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최고 핫플레이스는 상업과 유흥에 시들고 있다. 해법은?
독특한 명명법이지만, 홍합 거리를 아시는가?
싱싱하고 통통한 살이 일품인 바다 먹거리 홍합이 아니라 홍대. 합정의 준말이다. 단순한 지명을 합친 의미보다 뜨는 상권, 뜨는 거리, 그리고 젊은 스타트업의 창업 메카로 떠오르며 밸리가 붙어 홍합밸리이고. 지역도 홍대, 합정동, 동교동, 연남동, 상수동에 걸쳐 있기에 ‘新 ’ 자가 붙어 新홍합밸리이다.
이 지역은 먹고 마시고 흔드는 ‘클럽문화’를 넘어서 ‘예술’과 ‘창업’이 결합한 창조센터로 진화하고 있다. 신홍합밸리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내에 인천·김포공항이 있고, 반경 5㎞ 안에 13개 대학의 대학생 10만 명이 있으며, 예술가 2만 3000여 명이 모여 있는 문화 에너지가 넘쳐나는 곳이다. 홍합밸리의 무한한 잠재력과 미래를 위한 가능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2010년 이후 공항철도역과 경의선이 개통되면서 홍대입구 주변권역이 강남역에 이어 유동인구 제 2위에 오르며 이 지역은 급속 팽창 중이다. 2017년 후반기에 이른 지금에도 홍대입구역 과 합정동 사이 대로변에는 수십층높이의 첨단 오피스텔 빌딩과 세련된 비즈니스호텔 등이 여기저기서 신축되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가 폭등하는 부작용도 있지만, 어찌하겠는가? 사람이 몰려드는 곳에 돈이 따라오고, 돈이 따라오면 어김없이 땅값, 건물값, 사무 실세, 밥값 , 커피값이 덩달아 오르게 됨을.
상수동, 동교동, 연남동, 합정동. 이름하여 新홍합밸리 지역은 2000년 이전만 해도 상당히 낙후된 서울의 서부지역 중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신촌을 중심으로 근처에 10여 개의 대학가가 몰려있어 그나마 젊은 세대가 많이 찾아오는 추억과 낭만의 상권과 거리를 형성할 수 있었다.
주말이면 북적대는 신촌(지금의 명물거리 주변)에 비해 특히나 홍대, 합정역은 소박하고 조용한 뒷동네였다. 나름 예술과 교감하는 단골 마니아층이 일부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가고 골목골목에 자리 잡은 카페나 주점의 풍미가 전통을 만들어 갔다.
지금 서울의 최고 핫플레이스는 홍합밸리(거리)를 제일 엄지로 친다.
과거 8~90년대 명동의 계보를 이어 주말이면 거리를 가득 메우는 젊은 신세대들, 심지어 중딩, 고딩이라 불리는 어린 세대들도 기꺼이 이 열기에 주역으로 한몫 낄 정도로 이 지역은 현재 밝고, 싱그럽고 생생하다. 거리 예술과 낭만, 로맨스가 넘쳐나고 때론 상상 속에 꿈꾸던 설레는 만남도 기대해 볼 수 있는.
예전에 홍대 지역은 하천이 많아 ‘잔(작은) 다리’, 세교동으로 불렸다.
1970년대까지 판자촌을 기차가 가로지르며 석탄을 실어 날랐다. 1980년대 경의선 철로가 폐선되면서 학사주점이 들어서고 홍대 인근 지하방에 예술인들이 작업실을 차렸고 예술가들이 둥지를 텄다.
홍대 부근에 언더그라운드, 인디문화가 생긴 것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다. 기존의 지배문화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클럽에 모였고, 록그룹의 라이브 공연에 빠졌다. 1980~1990년대 이른바 들국화를 비롯 시나위 등 유명 록밴드가 전국을 강타할 때,
‘크라잉넛’은 홍대 인디문화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노브레인’과 ‘레이지본’ 등의 인디밴드가 등장하며 반항적이며 세상을 꿰뚫어 보는 거친 음악에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거칠지만 자유분방한 메시지를 담은 인디문화가 이제 20년의 세월을 먹으며 자라났다. 성년을 맞은 홍대 ‘인디문화’의 관록이 깊은 것이다.
