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가

by 기록

[가]

인간은 부품을 교체하면 변화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래서 인간의 변화는 때로는 상식을 뛰어넘기 마련이다. 인간들은 평소에는 이런 변화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넘기다가 막상 표면으로 끄집어 내 이야기하면 세상 이치에 맞지 않다며 거짓말이라고 한다. 꾸준히 노력해서 달리기 속도를 높이는 경우가 있다면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에 청력이 증가하는 경우도 있고 그 외에도 평소에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소녀에게 소년의 존재는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나 보다. 계절이 바뀔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던 소녀의 집에 제비가 찾아들었다.

- 높은 곳이 안전하긴 한데 이야기 들었어? 산 너머 높은 곳에는 사람들이 집을 치워버렸데. 사람들 손이 닿지 않게 높은 곳에다 집을 지었는데 보기 안 좋다고 그대로 똑 잘라버렸다는 거지

- 그래서 어떻게 되었데?

- 어떻길 뭘 어떻게 해 그 일로 엄청 싸우고 다시는 알을 낳지 않겠다고 했지

소녀는 흠칫 놀라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두리번거리다가 집 앞 나무 위에 제비 한 쌍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 그나저나 어디에다 둥지를 틀지? 산 너머 높은 곳들이 모여서 괜찮겠다 싶었는데 위험하다면 역시 산에다가 둥지를 틀어야 할까? 산에는 비를 피하기 어렵고 뱀도 있어서 좀 불안한데...

소녀는 제비들에게 다가갔다. 제비들은 나무 위에 있어서 소녀가 다가오는 것을 쳐다봤지만 무시하고 본인들 이야기를 했다. 소녀는 자신이 이상해졌나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소 자신이 있던 익숙한 공간이 맞았다.

- 저기...

제비들의 울음소리가 순간 그쳤다.

- 저기... 혹시 너희들이 말하는 것이니?

제비와 소녀의 시선이 맞닥뜨렸다. 소녀는 제비를 그렇게 자세하게 본 것은 처음이었다. 푸른빛이 도는 검은색 바탕에 아래는 흰색. 부리는 검은색인데 그 주변은 붉은색 물감이 번진 듯했다.

- 너희들 혹시 이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아니?

소녀는 소년의 사진을 꺼내 제비들에게 보여주었다. 제비들은 소녀가 자신들을 해칠 물건을 꺼낼까 해서 날아올랐다가 다시 자리 잡았다.

- 인간이 어떻게 우리말을 알아듣지?

제비가 물었다. 소녀도 그 이유는 모를 일이었다.

- 나도 모르겠어. 그보다 이 사진을 좀 자세히 봐줘

제비들은 소녀에게 다가왔다. 의사가 오고 갈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제비들은 소녀의 어깨로 내려앉아 사진을 보았다.

- 이 소년이 왜?

소녀는 소년에 대한 단서를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동안 있었던 이를 설명해 주었다. 제비들은 양 옆에서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 소년이 하얀 차에 끌려간 것이 마지막으로 본 일이라고? 그런데 이 일에 대해서 알려주면 무엇을 줄 거야?

소녀는 부엌에 있는 콩과 옥수수를 떠올렸다.

- 콩하고 옥수수하고 다른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줄게

제비 둘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침묵했다. 소녀는 다급해져서 빠르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 그러면 안전한 집을 제공할게. 우리 집에 살아도 되고 아니면 비를 가릴 수 있고 우리 집 지붕 아래에 집을 지어도 되고.

- 좋아.

제비 한 마리는 그 사진을 입에 물고 날아갔다. 다른 제비 한 마리는 소녀가 소개해준 지붕을 둘러보며 집 지을 곳을 찾아보았다.

희망이란 신기하게도 작은 불꽃이 점차 커지는 속성을 지녔다. 생기 없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무기력했던 소녀는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올 할머니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소년을 찾아 떠날 물건들도 챙기기 시작했다. 물건을 가방에 차곡차곡 정리해서 나무 아래다 가져다 두었다.

- 이야오옹 야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소녀는 그 고양이 울음소리가 '여기로 오면 너를 잡아먹는 대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거라고'란 뜻으로 들렸다. 아까 나갔던 제비가 소녀에게 돌아와 사진을 넘겼다. 그리고 그 뒤로 고양이 한 마리가 문 안쪽으로 경계를 하면서 머리를 들이밀었다.

- 네가 우리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소녀는 고양이를 쳐다봤다.

- 소년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면 먹을 것은 준다고 해서 왔는데...

소녀는 집 냉장고에서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들을 챙겨 나왔다. 고양이는 소녀가 챙겨 온 음식들 사이를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 뭐 이상한 약을 탄 것은 아니겠지?

- 방금 가져온 것을 너도 봤잖아.

고양이는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는지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입은 음식을 향해 있지만 눈은 소녀의 방향을 향했다. 먹는 것과 소녀를 보는 것을 번갈아 가며 먹다가 소녀가 자신을 해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허겁지겁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곤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그릉그릉 거리며 앉아서 자기 앞발로 입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나같은 멋진 모험가가 이거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 그래 그 소년에 대해 알고 싶다고?

-응.

- 추운 겨울이었지. 날이 따뜻할 때는 음식이 담긴 봉지가 거리마다 있어서 그리고 먹다 남은 치킨 상자가 그대로 밖에 버려져 있을 때는 간간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 하지만 추운 겨울에는 그러지 못해

소녀는 내심 조바심이 났지만 계속 기다렸다.

