들은 저희 회사의 다른 실버타운으로 직원가로 평생 노후가 보장됩니다. 그러니, 변호사님은 재렌털을 선택했습니다.”


“그럼 여자분은 서운해하지 않았을까요?”


“사람이니까 당연히 서운해하죠. 하지만, 6개월간의 교육기간 동안 저희는 엄청난 멘털교육과 예절교육을 시킵니다. 이런 교육과정은 거의 해병대 교육과 맞먹습니다. 강한 신체훈련을 통해서 강한 정신력이 길러지니까요.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탈락합니다. 하지만, 취업에서 요람까지를 외치는 저희 그룹은 이미 입사하는 순간 그들의 평생을 책임지니까요. 결혼하면 소속이 바뀌지만 그전까지는 회사의 소속이라는 것을 강조 또 강조하죠.”


“그렇군요.”


나는 조리 있게 내 앞에서 속사포처럼 나오는 영업멘트를 들으면 들을수록 조 실장이 맘에 들었다. 

어떤 여성분을 선택받게 될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내 앞에 앉은 영업실장 같은 사람이면 좋을 텐데. 나는 20대를 선택하는 것도 아니어서, 혹시나 나랑 동갑인 38살이나 39살이 오게 되면 기분이 좀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저 같은 경우는 30대를 선택했는데요.”


“네.”


“어떤 여성분을 만나게 될지 미리 알 수는 없겠죠?”


“전데요.”


“네?”


“저라고요.”


내 눈이 저절로 커졌다. 입도 당연히 벌어졌다. 정말? 이런 대박이 있나.

“호호호, 아 본사에서 얘기를 안 해줬나 보군요. 이 자리는 제가 찬주 씨에게 면접을 겸한 자리예요. “ 여자가 환하게 웃는다. 


“물론 저는 찬주 씨가 이미 맘에 들었어요. 찬주 씨만 맘에 든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요. 저도 오케이를 해야 매칭을 해 주거든요. 저는 뭐 이미 스펙은 다 알고 왔으니까요. 어제 알려주신 AI성격보고서를 통해서 다 알고 았죠.”


나는 흥분으로 인해서 손끝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여자의 하얀 셔츠 사이로 풍만한 가슴골이 눈에 들어왔다. 


“펜 주세요. 지금 사인할게요.”


선아 씨는 다음 날 바로 캐리어 2개를 들고 왔다. 그리고 좁은 오피스텔이지만 행복한 나날이 시작되었다. 회사에 출근했지만 지난밤 뜨거웠던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정 주임, 뭐 좋은 일 있나 봐.”


“과장님, 티가 납니까?”


“어이쿠, 티가 나다 뿐이야. 아주 입이 귀에 걸렸구먼. 허허허.”


김 과장은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손으로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굳이 나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첫 결혼식 때 오기도 했었고, 집들이에도 온 직장동료들이었다. 월요일 퇴근을 하는데도, 아주 맘이 벅찼다. 빨리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피스텔에 도착하니 벌써 복도에는 된장찌개 냄새가 진동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니 렌털아내는 얇은 홈드레스를 입고, 엷은 화장까지 한 상태에 앞치마를 두르고, 식탁 위에는 항상 가득 음식을 차려 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에 된장찌개, 김치전에 아삭한 김치들까지 더할 나위가 없었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소주와 맥주까지 동을 냈다. 술까지 마시고 나니, 렌털 아내는 더없이 예뻐 보였다. 

그날 밤에는 코피가 서너 번 터졌다. 


다음날 나는 바로 혼인신고까지 해 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퇴근하고 집에 오니 웬일로 아내가 보이질 않았다. 핸드폰을 했는데 받지도 않았다. 신호를 계속했지만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 

걱정이 된 나는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걱정이 들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아내가 왔다. 


“어휴, 미안해요. 마침 핸드폰 배터리가 다 떨어졌어요.”