‘인디문화’의 열풍 속에 오죽하면 홍합 거리 마니아층 사이에 홍대 3대 명절이 있는데 크리스마스, 핼러윈데이, 그리고 또 하나가 ‘경록’ 절을 칭한다고 한다. 매년 2월 11일 ‘경록(크라잉넛 베이스 기타리스트)’의 생일에 소소한 파티를 열었는데 지금은 공연은 물론 맥주와 술을 무제한 공짜로 즐기는 홍대의 축제가 되었다고 하니 이것 또한 홍대 인디문화의 꿀잼 소재이다.
지금은 조금 다른 분위기로 변화했지만, 2000년 초반 홍대 상권을 강타한 문화는 뭐니 뭐니 해도 금요일과 주말마다 불야성을 부르는 클럽문화였다. 1990년대 후반 락카페 열풍에 이어 2000년 초 홍대 부근에만 20여 개의 클럽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며 서로 경쟁하듯 전국의 멋짱 트렌드세터(폼, 끼와 춤으로 무장한)를 불러들였다.
홍합밸리는 이제 글로벌 핫 플레이스이다.
2000년대 이전부터 음악과 미술, 문학을 포함해 다양한 문화 예술인들이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던 곳이라 발전된 현재의 모습이 일견 당연스럽기도 하지만, 이젠 그 세대의 범주를 넘어 명실공히 외국 관광객들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찾는 국제적 명소로 발돋움했다.
주말에는 말할 것도 없고 평일 저녁에도 홍대입구 전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는 엄청나다. 안 그래도 복잡한 2호선 라인이지만 2010년 이후 공항철도역과 경의선이 겹쳐지는 거대 지하철 환승역이 되면서 바야흐로 폭발적인 인구의 집합소가 되었다.
이젠 국적도 다양하다. 서울 홍대 권역 문화의 파워와 열정에 대한 입소문이 외국 관광객에게도 전파되었다. 주말 홍대 공항철도에서 2~3분 거리의 2호선 홍대입구 지하 연결통로의 모습은 그야말로 인천 국제공항 공항 환승통로를 방불케 한다. 때론 내국인보다 외국인의 통행 인파가 더 많을 정도로 정말 많은 외국인들이 다녀간다.
홍합밸리 지역에 외국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때는 2002년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역동적인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거리응원문화와 거리 패션, 뗴합창을 부르며 환호하는 한국의 젊은 관객들의 열정적 모습을 기억하는 외국 관광객들과 다이내믹한 한국의 인디문화를 보기 위해 세계 각국의 배낭족들이 모여들었다. 여기에 전 세계에 전파된 K팝, 한류 열풍이 가세하면서 홍합밸리는 밤낮으로 골목골목을 누비는 외국인들이 늘었다.
대한민국 전역의 1,000곳에 이르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홍대 권역에만 300곳이 영업 중이라니 외국인과 국내 타지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이 이곳 홍합밸리를 찾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홍대의 하루 유동인구는 적어도 30만 ~ 40만 명.
주말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온다.
하루가 다르게 뜨거운 열기가 응축되고 무서울 정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이제 많은 걱정거리, 골칫거리도 생겨난다. 심지어 볼썽사나운 모습도 자주 목격된다.
홍합밸리 독창적인 인디문화가 점점 사리지고 상업 문화와 저급한 유흥문화가 파고들고 있다.
부동산, 임대료의 급상승으로 원주민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Zentrification)과 지역 주민들이 과도한 관광객을 부정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수많은 인디밴드를 양성해 온 인디클럽이 점점 유흥이 강한 댄스 클럽으로 변하고 남은 인디클럽도 하나둘씩 버거운 임대료와 개발에 따른 건물 리모델링 등으로 홍합 거리를 떠나고 있다.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인디문화 대신 값비싼 프랜차이즈 점포와 주점, 댄스홀 등 유흥과 향락이 자리 잡는 순간 이에 대한 반감을 갖는 많은 예술가들 이 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다.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홍합 거리의 희망 요소도 있다.