- 추운 겨울에 간혹 먹을만한 음식이 모인 곳도 있어 하지만 그것을 먹으면 안 되지 차라리 위험하더라도 인간들이 먹고 있던 음식을 얻어먹는 것이 훨씬 안전해. 내 친구들은 길거리에 놓인 음식을 먹고 더 이상 여행을 다닐 수 없게 되었어. 여행이 끝나버린다는 것은 고양이들에겐 참 슬픈 일이지

- 지난겨울에 있었던 이유를 들려줘

고양이는 소녀를 쳐다봤다. 배가 부르자 고양이 특유의 유연한 몸짓과 느리고 게으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따뜻한 봄이기에 내리쬐는 햇빛은 고양이를 더욱 게으르게 만들었다.

- 그래 겨울이었어. 겨울에는 길거리에 있는 음식을 먹기에 위험하지 길거리에 놓인 음식을 먹으면 죽는 일도 많고. 그래서 강가로 먹을 것을 구하러 갔지. 강가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것들 중에 먹을 것들이 있거든 운이 좋으면 그들이 자는 곳 근처에서 온기를 느끼면서 잠도 잘 수 있고.

- 그래서?

- 인간들은 말이야 고양이가 변덕스럽다고 하는데 그건 고양이만이 아니야 인간도 변덕스럽지. 나도 원래 이렇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신세가 아니었어. 촉감 좋은 가죽 소파 위가 내 자리였고 언제나 먹을 것은 넘쳐났지. 내가 먹는 것들은 언제나 입에 한 입 넣으면 부드럽게 사르르 녹는 것들 뿐이었고

고양이는 소녀의 재촉하는 눈을 보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 그런데 어느 날 시간이 흘러 작은 고양이가 들어오더라고. 그리고 어느 날은 주인과 함께 차를 타고 나섰는데 주인이 떠날 때 나를 버리고 가더라고. 아마도 나란 존재보다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가 필요했던 것이지 그러니까 내가 다 크고 나니까 버린 것이겠지.

소녀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하려는 순간

- 알아... 길거리 고양이들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되지. 녀석들 중에는 갑갑한 집안 생활이 싫어 스스로 뛰쳐나온 녀석들도 있지만 대부분 길거리 생활은 이렇게 버림받음으로 시작되지. 그러면서도 또 배고픔에 못 이겨서 누군가 갔다 놓은 먹이를 먹고 하루를 연명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하고. 그냥 이렇게 말이 통하는 인간을 만나니 신기해서 이야기해 본 것이야.

소녀는 왠지 미안해졌다. 그동안 애완동물을 키워보지 않았지만 이렇게 길거리 생활을 하게 된 것이 인간들 때문이란 것에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 말을 많이 해서 목이 말라서 그런데 우유가 있을까?

소녀는 고양이 앞에 우유 접시를 갔다 주었다.

- 길거리 고양이라고 해서 마냥 나쁘지만은 않아. 누군가가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없거든. 그깟 간식을 먹겠다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인간의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할 필요도 없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고양이의 윤기 없는 털과 군데군데 빠진 모습 그리고 피로해 보이는 눈빛을 봤을 때 자신이 살던 곳을 그리워하는 모양이었다.

- 난 모험가가 되어 그 추운 겨울에도 들판에서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지. 그러던 중에 신기한 모습을 봤어. 눈보라가 치는 상황이라 내 눈을 의심했지만 잘 달리던 하얀색 자동차가 하얀 말이 끄는 마차로 바뀌었고 이내 하늘로 날아가더군. 난 야행성이라 그 순간을 내 눈에 잘 새겨 넣었지. 그 마차에 그 소년이 있었어

소녀는 고양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야? 내가 보이에 너와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소녀의 눈빛이 돌아왔다. 고양이가 먹을 것을 먹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진실을 말한 것일까.

- 밤이란 말이야 단순히 빛이 사라진 시간이 아니야. 밤은 조금씩 천천히 세계가 바뀌는 것이야. 인간들은 낮이나 밤이나 언제나 빛 아래 있으니까 그 민감성이 약해져서 그렇지. 밤에 빛이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르잖아.

소녀는 고양이의 말을 믿기 어려웠으나 지금은 단서가 고양이의 말 뿐이었다.

- 그 썰매는 저 강을 따라서 쭈욱 날아갔어. 마치 그 썰매가 눈보라를 만들며 가는 모습이었어.

소녀는 계속 이곳에서 소년을 기다리는 것보다 찾아 나서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고 길을 떠나기로 했다. 원래는 아침에 떠나려고 했지만 고양이가 말한 밤은 세계가 바뀐 것이란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갑자기 동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것이 어떤 시작점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가방을 들고 길을 나섰다. 우선은 고양이가 말한 강으로 가자.


강가에 다다르니 저녁 어스름에 물체만 간간히 보일 정도였다. 강가에는 갈대들이 높게 자라 있었고 사람이 지나갔는지 일부만 갈대가 잘려 길처럼 되어 있었다. 소녀는 일단은 그 길을 따라갔다. 그 길을 쭉 따라가니 강이 나오고 강가에는 배가 물결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소녀는 배에 올랐다. 왜 그랬는지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 배에 올라 가방을 베개 삼아 누웠다. 이미 주변은 어두워졌고 달빛만이 사물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소녀가 누워 잠시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돌이 배를 치면서 리듬감 있게 딱딱 거리던 소리가 들리지 않고 물결 소리만 들리기 시작했다. 강가에 있던 배가 어느덧 갈물의 흐름에 따라 고요하게 흘러가기 시작했고 어느덧 배는 강 중심에 멈춘 듯 가는 듯 고요하게 이동했다. 소녀는 그저 물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긴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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