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이나 출신, 민족, 종교, 장애, 성별, 나이, 성적 지향 등등 사회적 기준점과 한 사람이 다르면 그를 무시하고 틀렸다고 하며 혐오하는 사회. 이런 경향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경향은 주로 혐오 표현으로 드러난다. 혐오표현은 그 대상을 이렇다고 낙인을 시키고 그 사람에 대한 비하를 한다. 그 혐오 표현으로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다. 혐오표현의 당사자는 기분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이고 계속해서 곱씹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혐오표현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미 혐오의 대상자로 규정돼 있을 수도 있다. 이런 혐오 표현을 표현의 자유라고 포장하기도 한다. 이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가치이기는 하다. 그러나 특정 집단이 이러한 혐오 표현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면 이는 법으로 규제되어야 마땅하다.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혐오 표현이 아니더라도 특정 사람들을 지워버리는 일들도 많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이런 피해가 더 크다. 비장애인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일 순 있겠으나 그들이 불편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불편해하고 있게 하고 있진 않나 생각하게 된다.
나는 디자인을 진로로 잡고 있어 이 관점에서 조사를 해 보았다. 그중 키오스크가 좋게 보이지 않는다. 시각 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한다. 중장년 세대도 이 기계를 다루기 매우 힘들어한다. "엄마 울린 키오스크'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 키오스크 조작이 어려워 20분을 고생하다 결국 먹고 싶던 새우버거를 시키지 못하고 나와서 딸에게 울면서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엄마 이제 끝났다'라는 표현을 보면서 왜 그리 서글프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일상생활의 다양한 디자인들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면 장애인들이나 노인들이 더욱 세상에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거리에 보이는 장애인들이 많을수록 장애인 인권의식이 높은 나라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인권 의식도 더 높아지지 않을까 고대해 본다. 그러기 위해선 모두 혐오표현을 줄여야 하고 소수자들을 사회에서 지워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에서도 예쁘고 멋있는 디자인에 치중하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리함을 느끼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노력해야 한다. 나는 현재 학생 신분이라 직접적으로 무엇인가 바꿀 능력은 없다. 하지만 계속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해 나갈 것이고 사회적 영향력이 생겼을 때 직접적인 도움이 되고 싶다.
0507 ㅂㅇㅅ. 45분 내리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