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by 기록

[가]

-으음

소년은 눈을 떴다.

-넌 나랑 함께 가는 거야

소년은 오직 아름다운 그녀와 함께 있기만을 원했다. 그녀의 말은 눈이 되어 그들 주위에 온통 담요처럼 내렸다. 소년이 타고 있던 차는 어느덧 하얀 말이 끄는 썰매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눈보라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버렸고 썰매는 눈송이들에 의해 공중으로 옮겨지는 것 같았다. 하늘 속에는 눈구름도 없고 달은 매우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년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그 이상한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저 썰매 난간에 기대어 달을 향에 손을 뻗었다. 달에 손은 닿지 않지만 달빛은 소년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드리웠다. 소년은 달빛에 취한 듯 썰매의 난간에 기대더니 이내 잠들었다.



[나]

-으음.

소년은 눈을 떴다.

-넌 나랑 함께 가는 거야

소년은 오직 아름다운 그녀와 함께 있기만을 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함박눈처럼 부드러웠다. 그러나 어딘가 차가움이 스며 나왔다. 소년은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차는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길을 달렸고 바퀴에 떨어져 나가는 눈들은 꼭 눈보라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창문 밖으로 달이 보였다. 소년은 창문에 기대어 달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창문으로 비춰 들어온 달을 손 끝으로 따라 그렸다. 창문에는 소년의 손가락에 따라 달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소녀는 소년 때문에 울었다. 소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아무도 그녀에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소녀는 내내 소년을 찾아보다가 산에 올라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았다. 아파트 놀이터는 산을 타고 내려가면 바로 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지만 열린 공간이 아니었다. 인상 좋은 아줌마나 아저씨를 만나면 넓고 다양한 놀이기구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밖으로 나가란 소리를 들었다. 항상 사람들이 쓰는 공간도 아닌데... 비워진 공간마저도 주인이 있었다. 이 놀이터는 주인이 아닌 아이들은 여기서 놀 수 없다고 했다.(엄밀하게 말하면 주인인 부모님을 가진 아이들이 놀 수 있었다.) 아줌마나 아저씨들이 있을 경우에는 종종 놀 수 있었지만 경찰 아저씨와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절대로 봐주는 것이 없었다. 항상 놀이터 끝자락에 있는 허리까지 오는 낮은 담 밖으로 밀어냈다. 원래는 그 담을 높이려고 했는데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낮은 담을 설치한 것이지 그 안은 아파트 사람들의 땅이기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소녀는 아파트에서 사라진 소년을 찾기 위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꺼려졌다. 저 안을 들어간다는 것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는 느낌이었다.

- 마지막 봤을 때 간다고 했던 곳이 저곳이니 저기 아파트 단지 내 어딘가 어딘가 있을 거야

소녀는 놀이터의 경계를 구분하는 낮은 담 앞에서 고민했지만 소년을 위해서 그 담을 넘었다. 옷에 뭍은 눈을 털며 놀이터 안쪽 아파트 단지의 시작점으로 향했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고 경비 아저씨도 날이 추워 안 보이는 듯했다.

소녀는 지나가다 버려진 큰 거울 앞을 지났다. 자신의 옷차림을 보고 혹시 이 아파트 아이가 아닌 것을 알아보지 않을까 하고 머리도 다시 매만지고 아까 눈을 털어내 깔끔한 옷을 다시 한번 털었다. 그리고 가만히 걷기 시작했다. 놀이터부터 걸어왔던 길은 차들이 다니지 않게 인도만 있었고 매우 깔끔했다. 좌우로는 나무들과 낮은 관목들이 있었고 모두 눈꽃이 피어있었다. 목이 아플 정도로 높은 아파트들에 많은 사람들이 살 것인데 신기하게 길에는 소녀의 발자국 외에 누구의 발자국도 없었다. 소녀는 아파트 단지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지하로 연결된 길을 통해 다닌다는 것을 모르기에 물어볼 사람을 찾아 아파트 단지를 거닐며 발자국을 남겼다.

사람을 찾으면서 한편으로는 경비를 만나지 않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경비를 만난다면 옷차림을 보고 아파트 사람이 아니라고 쫓아낼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나 헤매었는지 해가 조금 더 떠오르고 눈은 잦아들었다. 자동문이 열리면서 한 아이가 나왔다. 아이는 자기 덩치만 한 가방을 메고 있었다. 소녀는 자기 또래로 보이는 아이라서 안심했다.

아이에게 말을 물으려는데 아이는 무엇이 바쁜지 땅만 보고 걸었다. 소녀는 그 아이를 쫒았고 아이는 어느덧

아파트 단지 중심을 흐르는 물의 위에 흐르는 물을 볼 수 있도록 만든 다리 위에 있었다.