아내는 이미 술이 많이 취해 있었다.”


“아니, 어디서 이렇게 술을 마신 거야?”


나는 아내를 부축해서 일단 옷 벗는 것부터 도와주었다. 


“실은 친오빠를 만났어요.”


“친오빠?”


“네, 집안이 힘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사채를 좀 썼나 봐요. 돈이 필요하다고 엄마가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도와줄 일은 없고 해서 오빠 붙잡고 서로 좀 울었어요.”


“장모님이 입원하신 건데, 나한테도 말해야지.”


“우리 집에서는 제가 렌털아내 일 하는 것은 몰라요. 그리고 장모님은 아니에요. 정확히는요.”

선아가 책상 서랍을 가리켰다. 그곳엔 렌털 아내와 관계에 대한 정리가 정확히 되어 있다. 


“그래도 그렇지....”


“그건 5년 뒤에 찬주 씨 선택에 달려 있어요. 그때까지는 시간이 많으니까, 여유 가지고 생각해 주세요. 이렇게 말해 놓고도 5년 뒤에 선택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저희는 관련해서 다큐멘터리도 있거든요.”

선아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럼, 내가 꿔주는 걸로 하면 어떨까?”


“빌려주는 거요? 제가 갚을 능력도 안 되는 데 괜히 빌리면 부담스러워요.”


“아니, 실제로는 주는 것인데, 원칙적으로 하면 생각해 봐 당신 어머님이면 나한테는 장모님이신 건데 다른 일도 아니고 수술이라고 하는데 그걸 모른 척하면 정식 사위는 아니더라도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사실 내가 이렇게 말한 데에는, 아내의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내가 아니라 아내가 속한 렌털 조직과 이 렌털 아내 시스템에 대한 의혹이었다. 어쩌면 저들은 지금 나에게 돈을 뜯어 내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만약 돈을 뜯어낸다면 순순히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건 엄청난 미끼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순간들을 모두 영상이나 녹취등으로 기록으로 남겨서 나중에 경찰에 신고를 할 때 증거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불쌍한 조직의 끄나풀을 구원해 내어, 온전한 내 여자로 만들어 내고 싶었다. 

경제적인 면도 그런 생각에 방점을 찍어주었다. 5년간 2억에 가까운 돈을 내느니, 지금 사기라고 밝히면 매달 100만 원씩 낸 몇 개월의 사용료로 끝이다. 앞으로는 렌털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는 일일터였다. 

장모님이 병원에 있다는 말도 난 믿지 않았다. 뭐, 내가 장모님의 상태를 그전에 들은 적도 없었고, 애초에 선아 씨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았다. 병원비를 조건으로 내 건 것은 그런 치밀한 생각의 결과였다. 


나 혹시 천재가 아닐까? 후후후.

웃음이 나왔다. 뭐 내가 그냥 모른척하고 넘어갈 줄 알았지?

이 참에 오빠란 남자와 어머니도 만나고 좋지, 뭐. 


좋아, 그럼 확실하게 미끼를 던질 차례였다. 

만약 사실이면 병원비를 물면 되지만 사실일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병원비를 낼께. 그럼 되잖아?”


“네?” 


나의 아내, 선아의 눈이 커지다 못해 동그래졌다. 그리고는 막 뛰어와서는 나를 안았다. 


“고마워요. 당신. 너무 멋져요.”


눈에 눈물이 뚝뚝 흘렸다. 눈물이 흐르는 입을 가져다가 키스를 했다. 아내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서 에로틱하지는 않았다. 결국 그 주 토요일 경북대학교 병원까지 KTX를 타고 내려갔다. 병실에 들어가니 병색이 완연한 아내의 어머니, 즉 내 장모님이 누워계셨다. 허리뼈 3번과 4번 디스크가 완전히 터져서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입원비에 사인을 하고 카드등록을 했다. 수술을 하고 결국 2천만 원의 수술비는 내 카드에서 지출되었다. 물론 은행에 전화를 걸어서 미리 한도액 상향을 시켜두었다. 