홍합 거리의 핵심 거리인 일명 ‘홍대 걷고 싶은 거리’ 500m는 최근 새로 정비되어 곳곳에 버스킹 장소 8곳이 생겨나고 보행 편의를 위해 노상 주차장을 보도로 확장했다. 무질서한 거리 공연과 소음, 혼잡한 보도가 개선되어 이제는 좀 더 쾌적한 거리문화를 연출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객석이 마련된 이 거리에 유명 가수들도 거리 버스킹에 나서며 건전한 홍대 문화의 재건을 위해 나섰다. 50대 나이에도 아직 열정적인 영원한 어린 왕자 가수 ‘이승환’은 공개적으로 후배 인디밴드를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급증하는 관광객을 위해 외국어 안내표지판과 휴식 벤치가 새로 들어서고 거리 일대 전체에 무료 와이파이 시설도 조성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라도 지역 행정기관이 나서고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유명한 홍대 앞 놀이터 공원에는 주말마트 예술장터가 성황이고 작은 공연과 버스킹이 함께 열러 동네 명소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갈수록 진화되고 발전되는 모습이다.
아직, 주말 저녁이면 일부 주취 문화가 여전하지만, 홍합 거리를 찾는 이들 스스로가 자성하고 개선해야 하기에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점차 나아질 거라 기대한다.
홍합 거리문화를 새롭게 이끄는 지역 자산과 문화 인프라가 들어서 이미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새로운 원천은 경의선 숲길과 책거리이다.
경의선은 서울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철도로 일제가 한반도 지배와 대륙 침략을 위해 1906년 만든 철도다. 서울 경의선 숲길은 옛 경의선 철길 중 일부 구간을 지하화하면서, 철길이 있던 지상에 조성한 약 6.5km의 길쭉한 공원이다.
지금은 산책 보행공원으로 조성되어 지역 주민과 외부 방문객에게 아늑한 도심 속 휴식, 힐링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 경의선 숲길 양편으로 미식가를 유혹하는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 등이 자리 잡아 성업 중이다. 주말이면 경의선 숲길. 거리 벤치에 나란히 앉아 생맥주와 담소를 즐기는 외국인들의 즐거운 미소가 이제 흔한 모습이다.
도로 넘어 동교동 방향으로 연결되는 또 다른 경의선 길은 기차 칸을 본뜬 14개 동의 거리 책방들이 배치되어 책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책거리답게 봄. 가을에 책 축제도 열리고 주말이면 작가와의 만남, 전시회 같은 행사도 자주 열려 문화 관객을 끌어들인다.
1년 전인. 2016년 10월 개장한 책거리가 또한 유흥, 상업 문화로만 내달리는 홍대입구 권역에 새로운 책과 독서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쉬운 점은 8차선으로 양분된 경의선 숲길과 책거리가 방문객의 이동 동선을 차단해 단절되는 현상이다. 지하철 연결 지점 일부 구간에 아직 공사현장이 많은 탓이기도 하지만 이 구간이 자유 보행로로 연결만 되면 한층 더 방문객의 동선 흐름과 문화 에너지의 소통을 확장할 것이다.
기존 홍합 거리의 활기찬 인디, 거리문화와 경의선 숲길, 책거리로 이어지는 힐링 휴식 문화가 어우러진다면 최적의 문화권역으로 더할 나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서울의 대표 핫플레이스인 홍합밸리는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문화를 고스란히 발산하는 엔진과도 같은 곳으로 발전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달려오는 한국문화의 메카이기도하다.
상업화니 뭐니, 잰트리피케이션이라는 부정적 요소가 존재하지만 시민과 방문객, 예술가와 지자체 행정기관이 같이 협력하여 멈추지 않는 문화기차. 新홍합밸리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역민이기도 한 나로서도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야 하겠다는 다짐이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