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라테를 마시며 구보는 창 밖을 본다. 이곳에는 앉아서 마실 공간이 있는 카페와 작은 출입구만 한 곳에서 커피를 가져가는 곳이 있다. 커피를 마시며 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마치 링거를 맞으면서 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링거를 맞으면서 병이 치료되기를 희망하며 버티는 시한부 인생들이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조건을 맞춰주면 좋을 것인데 그들이 서 있는 곳은 그렇지 않았다. 인간과 인간 이하의 계급을 나눴기에 그들은 인간이 되고자 링거를 맞으며 오늘도 스스로의 욕망을 깎아내고 있다. 깎아낸 욕망의 조각들은 감동스러운 작품이 되거나 쓸모가 없는 부스러기 될 것이다. 그들과 다른 길을 간다면 구보처럼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거나 사회 전체가 조금씩 나눠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늘려나가야 할 것이다. 이미 이런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뤄졌지만 인간 본성에 의해 실현되지 못함을 구보는 잘 알고 있었다. 나보다 힘이 강하고 계속 강해지는 것과 싸우기보다는 내 옆에서 이길 수 있을만한 상대와 맞서는 것이 더욱 승산이 있다. 그래서 구보는 차라리 그 길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이것으로는 조금 부족한데
구보는 카페 라테로 허기를 달래면서 오랜만에 생산활동의 결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생각했다. 구보가 테이블에 올려둔 짐이 독특하기에 거래자를 찾는 일을 어렵지 않았다. 돈을 받고 커피값을 지불하면 16000원이 남는다. 구보는 점심은 카페라테로 가볍게 대신하고 무엇을 먹을지 생각해 본다. 우선은 카페 안에 진열장을 보면서 아까 봤던 가격표를 떠올려본다. 보통 구매한 케이크가 3만 원 정도였을 때, 8등분을 하면 3750원, 카페 케이크는 여기서 다시 반을 나누니 넉넉하게 쳐줘도 2천 원 하지만 그 가격은 5000원부터 시작한다. 구보는 이 가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궁금해졌다.
-하나, 둘, 셋, 넷...
네 테이블에서 조각 케이크를 두고 포크로 조금씩 잘라서 먹고 있다. 생산적인 사람이 적은 곳이 이곳이다. 이처럼 미래를 담보 잡힌 소비가 특화된 곳에서 이렇게 비효율적인 소비가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구보는 인간이 선택하는 대부분의 기준이 효율성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라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5천 원인 케이크와 6천500원인 케이크 사이에는 체리가 있고 없고의 차이인 듯했다. 7000원인 케이크에는 블루베리와 초콜릿칩이 다르다. 이러한 작은 차이에 기꺼이 지불을 하는 것이 사회적 약속으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그리고 이런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은 구보가 판매한 그릇에서도 반영되었다. 이것이 과연 물건에만 해당이 될까? 아니다. 사람 또한 작은 차이로 인해서 서로 다른 사회적 가치가 측정된다. 그렇다면 사람과 물건의 사이에는 차이가 없이 동일할까? 아니면 인간이 우선이란 말이 회자되듯이 인간이 물건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일까? 구보는 카페 앞 좁은 길을 지나가는 자동차를 본다. 차가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좌우로 피했다.
- 뭐 각자 알아서들 할 일이고
구보는 컵을 반납구에 가져다 두면서 폰을 하는 알바를 보았다. 어디까지가 알바와 손님사이의 일은지 그 경계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든 말하지 않아도 정해지는 것은 있기 마련이었다. 구보가 어제 점심을 먹었던 국밥집에서는 아주머니가 반찬과 물, 물수건을 모두 내왔다. 그리고 구보가 계산을 하는 동안에 다시 아주머니는 구보가 먹은 자리의 그릇을 치우고 테이블을 닦으셨다. 구보가 카페를 나가기까지 카페 점원은 주문하는 손님이 없기에 계속해서 폰을 보고 있었다. 사소하지만 삶을 유지시켜 주는 한 끼의 식사와 선택사항인 커피 사이에서 책정된 가격과 일하는 분의 역할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문이 닫히면서 카페 알바가 시선에서 사라지고 대신 카페 문에 "천변풍경"이란 문구가 들어왔다. 좁은 골목길은 아스팔트이지만 아까 차가 지나갔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좌우로 많은 가게들이 있고 사람이 좁은 골목의 중간을 기점으로 일정하게 흐르는 것이 하천의 주변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보는 몇 걸음 걸어서 길 중간으로 위치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걸었다. 느리게 걷는 구보를 피해서 좌로 우로 사람들이 빠르게 흘렀다. 카페가 천변풍경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이 골목의 모습에서 발상을 얻은 것은 아닐까 했다. 구보는 카페 라테로 간단히 점심 요기를 했지만 사람들은 이제 점심을 먹을 시간이기에 바쁘게 이곳저곳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도 사람이 가득한데 밖에도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식당에 자리가 없다면 가판대에서 판매하는 컵에 담긴 음식을 먹으며 가기도 했다.
-컵 탕수육 3천 원
구보는 아침에 봤던 공용 주방을 떠올렸다. 고시원에서 공용 주방의 공용 밥솥은 공유 경제의 비극이지만 공용주방의 수납장은 나름의 보물창고였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연인에게 도시락을 만들고 남은 포장지나 소스 가루 등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리고 기본적인 조미료나 식용유등은 고시원 주인의 배려로 갖춰져 있었다.
- 이 돈으로 고기를 사자
구보는 이렇게 할 일을 정하고 언덕을 올라 공원으로 갔다. 공원을 지나가다 보니 공용으로 사용하는 운동기구가 있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공원은 매우 한가하고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