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나

by 기록

소녀는 놀이터 경계를 넘어 다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처음이란 두렵지만 그 처음을 넘어선다면 그다음부터는 두려움이 줄어든다. 이전에 봤던 그 언니가 있을까 싶은 생각에 겨울에 갔던 길을 다시 갔지만 그 언니를 만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소녀의 작은 행동도 그랬다. 우선 산너머 아이들에게는 그동안 거리감이 들어서 가지 못했던 놀이터, 아파트 아이들은 학원 때문에 잘 이용하지 못했던 그 놀이공간을 산너머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산너머 아이의 실종은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산너머 아이들이 아파트 놀이터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더욱 큰 문제인 듯했다. 시설 이용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면 놀이터 시설을 유지 보수하는 비용도 들고 지켜보는 사람 없이 놀다가 다치는 등 아이들의 안전 위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래서 연두색 철망으로 어른 키보다도 높게 낮은 담 뒤로 빙 두른 새로운 경계가 생겨났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아이들의 안전이란 이유도 들어 있었다. 그 와중에 작은 손해도 보기 싫은 마음이 담겼는지 철망은 낮은 담 뒤쪽으로 둘러져 아파트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것이 기여하도록 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산으로 향하는 길은 어디서는 오갈 수 있다가 이제는 CCTV가 달린 유일한 철문 하나만으로 놀이터에서 아파트 단지 쪽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소녀도 이전에는 소년의 소식을 들을까 해서 자주 왔다 갔다 했지만 경비들의 무서울 얼굴로 밀어내는 탓에 점점 자세히 살펴보기가 어려웠다. 그 사람들에게는 소녀의 안타까운 사연보다 낮은 담으로 인해 산너머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소녀는 마지막으로 소년이 사라졌던 영상 속 장소인 놀이터를 철망 너머에서 그날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놀이터 저편 의자에서 한 할머니가 소녀 쪽을 향해 손짓을 했다. 소녀는 문을 가리킨 뒤에 손으로 크게 엑스표를 해서 갈 수 없다는 표시를 했다. 할머니께서 자리에 짐을 두고 소녀가 있는 쪽으로 오셨다.

- 문이 안쪽에서만 열 수 있도록 되어 있구나

아파트 주민들은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놀이터 쪽을 통해 빠르게 산으로 운동을 갈 때는 놀이터 쪽문을 통해 운동을 가고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아파트 단지로 돌아갈 때는 그 문을 잘 닫고 다녔다

-어서 들어오렴

할머니가 문을 열어 주었지만 소녀는 안에 들어가도 될지 걱정하며 CCTV를 바라보았다. 그 상황을 모르는 할머니는 소녀의 손을 잡아끌고 의자로 향했다.

- 아가, 아까부터 계속 서 있던데 무슨 일이 있니?

할머니는 소녀에게 두유를 건네며 물었다. 소녀는 사라진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거 참 걱정이겠구나 겨울부터 봄까지 아직도 못 찾고 있다니...

할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멀리서 경비가 소녀를 쫓아내려고 다가왔다가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돌아갔다. 할머니는 멀어져 가는 경비 쪽을 보시다가 소녀를 보고 짐꾸러미에서 빨간 구두를 꺼냈다.

-아가, 이거 신어 보련? 딱 맞는구나 할미 손녀 주려고 산 것인데 요즘 아이들은 이런 신발을 안 신는다고 하더구나

할머니는 소녀의 손을 쓰다듬으며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한 마을의 대부분 땅을 가지고 있었고 크게 농사를 지으셨다고 했다. 그러던 중 자식 내외가 나이가 많으시니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집 주변만 남겨두고 나머지 땅은 모두 팔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모두 정리를 해도 이곳 아파트 하나 살 돈이 안 되어 아들 내외는 열심히 돈을 벌고 있고 손녀는 영어 캠프인지 과학 캠프인지를 나갔다고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기 싫어서 나왔다가 마침 소녀를 만난 것이었다.

소녀는 할머니의 눈이 너무나 쓸쓸해 보여서 꼭 안아드렸다.

- 할머니 구두 너무 예뻐요.

소녀는 일어나서 팔짝팔짝 뛰었다. 그리고 따스한 미소와 눈 맞춤을 보냈다. 할머니도 어두운 얼굴에 조금이나마 온기가 돌았다. 가족들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뜻하지 않게 손녀 또래의 아이에게 위로를 받았다.

- 아가, 할미가 이곳을 나갈 수 있게 도와주지 않으련? 이곳에 너무 넓고 낯설어서 나가는 길을 찾기가 어렵구나. 들어올 때는 지하로 들어왔는데 답답해서 밖으로 나왔더니 영 길을 못 찾겠어

- 네. 할머니 저도 이곳은 잘 모르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알아요.

소녀는 지난겨울의 기억을 더듬어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지만 서로의 존재에 대하여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있어서 인식하지 않는 그 분위기에 길을 묻는 것이 큰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소녀와 할머니는 벽에 붙은 안내판을 보고 길을 찾기로 했다. 여기저기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소녀와 할머니는 나가는 출구를 찾았다.

-할머니 저기 나가는 출구예요.

큰 유리로 한 면 전체를 차지하는 출구 밖에는 바쁜 걸음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할머니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소녀의 손을 잡고 출구 근처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너무 많이 돌아다녀 잠시 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와 소녀는 카운터에서 가장 먼 창문 쪽에 자리를 잡고 꽃차를 마시면서 사람들을 보았다.

- 모두들 바쁘구나... 느린 걸음은 저 사람들이 싫어하겠어.

할머니와 소녀가 보는 넓은 로비에서 모두들 앞만 보고 걸었다. 간혹 땅만 보면서 걸음이 느린 사람이 있었지만 그런 사람은 그곳을 청소하는 분들이었다. 둘은 모두가 바쁜 모습을 보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마치 둘만의 시간만 다른듯한 느낌이 들었다. 입구 쪽에는 항상 소녀를 쫓아내던 경비원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모두 출입구를 막고 있는 기계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이제 보니 할머니 목에는 '방문객'이라 쓰인 목걸이가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나가실 때 반납을 부탁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만나는 일에도 허락이 필요한 것이었다. 할머니의 상황을 보면... 어쩌면 자식들이 부모와 마주치지 않게 요구한 서비스일 수도 있었다. 마치 아무도 없어도 이용할 수 없게 관리되는 놀이터처럼 말이다.





임대 아파트와 자가 아파트 색을 다르게 칠하고 철조망으로 경계 세운 사례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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