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째가 되던 해에 허무하게 아내가 떠났다. 부부공동 계좌에서 1억이라는 거금도 빠져나갔다.
정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내 지수는 요리를 잘 못하는 것을 빼곤 완벽한 여자였다. 무엇보다 착하고 애정이 많았다. 특히 정우는 아내가 늘 자신보다 성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요조숙녀 같던 아내가 이런 식의 뒤통수를 때리다니, 믿었던 만큼 사랑의 상처는 더 깊게 다가왔다.
그날 이후로 정우의 저녁식사는 컵라면에 소주였다. 반 병으로 시작한 소주는 1년을 넘기자 두병으로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스팸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 광고 - 아직도 혼자 짠내 나게 사십니까? 당신이 원하던 그 시절의 그 아내를 렌털해 드립니다. ]
상담원과 전화를 하면서, 자신이 거의 1년간 여자와 말도 섞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무료 광고 기간이니 한번 써 보고 결정하시면 된다는 말은 정우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말만 공짜라고 해 놓고 나중에 돈 받는 사기 광고가 얼마나 많은데요. 안 믿습니다. 안 믿는다고요.”
“어머, 고객님 그러셨군요. 하지만 이건 정말입니다.” 전화기 맞은편에서 웃으면서 통화하는 상담원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내 와이프를 알기는 하슈? 어떻게 도망간 아내의 정보를 알고 나한테 전화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정우의 말은 전화 영업으로 도가 튼 전화상담원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일단 한번 받아보세요. 저희 HH그룹은 정말 믿을 만한 곳이에요. 이렇게 큰 회사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1시간 정도의 통화 끝에 정우는 설득되고 말았다.
“그럼 지금 신청한다고 하면 언제 데리고 오는거요?”
“요즘 시대엔 하루 전날만 신청하면 바로죠.”
“그..그게 가능해요?”
“네, 고객님 제가 퇴근하기 전까지만 신청하겠다고 하시면 바로 전화녹취 진행하고 등록 절차 도와드릴수 있습니다.”
결국 정우는 ‘아내 렌탈 서비스’를 신청하고야 말았다. 좋아, 만약 내 기대치에 조금만 못 미치기만 해 봐. 아주 회사를 들었다 놔 놓아줄테니까. 안 그래도 어디 화풀이 할 곳이 없나 생각하고 있던 차에 딱 걸렸다.
다음날 아파트의 현관벨이 울렸다. 전처 지수가 3년 전 입었던 원피스를 입고 서 있었다. 정우는 아내와 똑같은 아니 정확히는 아내보다 10년은 더 젊어 보이는 모습에 입이 딱 벌어졌다.
“여.. 여보.”
하지만 외모만 똑같았지, 여자는 정우에 대해서 이름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정우는 렌탈한 아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외모와 말투 심지어 정우가 아는 은밀한 습관까지 완벽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도 있었다. 원래 아내 지수는 요리를 잘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내는 요리실력이 거의 5성급 호텔 셰프 수준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렌탈 아내의 복귀로 정우의 삶은 빠르게 정상화되어 갔다. 퇴근시간이 빨라졌다. 퇴근하면 식탁 위에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같은 국과 다양한 나물이 건강식으로 차려져 있었다.
주말에는 아내의 손을 잡고 마트에 들러서 같이 장을 봤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평온하고 조용해지니 정우는 금세 전처에 대한 증오를 잊어갔다. 아니 정확히는 아내 지수와 다시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외모도 성격도 똑같으니 이건 어떻게 봐도 자신의 옛 아내였다. 정확히 10년은 젊은 아내.
하지만 이런 행복도 오래가진 못했다. 정우는 새벽에 가끔 아내가 화장실에 가는 인기척에 깨곤 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정확히 새벽 3시에 아내가 화장실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점점 그게 신경이 쓰였다.
안방에는 침대가 2개 있는데 하나는 정우가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아내가 사용했다. 그런데 정확히 새벽 3시가 되면 맞은편 침대에서 부스스하고 아내가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을 보는 김에 정우는 침대 사이 작은 협탁 위에 놓을 납작한 탁상용 전자시계를 하나 샀다. 그날 새벽에도 어김이 없었다. 알람을 켜 두지도 않았는데 새벽 3시가 되니 아내는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정우는 시계를 보고는 아내를 따라 일어났다.
화장실 문 앞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최대한 발 뒤꿈치를 올리고 걸어 발소리가 나지 않게 했다. 문에 귀를 대고 들으니 뭔가 작은 기계음이 났다. 마치 무슨 나사라도 조이는 듯이 윙윙하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그래도 문을 활짝 여는 것은 예의가 아닌듯해서 일단 다시 침대로 향했다. 다음날 오전에 그는 일부러 화장실 문을 망가뜨렸다. 문고리를 일부러 뺐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여보, 미안해 내가 문고리를 내일 다시 달아놓을게.”
다음날 새벽 정우가 뚫린 문고리 구멍 사이로 목도한 것은 아내가 자신의 손가락 마디를 드라이버로 조이고 있는 장면이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정우는 제일 먼저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내 렌털 사업부입니다.”
정우가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 자초지종을 말하니, 수화기 반대편에서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보내왔다.
“그래서요, 지금 어떻게 보상을 해 줄 겁니까?”
“어떻게 보상을 해 드리면 될까요?”
그 말에 정우는 할 말이 없었다. 왜냐면 지난 1년간 돈 한 푼 안 내고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우의 마음속에 의혹이 있었다. 그걸 풀고 싶었다. 정우가 그 내용을 말하자, 담당은 윗라인에 확인을 하고 다시 연락을 주기로 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너무 놀랐어요. 로봇이라고 귀띔은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제가 입은 감정적인 상처가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정우는 자신의 마음속에 이렇게 큰 분노가 숨겨져 있었는지 본인도 상상하지 못했다.
“회사로 오시라고 합니다.”
정우는 보험 회사로 향했다. 회의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담당 매니저가 들어와서 인사를 했다.
“반품을 하시게 되면, 이제 아내 렌털 서비스는 못 받으십니다.”
상대의 표정은 단호해 보였다.
“아니 이게 지금 어떻게 된 것이냐고요”
부장 명함을 내밀었던 남자가 손에 깍지를 끼고는 말했다.
“정우 씨, 혹시 ‘배우자 사후 관리 서비스’라고 들어보셨나요? 이거 실은 보험사의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회복불가능한 말기암이라는 것을 아시게 된 아내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편분을 위해서 들어 놓은 보험상품입니다. 물론 발병 후의 가입이라 일시불로 많은 돈을 내셨죠. 아내분은 본인이 죽은 다음에 남편분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시길 원하셨어요. 저희에게 절대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사실을 아시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상품은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 너무 정교한 로봇 덕분에 관리비용이 너무 높아서요. 보험회사에서 도저히 수익이 나질 않습니다. 해지하시는 것은 자유입니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는 정우를 두고는 부장이 먼저 일어섰다.
“그럼 고민해 보시고 말씀 주십시오.”
정우의 눈앞에 렌털 해지 의사 확인서라는 종이와 보험회사 로고가 박힌 만년필이 놓여 있었다. 정우는 집에서 순두부찌개를 해 놓고 기다릴 아내와 꼭 닮은 지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짜인지 알지만 너무 보고 싶어졌다.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나간 자리에는 사인 자리가 빈 종이가 여전히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