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시골 동네처럼 제가 사는 시골 마을도 하천을 끼고 산책로가 있습니다.(아마도 농업을 기반으로 한 자연 발생적 마을이기에 시골 마을은 하천을 하나씩 두른 듯합니다.) '운동하기 귀찮아...'라는 생각을 하면서 뒤척이다가도 그 길만 걸으면 숨이 가빠오고 코가 뻥 뚫리는 느낌에 '역시 나오기를 잘했어'라는 즐거움을 주는 곳입니다.
토요일이라 늦잠을 자고 할 일을 좀 하다가 다시 낮잠을 자고 눈을 꿈뻑이며 일어났습니다. 아직 밖은 밝았고 조금 있다 정신을 차린 후에... 이렇게 하루를 끝내면 위험하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잠옷을 입은 채로 무작정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자주 다니던 산책길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4시가 되어가는데 여전히 햇살은 힘이 있었고 바람은 여름처럼 후덥지근하지도 가을처럼 서늘하지도 않은 딱 좋은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게 가던 중에 산책로 난간 그늘 아래 누워 계신 분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산책로를 가로질러 누우셨고 자전거로 지나가다가 그분이 움직이면 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갔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가면서 보니 그분 옆에는 1.5리터 소주병이 거진 다 비워져 있었고 옷차림은 매우 남루했습니다.
옷차림이야 제가 사는 곳이 시골이라 외국인 노동자 분들도 많고 농사짓는 분들도 많으셔서 본질에 충실한 옷차림에는 익숙합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며 일할 필요가 없이 있는 그대로 일에 집중하시는 분들이니까요. 정직하게 일과 부딪히는 옷차림은 깨끗하지 않아도 문제없다고 봅니다. 옷의 기초적 기능에 충실하기에 지금의 사회에서 잊고 있는 부분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는 더 긍정적이라 봅니다.(반면 본질에 충실하지 않은 옷차림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평가를 위해 착용자의 심장 부근에 인식표가 붙는 경향성이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늘에 가려져서 그런지 검은빛 얼굴과 그 옆에 비어 가는 술병을 보면서 산책로를 가로질러 누우신 분은 잠을 자는 것뿐이지만, 그분을 보는 제게는 왜인지 두려운 감정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나간 후에 다시 자전거에 올라 기분 좋은 바람을 즐겼습니다.
늦게 나온 만큼 어느덧 6시가 가까워오니 바람에 찬기운이 스밉니다. 그래서 왔던 길을 돌아가던 중 저 멀리 지나왔던 길에 여전히 다리를 뻗친 채로 산책로를 막고 있는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해가 기울어 이제는 그분의 모습은 색감을 잃어 검은 형체만 보입니다. 이전에 그 형체가 무엇인지 봐 두지 않았다면 그 모습만으로 겁이 나 멈칫했을 것입니다.
해가 떨어지면서 추워지는데 감기 걸리지 않으려나... 제가 길을 나선 것이 4시 전후고 저분이 1.5리터 술을 거진다 드신 것을 생각하면 대략 3시간 내외로 시간이 흐른 듯합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산책로인데 아무도 이 일에 상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산책로를 막고 주무시는 것에 대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히 지나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지금 지나가면 그 이후에도 계속 술에 취하셔서 누워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의 따스함도 산그늘에 서서히 식어가기에 그대로 두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역 파출소에 전화를 하고 위치를 알려드렸습니다. 파출소에서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 기다렸다가 산책로 안내를 부탁하셨습니다. 하지만 거절했습니다.
(나중에 산책로를 지나다가 빛이 나서 보니 위험한 경우 위치를 표시하면서 경찰 출동을 하도록 돕는 장치가 가로등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것을 활용하면 위치 알림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 것입니다)
잠시 후, 모르는 폰 번호가 떠서 아까 경찰분인 줄 알았는데 119 대원이셨습니다.(이를 통해 술 취한 분을 도와달라고 경찰에 신고하면 119에 함께 연락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19 대원분께서 취하신 분을 흔들어 깨우시거나 부축을 좀 해 주겠냐고 했는데... 순간 저도 모르게 '일반 시민분들보다 신고한 것만으로도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거절했습니다. 전화 너머로 소방대원분의 상한 감정이 느껴졌고 전화는 끊겼습니다. 제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출발하려고 자저거를 추스르면서 생각했는데 당장은 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한여름 은행 앞, 커다란 사각형 철골 구조물 앞에서 주무시는 분이 더위에 위험할까 봐 연락했다가 귀찮아진 경우 때문인지 아니면 산책로에서 잠을 자던 분이 제 얼굴을 보고 제가 자주 다니는 길에서 해코지 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전화 너머로 느껴진 그 분위기... 소방관 분께 제가 생각 없이 한 말로 인해 상처받지 않으셨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돕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소방관이나 경찰관분들처럼 남을 돕는 일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일반인들은 타인을 직접 돕지 않고, 때로는 보고도 모른 척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남을 돕는 일을 업으로 선택한 분들 덕분이며, 최소한의 안전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덕분에 남을 돕는 당연한 일이 특별한 일이 되어 버린 시대(타인을 돕는 일이 뉴스에 나오고 진급되는 경우 등.)에도 우리의 일상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화 이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술을 드시고 주무시는 분에게 다가갔습니다. 제가 한 말에 대해 반성해도 술을 많이 드신 분을 부축해드릴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그분이 자세를 고쳐 잡으며 눕는 것을 확인한 후에 자전거를 돌려 멀리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허위 신고로 몰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진도 하나 찍어 두었습니다. 저 멀리서 산책로를 경찰 suv가 와서 정차하고 취하신 분을 앉혀서 대화를 나누고 태워 갔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제 폰으로 출동 및 귀가 조치를 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드는 생각이지만 신고하기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내가 올바르게 살지 못해도 학생들에게는 좋은 말을 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근거로 생활을 하도록 조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회는 교과서처럼 바르지 못하고 학생도 배운 것처럼 세상이 움직이지 않음을 아는데도 서로 이상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받는 상황에 있어 고민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과 다르더라도 무엇이 옳은지 아는 상황... 