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향수'란 시를 보면 얼룩빼기 황소가 우는... 실개천이 돌아나가는 곳이 고향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에게 고향이라고 한다면 도시가 고향일 것입니다. 아닌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인구 통계학적 자료들을 근거로 할 때, 분명 지금은 지방의 인구가 줄어들고 태어나는 아이의 수도 적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것이 다수에 해당되는 경향을 고려한다면 '고향'이란 '도시'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적합할 것입니다.
제 경우도 부모님은 강원도와 전라도 시골이 고향이지만 제가 태어난 곳은 지방 소도시입니다. 그런데 현재 거주지는 시골입니다. 이전 근무지가 시골이었고 이사하는 것이 쉽지 않아 시골에 거처를 마련한 이후 그대로 있습니다. 시골 생활을 잠시만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게 아직도 평온한 곳에 지내며 번잡한 곳으로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수는 저처럼 도시에서 자랐을 것이고 그 이후 일부는 시골에서 사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경우이든 지금은 '향수'와 같은 작품의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경험을 하는 경우는 소수일 것입니다.
시골에서 삶은 지방으로 이전하거나 취업을 하는 것에 고민인 글들에서 나오듯이 도시에서 삶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중에 자주 언급되는 선택권이 없어 불편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자리 잡은 곳은 면 단위라서 몇몇 프랜차이즈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 고향 아파트 상가에 있는 프랜차이즈보다 적습니다. 그래서 특정 프랜차이즈를 이용하려면 옆 동네로 시골길을 따라 8킬로미터 정도를 이동합니다. 시골길이라 하는 것이 흙길에 좌우로 이름 모를 꽃과 풀이 가득한... 우리가 어렸을 때 그림 그리던 그런 초록 들판에 황토색 길을 생각하겠지만... 그런 길이 아닙니다. 아스팔트나 회색 시멘트로 농기계가 지나다니기 좋게 포장한 1차로입니다. 비록 마음속에 그리는 그런 흙길이 아니지만 좌우로 펼쳐진 보리나 이제 막 차오르는 물속에서 심긴 모가 널리 펼쳐진 풍경은 제법 볼만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수로를 따라 끊임없이 흐르는 물소리도 계절을 덧입어 듣기 좋습니다. 이런 길을 따라 가야 본가에서 종종 이용하던 프랜차이즈를 이용할 수 있고 그나마도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골에서 삶은 영화처럼 취업에 실패한 여주인공이 직접 농사와 수확을 하고 그것으로 요리를 하는 치유의 삶도 있겠지만 면 단위 소재지의 삶은 그렇게 농사 일색이지 않습니다. 당연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으셔서 집 밖을 나가면 인도에 다양한 모종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또한 편의점 파라솔이나 주변 정자에는 일하시던 차림으로 술을 드시는 분들이 계셔서 운동을 위해 운동복을 입은 제 모습과 차이가 나기는 합니다. 하지만 더워진 날씨에 그늘을 찾아 더위를 피한다는 것. 그리고 시원한 목 넘김을 즐기는 것은 어디나 같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와서도 영화와 같은 전형적인 시골의 삶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거실 TV로 태블릿과 노트북하고 연결해서 국립극단에서 제공하는 뮤지컬을 보거나 OTT를 활용해 영화 감상을 합니다. 때로는 40분 정도 차를 끌고 영화관에 가기도 합니다. 시골의 삶에 대해서 때로는 몇몇 이야기꾼들과 매체에서 관심을 끌고자 최대한 이색적인 것들만 모아서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의문이 드는 것은 서울에 살며 에너지 구입 외환 업무를 담당했던 친구 녀석의 생각이었습니다. 그 녀석은 바빠서 종종 서울에 올라가 관광명소를 다니는 저와 달리 서울에 살지만 명소들을 구경도 못하다가 지방에 있는 특별시로 근무지 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우울증이 생겼다는 등 무료하다는 등의 말을 입에 붙이고 삽니다. 그래서 서울에 살 때 돌아다니지도 않았는데 뭐가 아쉽냐고 물으면, 대학 시절부터 사회인까지 내내 북적거리던 곳에서만 지내다 한적한 곳에 사니 그것이 어렵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리고 이용하지 않던 문화 시설들도 '있는데 이용하지 않는 것과 없어서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친구 녀석이 지내는 곳이 제가 사는 곳처럼 저녁에는 개구리울음 소리가 들리고 낮에는 고양이들이 영역 다툼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곳도 아닙니다.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어서 친구의 이런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 들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구나 하며 넘깁니다. 다수의 정부 부처 기관들이 지방으로 이전할 때 매우 큰 반대가 있었던 것을 보면 서울에서 오랜 기간 지낸 사람들만의 심적 정착 요소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게 된 친구가 이정도라면 서울 토박이의 마음은 인터넷에 종종 올라오는 근무지 관련 고민 글들을 비춰볼 때 더 강한 서울에 대한 애착 또는 정착 심리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우리가 흔히 고향을 떠올리면 초록 들판이나 산이나 실개천을 그리는 것과 다른 면이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골에서 삶은 이제 두 해가 지났기에 아직은 새로운 것들이 숨어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운동을 나가면 동네 앞을 흐르는 하천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습니다. 때를 잘 맞추면 5일 장이 열려 한산했던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인터넷으로 구매하던 분식류나 계란빵과 같은 길거리 음식이 자리합니다. 동네 밖으로 운동을 나가면 종종 마주치는 트럭과 농기계들을 제외하면 조용하니 바람과 햇살만 있습니다. 때로는 넓은 밭 한가운데서 일하시던 분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제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 잠깐의 순간을 제외하면 그저 조용하고 넓은 공간에 혼자 있습니다. 