선아 씨의 어머니이자 내 장모님은 연신 내 손을 잡고는 감사를 표했다.


“어이쿠, 부장 선상님, 내 우리 선애 헌 티 얘기를 겁나게 들어부렇어유 ~. 그렇게 잘해주신다고요. 고맙습니다. 고 맙코 말 거유 ~”


그렇게 난 선아 씨의 부장선생님이 되었다. 부장은 부장이고 선생님은 선생님인데 이 두 가지가 합쳐져도 나쁘지 않았다. 


서울로 올라오는 KTX열차 안에서 선아 씨는 내 어깨에 기대서 자고 있었다. 나는 졸지에 2천만 원과 장모님 용돈 그리고 대구에서의 숙박 및 자동차 렌탈비로 대략 1백만 원 정도를 썼다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더구나, 내가 틀림없이 사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병원수술비는 내 착각이었다. 


서울에 올라오니, 선아 씨는 난리가 났다. 반찬을 해 주겠다고 집을 나섰다. 둘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정찬을 차려서 먹으니 혼자 있을 때 식비는 진작에 오버했다. 


월 200만 원은 그냥 식비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내의 화장품 값과 일상용품 값이 못해도 월 50만 원은 나오는 듯했다. 이것만 해도 월 250만 원인데 여기에 렌탈비 100만 원이 꼬박꼬박 들어갔다. 


아내와 이혼하면서 챙겼던 1억 원은 이미 장모님 병원비를 낸 뒤에 8천만 원 정도 남아 있었다. 그 돈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월 100만 원씩은 저축하고 있던, 적금도 해지했다. 하지만 377만 원으로 매달 500만 원에 달하는 지출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오피스텔을 이사하면서 또 전세자금 대출까지 졌다. 약 2억 원의 빚을 지니 매달 60만 원 정도의 이자가 또 나갔다. 여기에 실비보험이니 공과금이니 해서 월 500만 원은 그냥 숨만 쉬어도 나갔다. 


그렇다. 난 결국 돈에 허덕이다가 거의 5년의 시간을 보냈다. 은행대출로 잡은 전세는 그냥 이사 나가면 은행에서 국가로 바로 나가면 된다. 하지만 지난 5년간 8천만 원의 여유돈과 적금으로 들어놓은 약 2천만 원가량을 결국은 흐지부지 다 써버렸다. 


안정적인 직장인데도, 나는 도무지 사용하는 곳도 없는데 돈이 술술 빠져나가는 마술에 아연질색했다. 아무리 가계부를 쓰고 해도 두 사람이서 500만 원은 빠듯한 돈이었다. 


더구나 내 월 실수령액은 377만 원이다. 

정리를 해 보았다. 

[ 전세자금대출이자 60만 원 ]

[ 아내렌탈료 100만 원 ]

[ 두 사람 핸드폰 요금 10만 원 ]

[ 인터넷 사용료+TV 5만 원 ]

[ 두 사람 교통비 20만 원 ]

[ 식비 100만 원 ]

[ 아내 용돈 50만 원 (화장품, 옷값 포함) ]

[ 내 용돈 30만 원 ]

[ 전기, 수도세, 아파트 관리비 35만 원 ]

합계 410만 원이었다. 


문제는 여기에 아내의 어머니, 장모님에게 매달 30만 원의 용돈을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 아무 생각 없이 내 부모님에게도 각각 15만 원씩 해서 30만 원을 약속했다. 


