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지도용 시범용입니다.
문학 시간에 앞에 선 선생님들은 항상 수업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곤 했다. 문학이란 과목의 특성에 영향을 받았는지 고3을 대하는 선생님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이야기꾼들이었다.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들었던 이야기를 구보는 떠올려본다. 소설가란 직업 조선시대부터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소설가란 직업이 있던 시절에 소설가는 지식인들이었다. 농사와 단순 노동이 주된 업무를 해야 했고 좋은 직업은 모두 일본인들이 차지하던 시기, 너무 많이 알고 그 착취 구조가 보이는 소설가들은 시대의 지식인이면서 그런 사회 균열을 찾아서 기록하곤 했다. 그들의 기록은 당시에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집안 배경이 좋은 소설가가 아니라면 밥 한 공기 또는 소설을 쓸 종이의 부족을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구보는 한 개에 삼 천 원의 사회적 가치가 측정된 아보카도를 요리해 먹으며 자신은 그보다 저렴하게 소비를 했으니 현명한 소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현대에는 모두가 지식인이 되어 소설가 따위는 잉여인력이 된 사회 속에서 나름의 지식인으로 똑똑한 소비로 저항을 한 느낌이었다. 언제나 생산을 눈앞에 내어 놓는 이들과 달리 지식인이 너무 많아진 사회에서 소설가는 지혜라는 더 나아간 것을 내놓아야 하고 그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주워다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었다.
- 아 맞다.
얼마 전에 고시원 대청소를 하면서 녹슬어서 버린다는 녹슨 밥공기와 국그릇을 받아다 둔 것이 떠올랐다. 가져다 바닥을 보니 명장이란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두 개가 한 쌍으로 10만 원이었다. 구보는 미소를 지었다.
-이것을 팔면 오랜만에 사회에 기여하는 것인가?
명장이란 무엇이기에 같은 기능을 하는 제품보다 두 배의 값어치를 쳐주는 것일까? 그릇을 만들기 위해 망치질을 하는 것이나 기계가 금속을 피는 것이나 모두 동일하다. 게다가 얼마 전에 본 영상에서는 명장이라고 해서 현대적 제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구보는 피식 웃고 검색을 해서 공용 공방을 찾았다. 명장이란 사람이 조선 시대의 기술을 이어가는 것으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면 현대적 문명을 모두 거부한다면 더 높은 가치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가방을 찾으나 없다. 구보는 얼마 전에 본 명품이란 것들이 가격이 오르기 전에 구매한 일을 떠올렸다. 명장이란 사람들이 한복을 입거나 전통에 대한 향수를 반영한다면 명품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온전히 현대의 문명과 현대의 경제적 혜택을 오롯하게 즐기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본질은 중요하지 않은지 환경으로부터 보호와 거리가 먼 특이한 모습의 제품을 제시하기도 했다. 마치 수업 시간에 사과를 중앙에 두고 그리는데 관심을 받고 싶어서 낙서를 하고 이목을 끌고 싶어 하는 아이의 작품 같았다. 하지만 구보는 명품이란 제품을 친구가 착용한 것만 봤을 뿐이지 오롯하게 소유해 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더는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두 손에 하나씩 밥그릇과 국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밖은 많은 고시원들 사이로 인적이 드물었다. 누가 정했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이 같은 시간에 일을 시작하고 일을 끝맺는다.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려면 구보와 같은 상황이거나 흐름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어야 가능하다. 둘 다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것은 같은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흐름을 만들어 내는 사람을 찬양하고 흐름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 자체에도 불쾌감을 표현다. 그리고 그것은 시선이나 말료 새어 나온다. 어쩌면 모두가 다르듯이 자유라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는 듯하다. 아니면 자신의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타인을 자신과 비슷하게 질서 안에 넣어 만족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긋난 부분을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은 힘을 쓴다는 말이고 매끄러워진다는 것은 결과가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금 더 가니 상가가 나왔고 아침 손님을 받은 이후라 그런지 한산하게 정리를 하는 모습이었다. 구보는 지나가다 국밥집 간판을 보았다. 국밥이라고 하는 것이 한 그릇에 반찬과 밥이 전부 담긴 일품요리라고 하던데... 누가 만든 말인지 말이란 인식의 시작점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국밥을 먹던 이들은 반찬이 많은 한 상차림에 대한 선택권이 있었을까? 구보는 들고 가는 밥그릇과 국그릇을 본다. 그리고 이 둘을 합친 크기보다 국밥 그릇의 크기가 작지 않은가란 생각이 들었다. 효율적이다!
