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힘이 가져온 도시의 매력
우리나라 달동네의 역사는 정말 아득하다.
바람나그네(필자)도 어린 시절 서울. 약수동이란 달동네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자랐다.
지금은 옛 터전이 없어지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미아리, 삼양동 , 봉천동, 금호동, 혜화동, 홍제동, 해방촌등도 시대의 역사를 풍미한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다. 이 곳에서 70년대~80년대 서민의 꿈과 애환이 잉태되고 소멸되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이 재개발되어 예전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이전 포스팅에 이화동 벽화마을을 살펴보다가,
국내를 뛰어넘어 전 세계인에게 감동과 전율을 준 대표적 사례가 있어
바로 한걸음 더 들어가 보기로 한다.(요즘 잘 나가는 방송사 멘트!^^)
이름하야, 그 유명한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의 파벨라,
가파른 산동네 빈민촌 판잣집이 아름다운 크레파스 채색으로 바뀌었는데 바로 파벨라다.
부산 감천마을도, 리우의 파벨라를 벤치마킹한 사례로 알려진다.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로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리우는 아름다운 해변과
열정적인 삼바 축제, 거대 예수상으로 대표되는 코르코바도 산을 끼고 있다.
곳곳의 산자락에 파벨라(Favela)라고 불리는 빈민촌이 늘어선 게 리우의 또 다른 모습이다.
노예 출신 흑인들,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온 빈민들이 뒤섞이면서 형성된 이 곳은
우리 달동네도 비슷하지만 처음에 벽돌을 하나둘 사서 담을 올리고, 돈이 모이면 또 벽돌을 사다 모아
벽과 담을 세웠다. 그렇게 1층 집은 2층 집, 3층 집이 되고 어느새 작은 방이 가득 들어찬 다가구 주택이 됐다.
올림픽 개최도시. 리우데자네이루 안팎에만 700곳이 넘는 파벨라가 있으며, 거주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다. 대표적인 파벨라인 호 싱야에는 16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범죄 조직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범죄와 마약의 온상으로 알려진 파벨라.
이곳은 치외법권 지역이나 마찬가지다. 갱단 지배 아래 각 마을의 자치대가 운영된다.
평소엔 경찰도 이곳을 찾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하루를 힘들게 버텨내는 도시 빈민들에겐 소중한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파벨라의 아이들은 축구, 삼바로 성공하길 꿈꾸며 자란다.
금세기 최고 축구 영웅. 호나우두, 네이마르가 바로 이 파벨라 출신이기도 하다.
리우올림픽 세계인에 앞에 서다.
지난 2016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 올림픽 개막식을 기억하는가?
마라카냥 올림픽 스타디움 그라운드 한편에
다양한 채색의 아름답고 알록달록한, 독특한 공연 무대가 선보였다.
층층이 (5~6층 정도는 된 듯) 성냥갑처럼 쌓아 올린 무대 컨셉은 다름 아닌 ‘파벨라’였다.
바람나그네(필자)도 올림픽, 월드컵등 국가 대형스포츠 행사를 기획, 운영한 바 있어
화면에 구현되는 브라질 올림픽 개막식에 대한 감동이 업계 관련자로서 역대급이었음을 또렷이 회상한다.
전 세계인에게 숨기고 싶은 아픔을 오히려 과감히 드러내 예술로 승화시킨 멋들어진 무대였다.
올림픽이 끝나고, 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 곳 파벨라에도 진정 평화와 행복, 안식이 찾아오길 바랐지만
최근에도 아직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애석할 따름이다.
반면에, 올림픽 이전에 빈민촌. 파벨라를 변화시킨 계기가 있었음을 돌이켜보자.
마을클잭슨의 뮤직비디오 배경지
1996년. 슈퍼스타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They Don't Care About Us!
리우 그리스도상 아래에 있는 산타마르타 파벨라는 마이클 잭슨이 1996년 뮤직비디오(They don't care about us)를 촬영한 장소로 유명하다. 이 노래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인권'을 노래한 곡이다.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의 전성기 시절 이 곳 파벨라의 현실도 그의 관심대상이었다.
인류의 평화와 인권, 자유, 행복을 외친 슈퍼스타, 마이클 잭슨의 외침을 통해 전 세계인들이
파벨라의 현실에 대해 공감하고 깊은 애정을 표했다.
다만, 파벨라의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브라질 당국의 부패와 무능이 결국 방치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빈민촌, 판자집촌 파벨라의 이미지를 바꾼 중요한 계기가 또 있다.
희망잃은 산동네를 꿈동네로 바꾼 아티스트
2005년. 희망의 씨앗 ‘파벨라 페인팅 프로젝트’
네덜란드 아티스트인 예로엔 쿨하스(Jeroen Koolhaas)와 드레 유한 (Dre Urhahn)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2005년 브라질을 여행하며 파벨라의 참담한 현실을 목격하고
참혹한 그곳을 위해 시작된 것이 파벨라 페인팅 프로젝트이다.
본격적인 작업은 2007년부터 진행되었다. 쿨하스와 유한은 먼저 2006년에 파벨라. 빌라 크루제이로에 첫 벽화 ‘연 날리는 소년’을 작업하고 2008년, 2010년. 약 5년 동안 세 개의 페인팅 프로젝트를 완성시켜
리오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되었다.
브라질 당국도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 외국인 아티스트가 희망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디자인 아티스트인 그들은 디자인 초안을 잡고 마을 사람들을 교육했다.
마을 사람들이 이 페인팅 작업에 참여하며 청년들은 페인팅 작업이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갖게 되었다.
곧바로 지역 범죄율이 평소 25%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전 세계적으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무엇보다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작업을 통해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을 넘어 범죄율을 줄이고 경제력을 향상할 수 있는 에너지를 이끌어내었다.
마을은 아름답게 채색되어갔고 어둡고 암울한 파벨라가 활력과 미소를 찾게 되었다.
지금 볼 수 있는 파벨라도 그들의 도전과 헌신이 있었기에 올림픽 무대에도 오를 수 있었다.
요즘 한양도성길을 전 코스 돌아봤지만, 우리도 88 올림픽 이전에
서울의 달동네 이미지를 최대한 외국 방문객에게 감춘 팩트를 기억한다.
(그 당시 그 많은 달동네를 없앨 순 없기에.)
장충동 신라호텔의 창문은 서울 시내방향으로만 오픈하고 뒤편 달동네(금호, 옥수, 약수동) 풍경은
가급적 안 보이게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씁쓸한 얘기지만, 당시엔들 어쩔 수 있겠는가?
파벨라는 아직도 암울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예술로 채색되고 감성이 융합되어 예전 마이클 잭슨, 그리고 두 명의 네덜란드의 디자이너의 열정이
다시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