즉, 매달 480만 원의 지출은 필수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각종 모임 비용이나, 결혼식 축의금이나 장례식의 부조금이 빠져 있었다. 심지어 우리 두 사람의 생일과 결혼은 아니지만 첫 만나서 혼인신고를 한 날에는 결혼기념일이라고 외식을 하고 영화도 가끔 봤다. 그렇게 모든 돈을 다 썼다. 문제는 이제 한 달 후면 다시 재렌털이나 결혼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난 당연히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 결혼만 하면 월 100만 원의 비용이 나가지 않을 터였다. 그럼 내 수입으로 지출과 거의 얼추 맞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랍 속에 렌털 아내의 규정 매뉴얼을 꺼내서 읽었다. 

10조 3항에 재렌털 및 결혼 규정이 적혀 있었다. 


< 60개월의 정규 렌털기간이 끝난 후 재렌털 및 결혼을 선택할 경우에도 처음 렌털때와 마찬가지로 남성과 여성, 양쪽 다 승인해야 합니다.>라고 명확히 적혀 있었다. 


아내가 장을 보러 간 사이에 나는 오랜만에 실력발휘를 했다. 삼겹살을 굽고, 상추를 옥상텃밭에서 좀 따 가지고 왔다. 아파트 노인회에서 관리하는 텃밭에 비료를 기증했더니, 노인회장이 한 달에 한 번은 와서 따 가지고 가도 된다고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와인을 준비했다. 

아내가 와서 와인을 보자 무척 좋아해 주었다. 


“웬일이에요. 당신이 이런 걸 다 준비하고.”


통통한 그녀는 여전히 예뻤다. 난 그녀와 평생을 살게 될 것이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얼른 김치찌개 끓여서 같이 먹어요.”


내가 TV를 보는 사이에, 아내는 분주히 움직였다. 저녁식사를 겸해서 반주로 와인을 마셨다. 


“참, 시간도 빨리 가지. 벌써 당신하고 지낸 지가 5년이야.”


“그러게요. 후딱 지나갔어요. 33살에 와서 38살이라니요.”


“맞아, 내가 38살에 당신을 만나서 벌써 43세야. 후후.”


“그래도 저랑 살면서 어땠어요?”


“아주 행복했지, 뭐. 그러는 당신은?”


“저도 아주 좋았어요.”


나는 빈 잔에 와인을 절반 정도 채웠다. 그리고 잔을 들었다. 


아내도 잔을 들었고, 우린 부딪쳤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다음 달이면 만 5년이 되거든.”


“네.”


“우리 결혼하면 어떨까?”


“...........”  아내는 말이 없었다. 한번 더 물었다. 


“왜, 당신은 싫어?”


아니, 당신과 사는 것은 좋은데요, 생활이 너무 불안정한 것 같아서....”


“뭐 내가 공무원인데 뭐가 어때서?”


“사실 저 말은 안 해서 그렇지 너무 생활에 쪼들려 살았어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 수도 있겠지요. 물론. 하지만 저는 아닌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듣자 큰 배신감을 느꼈다. 맨날 미소만 짓던 여자가 한순간에 이렇게 돌변할 수가 있는 것일까. 


“물론 찬주 씨는 너무 착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무 불안해요. 저는. 사실 제 개인적으로 갚아야 할 빚도 있어서 이 일을 시작한 것이에요. 더구나, 지금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는 저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미안해요.”


“아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참 그럼 당신 조직의 그 누구야, 본부장 하고 통화 좀 할 수 있을까?”


“그건 규정상 안돼요. 하지만 제가 여쭤봐는 볼게요.”


다음날 점심시간이 10분 정도 남은 시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정찬주 씨죠?”


“네 그런데요, 어디시죠?”


“배우자렌털서비스 회사입니다. 저는 김점 백 본부장이라고 합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네, 본부장님 다름이 아니라...”


나는 수화기를 든 채로 사람들을 피해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실은 와이프 렌털 서비스 만료일이 다가오는데요, 저는 연장을 원하는데 와이프가 싫어해서요. 그냥 이대로 끝내야 하나 하는 아쉬움 때문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 일단 용건만 간단히 핵심을 던지면 어차피 되고 안되고는 저쪽에서 알아서 판단할 일이었다. 


