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고시원에서도 눈이 떠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부합하게 창문이 있는 방과 창문이 없는 방은 그 가격이 다르다. 그래도 창문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차별하지 않는다. 창문이 있는 사람은 방 창문으로 환기를 하고 창문이 없는 방은 복도를 활용해서 환기를 하는 정도의 삶의 차이는 있다.
구보는 발끝만 살짝 움직여 이불을 밀어낸다. 이곳에 있는 침대는 형태는 침대이지만 사람을 지지해 주는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네 방향에 플라스틱과 중간에 있는 두 개의 플라스틱이 실질적인 무게를 지탱하는 전부이다. 이렇게 효율적인 공간에서는 효율적인 움직임이 미덕이다.
계단을 내려와 1층 공용 식당에서 언제 구매했는지도 모를 스테인리스 대접을 하나 꺼낸다. 스테인리스라는 명칭은 분명 녹슬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겠건만 많은 이들이 역사를 거친 이 대접은 본래의 반짝임을 잊은 지 오래이다. 꼭 붉은색 녹만이 녹이 아니라 이렇게 얼룩덜룩한 것도 녹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있다.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했나? 그것과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구보가 열은 커다란 밥솥에는 아직 밥이 1/4 정도가 들어있다. 사람들의 자발적인 인간성에 기댄 이 밥솥은 가득 차 있는 경우가 적었다. 때로는 아무도 손을 타지 않아서 누렇게 된 밥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주인 사이에 실랑이 가 일어날 뿐이다. 하지만 구보에게는 운이 좋게도 색도 적절한 하얀 쌀밥이 밥솥에 들어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근본 있게 밥한술 조지고 구보는 산책을 나선다. 이곳에서 떨어진 곳에 대형 마트가 있다. 분명 가족들과 함께 살았을 시절에는 쇼핑 카트를 끌고 그곳을 다녔다. 하지만 효율성이 중요한 지금은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 노점을 이용한다. 과거에 갔었던 그런 마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썩은 야채들을 한 바가지에 무조건 천 원에 파는 노점에서 마음껏 쇼핑을 한다. 윗동이 어디 갔는지 모르는 당근, 고급 식재료라고 티비에서 말하던 아보카도 그리고 둥글다고 고정관념을 심어줬지만 둥글지 않은 양파까지 모두 잘린 부위도 색도 다르지만 평등하게 천 원씩 주고 구입한다.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평등한 값어치가 책정되는 이곳 노점상은 나름 좋은 곳이며 이런 사회 속에서 이상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미 학원에 간 사람들이 많기에 10시 정도에는 방마다 한 사람씩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다. 우선은 고급 재료로 불리는 아보카도를 꺼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아보카도는 한 개에 3천 원이란 사회적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경쟁에서 밀려난 아포카드 한 소대는 빨간 바구니란 새로운 가치 측정 기준에 맞춰서 천 원이란 사회적 가치를 받았다. 밥을 먹을 때 보던 영상들에서 아보카도는 샐러드나 샌드위치처럼 무언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요리로만 보여진다. 마치 양파는 고급 요리부터 계란 볶음밥에도 들어가는 넓은 포용력을 가진 것과 비교하면 아보카드는 가리는 것이 많은 예민한 사람 같았다. 아보카도가 말랑말랑하기에 칼이 잘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미끄러워 칼로 한 번에 가르는 것에 실패했다. 실패의 흔적이 난 흠집을 기준으로 반으로 나누니 인터넷 검색을 한 것과 같은 아보카도와 비슷하지만 약간 걱정이 있는 듯이 검은빛도 감돌았다. 잠시 혀를 가져다가 맛을 보니 이건 편의점 도시락에 딸려오던 버터맛과 비교해 매우 건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맛있냐라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맛있다고 답하기는 어려웠다. 맛이라는 것에 대한 기준이 무엇이며 왜 이 맛에 개당 삼 천 원이란 가격을 누가 책정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 먹어보는 아보카도에 만족해하기로 했다. 영상에서만 보던 것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맛이 없기에 이것은 내게 맞도록 개조해 보기로 했다.
아보카도가 들어간 음식 중 들은 이름, 과카몰레... 인터넷이란 참 편하다. 이렇게 제대로 알지 못한 것도 검색을 하면 바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렇게 있는 조각들만 주워다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데 왜 사회에서 내 위치를 찾을 때는 그 모든 조각을 들고 가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터넷에 뭐라고 나와 있지만 그냥 내 마음대로 만들기로 한다. 아보카도에 노점에서 사 온 양파를 채를 썰어 넣고 마늘을 넣고 으깬다. 그리고 어제 먹다 남은 마른 빵 위에다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