그 한적함에 마냥 거닐다가 주변을 둘러보면 지금 시기는 온통 초록입니다. 논과 밭에는 연둣빛 초록이고 산은 눈이 시리게 짙은 초록입니다. 비라도 왔다가 개면 더 푸르릅니다. 그리고 이런 색감은 직접 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걷다 보면 어느 집 마당에는 닭장이 있고 닭들이 더위에 축 쳐져서 저들끼리 좁은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더 가면 어느 집에는 토끼가 우리 안에 들어 있고 코를 연신 쫑긋거립니다. 물론... 관광농원이나 동물원처럼 깔끔한 환경에 있지는 않습니다. 애완용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키우는 가축이기 때문입니다. 길을 가다 보면 집들마다 문 앞에 개가 머물 곳을 두었는데 몇몇 녀석을 제외하곤 짖지도 않고 눈만 꿈뻑거립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도 재미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집을 자신이 필요한 시기에 만들었기에 집과 집 사이 길은 삐뚤빼뚤하고 그 사이사이 조금 있는 공간에는 채소를 심고 가꿉니다. 어떤 집은 특색 있는 카페처럼 독특한 장식물을 두어 꾸밉니다. 길을 가면서 주의해야 할 점은 도시의 길은 어디로 가든 대부분 연결되어 있지만 시골에서 길은 가다 보면 막혀있기도 하고 때로는 어느 산 앞에서 도로포장이 끊겨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동하면서 마을과 마을 사이를 오가다 보면 어르신들이 많아 그런지 오랜 시간 머문 커다란 나무 옆에는 정자들이 꼭 있습니다. 그래서 걷다가 쉬기 좋습니다. 게다가 최근에 만들어진 정자는 중앙에 테이블을 둬서 여느 카페테라스보다 더 마음에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향과 관련된 사람들의 인식이 현대 사회에 맞도록 작품으로 나온다면 도시를 주제로 해서 나오게 될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도시에서 상처를 받았는데 도시가 고향이라면 어디로 치유를 떠나야 할지 의문이 듭니다. (때론 드라마에서 상처 입은 이가 추억이 담긴 장소로 가는데 이는 도시가 고향인 경우가 많아 고향이 치유의 의미를 잃어가는 한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한편으로는 고향의 모습을 도시로 그리는 가능성은 낮지 않을까란 생각도 듭니다. 공중파에서 '고향'이란 말이 들어간 프로그램에는 대부분 지방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다수의 고향이 도시가 된 시대에 아무 문제없이 도시가 아닌 곳을 고향이라 방송하는 사례들이 보면 현실의 고향은 도시이지만 다수의 마음속 고향은 시골이란 공감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교과서 내에 고향을 다룬 작품들이 여전히 있을 수 있는 것도 이처럼 현실의 고향은 도시이지만 마음속 고향은 시골이란 동의가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비록 '향수'의 고향은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우리에게 고향이란 심리적 위로를 받고자 하는 마음의 울림을 유발하며, 감동이 함께 작용할 것입니다. 진정한 고향은 도시였지만 이때 작용하는 심리는 마치 다양한 장비를 챙겨 자연을 즐기기 위해 떠나는 캠핑의 유행처럼 살아가면서 일상을 벗어나 마음의 위안을 얻은 자연을 심적 고향으로 생각하기에 '향수'와 같은 문학 작품들이 여전히 교과서에서 '고향'을 그리는 사례로 제시되고 여진히 TV에서 고향을 다루는 프로들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한편 도시가 고향인 분들에게 이런 경우 마음속 비친 풍경이. 작품에서 제시하는 시골 풍경이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합니다. 마치 시골이 고향이었던 사람이 도시에서 일하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틋함과 유사한 감정이 든다면 그건 아마도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연의 일부라 느끼고 그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 어렸을 적에 도시를 떠나 일상을 떠나 부모님과 함께 했던 여행 중 행복했던 기억이 새어 나와 마음속 고향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합니다.
시골이라고 하면 속도가 느리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는 일에 따라 그 속도는 차이가 나지 않을까 합니다. 제 경우 현재 실고 있는 곳(시골)에서 학교에서 활용할 프로젝트를 위해 논문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습니다. 시골의 시간이 느리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연의 시간을 따르는 농사일이 반복되기에 밖에 있는 사람들이 느리게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밤을 낮처럼 생활하는 도시인들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농사일은 밖에서 보면 단순하지만 지나갈 때마다 보면 조금씩 변화가 있고 할 일이 많습니다. 어느 날은 물을 채우고 어느 날은 모를 심고 어느 날은 둑을 다지고 수로를 살피고 어느 날은 무엇인가를 뿌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단순한 일의 반복이라 생각하고 시간이 느린 곳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시골에 살더라도 제 경우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제가 있는 공간에서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갑니다. 아마도 자연의 흐름에 맞추는 시골 생활과 다르게 공간만 시골이고 인간이 시간을 정하는 일을 하기에 그런 듯합니다.
우리가 도시를 복잡하고 혼란한 곳으로 여기며 그 반대를 시골로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도시는 구성하는 사람만큼 욕망(의지)이 혼재된 곳입니다. 이들 욕망은 잠시 숨을 고르거나 부딪힐 뿐 사그라들 줄 모릅니다. 반면 시골은 인간과 다른 존재인 욕망(의지)이 없는 자연과 공존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상쇄되기에 이런 속성 때문에 도시를 복잡하고 혼란한 곳으로 인식하며 시골은 나름 할 일이 많더라도 평온하고 단순한 곳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고향집에 가면 게을러지고 집에 있으면 읽고 정리하다 밖에 나가면 멍 때리고 그런 상황이 재미있다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그 끝은 이상한 곳으로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