- 애, 너 혹시 이렇게 생긴 남자아이 못 봤니?

소녀는 소년과 함께 찍은 사진을 아이에게 보여줬다.

-넌 여기 사는 아이가 아니구나

소녀는 덜컥 겁이 났다. 소년에 대한 소식을 들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벌써 여기사는 사람이 아님을 들키다니... 소녀는 이곳에 산다고 거짓말을 할까 하다가 분명한 목소리에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 응, 나는 여기 안 살아. 어떻게 알았니?

아이는 소녀의 신발과 가슴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옷에는 아무 표식도 없어. 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표식이 없는 옷을 입지 않아.

소녀는 소년의 옷을 바라보았다. 가슴 부분에는 작은 악어가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신발도 하얀 신발에 어떤 식물무늬만 하나 새겨져 있었다. 깔끔하게 옷을 입었다고 생각한 소녀는 입은 옷과 신발의 낡음 여부가 아니라 저런 마크들 때문에 이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아니라고 밝혀진 것이 그저 신기했다. 그리고 무언가 부끄러웠다.

- 나를 쫓아낼 거니?

- 내가 왜? 그건 내 일이 아니야.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경비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있겠지만.

소년은 다리 위에서 흐르는 물을 보며 말했다. 소녀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말했다. 소녀는 안도하고 소년에 대하여 다시 물으려고 했다.

- 이 사진의 소년을 찾고 있어.

아이는 소녀와 사진을 번갈아 보았다.

- 시간은 소중해. 나는 학원 차가 오기 전까지 아주 잠깐의 시간을 혼자 보내려고 이곳에 왔어. 그런데 그것을 네가 방해하고 있는 것을 아니?

아이의 목소리는 방해를 받고 있다면서도 짜증이 담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채로 무덤덤하게 말하는 것에 소녀는 이질감과 함께 겨울의 추운 바람보다 더 차갑게 머리를 울리게 했다.

-미안해... 그래도 다시 봐줄래?

아이는 가방을 추스르면서 말했다.

- 아마도 흰색 차에 썰매를 매다는 위험한 장난을 친 아이 같은데... 이곳 아이들은 그렇게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 않거든.

소녀는 소년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호흡이 가빠졌다.

- 쿵

뒤편에서 무엇인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와 아이가 있는 위치는 아치형으로 볼록 튀어올라 있어서 아파트 단지가 비교적 잘 보였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가니 한 여인이 눈길에 휠체어가 미끄러져서 넘어졌다.

- 눈을 미리미리 치웠어야지. 관리사무소에 말을 좀 해야겠네

아이는 가방을 추스르며 떠났다.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소리나 가는 쪽을 바라보는 잠깐 사이 급하게 걸음을 옮긴 아이를 잡을 순간을 놓쳤다. 소녀는 사진을 주머니에 잘 챙기고 여인에게로 향했다.

- 괜찮으세요?

소녀가 눈을 털고 있는 여인의 옷에 붙은 눈을 털고 휠체어를 바로 세우며 말했다.

- 고마워.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보고 싶어서 나왔는데 빗물 빠지는 부분에 미끄러졌네

소녀는 눈이 헝클어진 부분을 보았다. 쇠로 격자무늬를 지닌 저 부분 때문에 휠체어가 미끄러진 듯했다.

소녀는 그 부분을 피해서 휠체어를 두고 여인을 부축했다. 여인은 소녀를 지지대 삼아 어렵게 휠체어에 올랐다.

- 고마워

- 아녀요 당연한 일인걸요

소녀가 해맑게 웃었다.

-너는 이곳에 사는 아이가 아니구나?

순간 소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네? 어떻게 그걸?

소녀는 아까 만난 아이가 말했듯이 옷에 아무런 표식도 없는 것 때문일까 하고 왼발 뒤쪽으로 오른발을 옮겨 신발에 표식이 없는 것을 보이지 않게 했다.

- 이 시간에는 아이들이 학원 갈 시간이라 아파트 단지가 매우 조용하거든. 그런데 이 시간에 여기 있다는 것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 아파트 단지에서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는 아직까진 못 봤거든.

소녀는 그 여인이 자신을 쫓아낼까 봐 걱정했지만 도움을 주었고 여인의 목소리에 따스함이 묻어나기에 괜찮을 것 같았다.

- 친구를 찾으러 왔어요.

-친구?

소녀는 소년의 사진을 보여주었고 소년을 보지 못하기 전까지 상황을 모두 설명했다.