만약 그 상황에 다른 분들처럼 그냥 지나쳤다면 이런 당위성을 지닌 사항들을 제 입으로 설명해야 할 상황에 '나는 그렇지 못했는데'란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한동안은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술을 드시고 가만히 누워 계신 분인데 그분에 대하여 두려움이 일어난 현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술을 마시고 잠이 드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본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술을 드시고 주무시는 그분에게 두려움이 생긴 것은 저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라 봅니다. 왜냐하면 쉬는 날에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는 산책로에서 두세 시간 동안 길을 가로질러 누우신 분이 계속 그 자리에 누워 계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제가 술을 드시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분에 대해 두려운 감정이 생긴 것은 예측 가능한 일반적 행동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 간섭하지 않으려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규칙을 지키는 행동은 주변에 아무도 없더라도 보이지 않는 사회와의 관계와 약속에 대해인식한 결과라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규칙과 상식에 대해 심리적 거부감 없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인식 없이 산책로를 가로지른 모습에서 일반적 규칙을 어기고 행동(원인이 되는 요소가 아닌 타인에게 언어 또는 물리적 폭력을 행사 등)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우리가 경험으로 알고 있는 비일상을 촉진하는 '술'이 그 근처에 있던 것도 이런 판단을 내리게 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돌아서 가는 행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개인적 관계에서 나와 생각이 다를 경우에는 관계 맺기와 교류의 횟수를 줄입니다. 그리고 나와 성향과 생각이 맞은 사람들은 별도의 만남 시간을 갖고 그 생각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이는 개개인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끌리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봅니다. 이는 청소년기에는 매우 개방적이고 무엇이든 하다가 대학생이 되면 그 범주가 여전히 유연하지만 자신과 관계가 깊은 친구나 연인에게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한정되고 이후 성인이 되면 가족들과의 교류로 중심적 소통이 한정되는 현상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봅니다. 시간의 흐름을 통시(세로)가 아닌 공시(가로)로 접근해 본다면 일상 중 엘리베이터에 탑승했을 때 아이들은 관계 맺기에서 유연하거나 관련 인식이 없어서 인사를 하거나 어떤 행동에 호기심이 생기면 가만히 다가와 쳐다봅니다. 하지만 성인들의 경우는 개인의 거리를 두고 상대가 참여를 희망하는 의사를 밝히지 않는 이상 또는 그런 의사를 밝혔어도 체면이란 이유로 어떤 소통과 행동에 참여하기를 꺼려합니다. 이는 아이와 함께 있는 부모님께서 아이의 행동에 대해 제약하는 경험을 떠올리면 공감이 되리라 봅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서 본다면 다수의 사람들이 해당 길을 왔다 갔다 왕복을 하면서 운동할 때 그냥 지나친 것은 일반 상식이라고 하는 공통된 생각면에서 상식을 벗어난 행동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피하는 행동(개입이란 관계 맺기의 거부)을 한 것이며 일반적인 인간들의 공통된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공통의 합의 사항은 법으로 정해 처벌을 하고 법보다 넓은 범주에는 예의와 상식이라는 부분을 기준으로 삼아 사회라는 무리 안에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봅니다. 그런데 술을 드시고 누워계신 분은 산책로를 가로질러 누워 계셨습니다. 이 행동이 다수의 사람들은 상식에 어긋나기에 심리적 저항감을 가지고 그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그런 행동을 의도가 있던 없던 하셨기에 그 결과인 길을 가로막고 누워계신 것을 봤을 때 사회적 합의와 기준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자신과 동등하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아 피하신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는 우리가 예의와 상식을 잊고 행동한 사람에게 지인이라면 인간이 되라거나 철 좀 들라고 충고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나와 동등하게 보지 않고 피해버리는 경험을 통해 설명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신고하는 상황에서도 혹시 그분이 술이 깨서 그냥 이동하신다면 제가 허위 신고하는 것이 되기에 사진을 찍어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의 사회를 생각하면 불편함이 많은 사회입니다. 말이 갈등이 되어 큰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고 사회적 상식이라 생각한 것들이 빠른 시대의 변화와 사회 중심 생각을 형성하는 세대의 변화로 인하여 변화하고 있습니다. (꼰대란 표현이 자리 잡은 후 어린 꼰대라는 용어의 등장, 서로를 배제하고 상호 문화 내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려고도 하지 않는 경우 등) 한편 일상 중에도 믿음과 신뢰가 작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특정 브랜드의 폰에 녹음 기능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는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기업이나 기관에 불만을 말하거나 개선을 요청할 때 나의 말이 녹음되며 이후 분쟁이 있을 때 내가 한 말이지만 녹음한 파일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만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생각이 표현되는 말 다음 단계인 행동까지 이루어지기에는 심리적 부담감이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또한 행동을 하기 전에 생각하는 단계에서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행동을 일으킬 심리적 요인들을 제거해 나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 무엇인가가 작용해서 적극적이지도 무시도 아닌 어정쩡한 행동으로 술에 취하신 분의 안전을 확인한 후 멀리서 사진을 찍고 경찰이 올 때까지 급격한 상황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며 일이 끝날 때까지 멀리서 지켜보는... 이런 결단력 없는 소시민적 행동을 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