“네, 그러셨군요. 저희도 이미 리포트를 받아서 대강 내용은 알고 있습니다. 아내분께서 찬주 씨의 경제력 부분에 대해서 걱정이 많습니다. 나이도 있고 하다 보니 이래저래 걱정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공무원이고 앞으로 큰돈은 아니어도 먹고사는데 지장은 전혀 없거든요.”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나왔다. 


“흠, 저희 회사가 실은 그냥 하는 일이 아니어서요, 다음 주에 시간 어떠세요? 얼굴 좀 뵙고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듯싶은데요.”


“좋습니다. 저는 특별히 약속이 없습니다.”


언뜻 앱을 열어서 캘린더를 보니 다음 주에 특별한 약속은 없었다. 


“그럼 수요일로 정하고 장소는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화는 끊겼다. 


이제 아내와 살날도 25일 남짓 남았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저렇게 잘 지내고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이 탄 한약을 먹은 마냥 씁쓸했다. 


이자까야에서 저녁 겸 반주로 사케에 모둠회등이 나왔다. 뱃살 한두 점만 먹고 술만 들이켰다.

그가 내 몽롱한 의식을 확 깨운 것은 특별한 제안 때문이었다. 


“찬주 씨, 어차피 선아 씨와는 이제 안됩니다. 이미, 선아 씨는 마음을 정했어요. 기왕 이렇게 된 것, 저희가 새롭게 론칭하는 남편 렌털의 호스트가 한번 되어보시는 것은 어떠세요?”


“네?”


“찬주 씨는 직장을 다니시고 계시니까, 게 중에는 직장을 다니는 남편을 원하는 여성 고객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럼 제 월급은요?”


“후후, 월급은 그냥 찬주 씨가 타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말 그대로 남편 렌털이 되시는 것이니 모든 생활비도 여성 측에서 부담합니다.”


“..............”


“그럼 왜 직업을 가진 남성을 원하는 건가요?”


“여기 대상 여성 고객분들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자기 생활이 되시는 분들입니다. 여성 CEO나 대기업의 임원들이나 의사, 변호사들의 전문직이죠.”


“아.....”


“그냥 백수로 있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냥 집에서 집안이나 치우고 이런 남편보다는 사회생활을 놓지 않으면 집에 와도 아무도 없으니 편하게 쉴 수도 있고, 주말에는 또 부부가 같이 생활하면 되니까요.”


“별의별 요청사항들이 있군요.”


“현대사회가 다양해서 그렇습니다. 결혼은 원치 않으면서 미혼모가 되고 싶어 하는 여성들도 있지요. 일종의 남성 혐오도 저변에 깔려 있기도 하고요.”


“재밌네요.”


“그럼 저는 월급도 받게 되나요?”


“네, 맞습니다. 혼인신고도 여성고객이 원하시면 하셔야 합니다.”


“원하지 않으면요?”


“그럼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난 감정의 갈림길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겨우 사랑하게 된 여인 조선아는 떠날 예정이었고,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도 다시 새로운 여자를 만난다니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닌 듯했다. 실연(失戀)의 상처는 다른 실연(實戀)으로 덮는 것이 제일 좋다. 앞의 실연이 연애에 실패하는 뜻이라면 뒤에 실연은 실제로 연애를 한다는 의미다. 어차피 25일 남은 선아와의 남은 날을 기관총 전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병원에 가서 발기부전제를 처방받았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우린, 아니 정확히 나는 그녀가 회사에서 나온 승용차를 타고 가는 것에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도 눈물을 훔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분노로 미칠 뻔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새로운 도전에 기대를 하는 마음의 싹이 자라났다.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우리 기수 약 10명은 주말에만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매우 다양했는데, 심지어 성교육까지 받았다. 강사는 요가복장을 하고 나타난 여성이었다. 그녀는 꽤나 진지했다. 