- 놀이터라면 CCTV가 찍고 있었을 텐데... 매우 짓궂은 아이구나 차 뒤에다가 썰매를 매달았다니

여인은 소녀를 데리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소녀는 밖에서만 이곳을 바라봤지 안에는 처음이었다. 반짝이는 보석을 천장에 달아 두었는데 그 보석 하나하나에서 은은한 빛이 나왔다. 자동문을 지나서부터는 봄날처럼 따스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니 위에서는 아파트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서 그렇지 그 아래는 너무 넓은 공간에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 배고프지 않니?

여인은 지하에 있는 제과점에서 빵을 사서 소녀에게 주었다. 소녀는 여인이 빵을 고르는 동안 제과점 안에 있는 물건들의 가격표를 잠깐 보았다. 가격이 손바닥만 한 것이 만 원 내외의 가격이었다. 소녀는 너무 비싼 가격과 화려한 제과점 내부의 모습에 시선을 바닥에만 두었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있는 것 같아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즐비한 쿠키와 빵들을 보고 싶었지만 보지 않는 척 스쳐 지나가면서 보는 것이 전부였다. 여인이 준 빵은 연갈색 빵 위에 초콜릿으로 코팅되어 있고 그 위에 하얀 눈이 내리고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어딘가의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한 입 베어 물면 그 그림이 깨질 것이라 생각하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할머니와 소년 생각에 빵을 먹지 않고 잘 챙겼다.

- 여기가 관리 사무소란다.

관리 사무소에서 둘은 CCTV를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놀이터는 각 세대마다 아이들이 잘 노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항상 CCTV 촬영을 해 둔다고 한다. 영상 속에는 신나게 썰매를 타는 소년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무리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다가 소년이 하얀 차 뒤로 가더니 자신의 썰매 끈을 그 차에다 연결하는 모습이 보였고 소년의 모습은 사라졌다.

- 얼마 전 항의 들어온 것이 아파트 단지 내에 날붙이가 바닥에 있었다고 했는데 저 소년 때문이었나 보네

직원은 얼마 전에 들어온 항의 사항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위험하게 날붙이가 있어서 자동차 타이어가 터질 뻔했고 아이들에게 위험할 것이란 항의였다.

- 저 차 번호 알 수 있을까요?

- 각도 자체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기 위한 것이라서요. 지금 보이는 화면이 최선입니다.

- 그러면 출차 기록은요?

-그게 차단기 속도보다 빠르게 나간 차 때문에 출차 기계가 고장 나서 수리 중입니다.

여인은 소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소년의 사진을 받았다.

- 이 사진을 복사해서 게시판마다 붙여주세요.

- 아이가 사라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기 사는 아이도 아니고 경찰이 왔다 갔다 하면 주민분들이 불편해하실 수도 있고... 택배 기사분들 들어오는 것도 싫어하시는데 경찰이 왔다 갔다 하면 더욱 불편해하실 듯해서

- 못하겠다는 건가요?

-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관리소장님과 입주민 대표분께 여쭤본 후에 결정할 일이란 것이죠. 일이란 모두 절차가 있기 마련이니

- 아이가 실종되었다는데 그게 무슨...

- 아이가 실종되었어도 여기 사는 아이가 아니니 저희 책임 소관이라 보기도 어렵고

여인은 얼굴이 뜨거워졌다. 소년의 사진을 복사하게 했지만 게시판에 공지될지는 또 별도 일이었다. 이후 경찰이 왔고 여인은 경찰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 난 또 여기 아파트 아이가 사라졌다는 줄 알고... 산 너머 아이들이면 워낙 개구져서 그리고 실종 신고 내기도 뭐한 게 거기 아이들은 자주 사라지기도 하니... 영상 속 아이도 보통이 아닌 듯한데...

경찰은 별 일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일단은 출동했으니라며 상황에 대한 기록을 해 갔다. 그 모습을 보며 여인은 또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소녀도 보았지만 마치 소녀가 보지 않은 것처럼...

- 걱정하지 마렴. 단지 내 게시판마다 사진이 붙을 것이고 경찰에 신고도 했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여인은 그렇게 말은 했지만 게시판에 아이의 사진이 붙을 것인지 경찰이 조사를 시작할 것인지에 대해 본인부터 의심이 들었다.

- 고맙습니다.

여인은 소녀를 놀이터로 배웅했고 소녀는 놀이터의 낮은 담을 넘어 산속으로 들어갔다. 소녀가 움직일 때마다 빵의 포장지 소리와 눈을 밟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아파트 단지 내 아이들 아니라고 놀지 못하게 한 사례 활용

택배기사 보안 및 안전 문제로 출입 금지한 사례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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