구보는 미끄러지려는 두 그릇을 다잡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본질인 밥과 국을 담을 수 있음을 유지하고 있지만 녹이 슨 모습에 본래의 가치를 잃은 이 두 물건을 보면서 마음이 예뻐야 하고 내면이 좋아야 한다는 전해지는 말에 대하여 의문을 던져본다. 이 두 대상은 자신의 본질을 오롯하게 유지하고 있음에도 단지 반짝임을 잃어서 타인의 인정을 잃은 것일 뿐이었다. 구보는 괜스레 그릇에 있지도 않은 먼지를 털어본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니 카페들이 나타났다. 이 좁은 지역에는 방 하나에 사람 한 명이 산다. 그래서 그런지 카페도 참 다닥다닥 많이도 있다. 이곳은 좁은 방을 벗어나 쉴 수 있는 곳이다. 구보는 이 그릇을 팔고 나면 오랜만에 커피를 한 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공용 공방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개방
사람들의 요구가 많아지면서 사회적 요구도 늘어나고 곳곳에 이런 공용 공방과 같이 함께 쓸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는 듯했다. 구보는 우선 국그릇과 밥그릇을 세척한 후에 세공기 앞에 앉아서 그릇을 고정시키고 장갑을 착용했다. 굉음과 함께 표면이 갈려 나가면서 그릇은 본연의 광택을 찾아가는 듯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노트북 앞에서 폰을 손에 놓지 않으면서 지냈던 구보에게 문자를 모니터에 새기는 일 외에 색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나름의 즐거움을 주었다. 손에서 무엇인가 바로 변화를 주고 이를 바로 확인한다는 것은 내 능력을 확인하고 내가 유용한 사람이란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 명장의 그릇 세트, 가격 2만 원
구보는 명장의 마크가 잘 보이도록 사진을 찍고 세척 후에 깔끔한 모습을 다시 찍었다, 세척을 한 후에 그냥 말릴까 했는데 손을 닦는 휴지가 있기에 그 휴지를 사용했다. 환경을 생각한다고 하면서 요즘 난리라고 하던데 어제 고시원 앞에 있던 쓰레기 봉지는 환경에 대한 훼손을 허락받은 증명서이다. 그리고 훼손의 정도에 따라서 가격도 달라진다. 하지만 그 담을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가격을 측정하고 쓰레기를 땅으로 보내는 일이 그렇게 저렴할 수 있는가? 이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내어 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구보는 왜인지 모를 소름이 돋는다. 자연을 훼손할 정당한 방법이 제시된 것도 우습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않으며 매번 버리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매번 이곳에 올 때마다 구보나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속에 어떤 거부감이 들어도 그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더욱 무서운 일이다. 모두가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선을 넘을 수 있는 사람들이 구분할 수 없는 상태로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약속에 대하여 어길 수 있는 그들에게는 자신은 타인과 동등하지 않다는 마음이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럴 것이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힘을 가진 이에게조차도 갈등을 피하고 살아갈 힘을 온전하게 보존하려고 한다. 그런데 사회적 합의를 항상 어기는 이들에게는 상대와 동등하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질서에 따르는 이들과 달리 매번 선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구보는 많은 구매 희망 메시지를 받으면서 가격을 너무 낮게 측정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사이에 신뢰는 중요하단 생각에 처음 연락온 사람에게 커피를 마실 카페로 오라고 연락을 한 후에 이동을 했다. 공방을 나가면서 구보는 괜시리 빛을 발하는 두 그릇을 부딪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