어떻게 분위기를 잡고, 애무를 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실전 교육시간에는 다른 곳에서 신입으로 들어온 여성들 10명과 실전 훈련에 돌입했다. “자, 오늘 배운 것들을 각자 파트너와 어디 강당이나 자동차든지 반드시 실습을 하세요. 실전을 해보고 안 해보고는 자유입니다. 하지만, 실전처럼 해 봐야 졸업하기 전에 능숙한 렌털 남편이 될 수 있다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


내 파트너는 키가 작고 늘씬한 여성이었다. 나는 배운 데로 그녀를 끌고 토요일 오후의 시골 도서관에서 한적한 구석으로 갔다. 거기서 구석진 소파에 앉은 채로 그녀를 무릎에 앉혔다. 그녀는 거기서 나의 손길에 1시간 넘게 구름 위를 떠 다녔다. 하지만, 그녀가 결정적인 순간에 내 허리춤을 내리려고 할 때 난 거절했다. 

굳이 필요도 없는, 애정도 없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커질 때로 커졌지만 난 하지 않았다. 

그런 내 기어를 한동안 잡고 그녀가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내 절제력을 마지막으로 테스트해 본 것이기도 했다. 

드디어 파견되는 날. 정장을 입고 그 집에 나갔다. 


나를 선택한 여자는 나랑 같은 나이였다. 

43살의 여자는 필라테스 학원을 5개나 운영하는 학원 원장이었다. 

얼굴은 S대를 나온 여자 연예인과 똑 닮았고.

몸매는 만화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나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렇게 나는 렌털남편이 되었다. 


한 번의 이혼경험이 있는 여성은 특약으로 내가 회사 출근이 아닐 때는 소위 ‘개목걸이’를 하고 나가길 바랐다. 그건 24시간 내 거시기를 찍어서 아내에게 전송하는 시스템이다. 체온과 맥박이 올라가면 사진을 10초 단위로 자동으로 찍어서 전송한다. 그리고 걸리면 잘라도 좋다는 싸인도 했다. 


대신 이런 특약을 걸면, 따로 여성 측에서 나에게 별도의 수당을 지급한다. 약 90만 원의 별도 수당이 지급되었다. 자유를 억압하는 대신에 돈으로 메꿔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계약이었다. 

덕분에 나는 매달 여성이 내는 남편 렌털 200만 원의 절반을 받게 되었고, 별도 수당까지 받아서 매달 190만 원의 추가 수당이 생겼다. 내 순수 급여 377만 원과 합하니 매당 약 567만 원의 수입이 생겼다. 더구나 이것은 세후 금액이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새롭게 연인이 된 윤세희 대표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세희 대표는 필라테스를 해서 그런지 발육상태가 남다르다. 특히 가슴은 이혼한 아내보다 컸고, 렌털아내와 비슷했지만 더 육감적이었다. 멀리 맞은편에서 내 기존의 아내였던 선아가 보였다. 


모른 척 지나쳤다. 

그녀의 옆에는 머리가 허연 남자가 손가락 사이에 굵은 카르띠에 반지를 끼고 있었다. 손목에는 IWC 시계를 차고 있다. 지금의 내 아내인 세희 대표는 까르띠에 시계에 루이뷔통 가방을 카트 손잡이 부분의 철제 접이공간에 두고 있었다. 나는 그냥 빙긋이 웃으면서 지나가는데, 선아가 오히려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우리의 철제 카트에 놓인 마치 작은 요트에 달린 깃발처럼 대롱거리는 루이뷔통 가방을 향했다. 뭔가 느낌이 온 듯했다. 그녀가 빙긋이 미소를 짓고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아내가 내 팔꿈치에 자신의 팔을 끼고 걷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있었다. 


“여보, 뭐 해, 가야지?” 그쪽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굳이 몸을 뒤로 돌리진 않았다. 

2100년, 참 별의별 희한한 비즈니스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천사와 악마의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