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 10년 만에 최대 규모 경기영어마을(파주) 역사 속으로....
추석 연휴기간 위안부 할머니 소재를 다룬 의미 있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를 감상했다. 사전에 영화 예고편만 보고 단순한 코믹영화인가 했는데 영화 중반 이후에 진중한 메시지와 함께 감동적 휴머니즘에 진한 인간애가 느껴졌다.
어찌했든 평소 다혈질, 열혈 할머니(나문희)가 고집스럽게 영어를 배우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코미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하면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영화의 소재를 떠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영어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참으로 공통적으로 느끼는 애환을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 중. 고. 대학교 무려 기본적으로 16년을 영어와 씨름하고 애달복달하면서도 거의 대부분이 장롱영어 수준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거침없이 주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차츰 연차(연식)가 깊어가면서 이마저도 이젠 남의 일인 양 감각도 무뎌진 지 오래다. 사실 평범한 영어 타령하자고 이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그 많던 영어마을은 다 오데로 갔나?
최근 지면 뉴스에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파주 경기영어마을이 10여 년 만에 간판을 내리고 새로운 기관으로 거듭날 거라는 짧지도 그리 길지도 않는 소식을 접했다. 오는 10월 중순경 이른바 4C 인재양성 기관으로 사업을 바꿔 ‘체인지업 캠퍼스’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달고 재출범한다는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 영어교육의 범위를 넘어 창의교육, 특히 4차 산업시대를 맞아 드론, AI, 디지털 등 새로운 분야의 교육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발굴하여 창의적 인재 양성을 한다는 그럴싸한 사업 취지와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리 쉽사리 와 닿지 않는다.
이 또한 초창기 찬란했던 영어마을 사업을 떠들던 막연한 미사려구 문구와 별반 차이를 못 느꼈겠고 창의인재 양성이라는 표현이 어찌 보면 더욱더 막연한 단어가 아니던가? 요즘 우리나라 사람 치고 인공지능이니 VR(가상현실)이니 단어 못 들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그 미래에 대해서는 산업계 내부에서조차 정확히 진단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하물며 前정부가 4년 동안 주야장천 외치던 주요 국가사업 중 하나가 창조경제였고 각 지역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어 수많은 예산을 퍼부었지만 실상 현재로선 그 성과가 미미하고 앞으로의 사업적 미래도 거의 불투명해진 것을 보면 더욱 더 그렇다.
물론 영어마을의 후속 대안을 놓고 고심한 흔적은 역력하지만 말이다. 아직 출발도 안 한 공공사업에 대해서 미리부터 폄하하고 싶진 않다. 다만 또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이번에는 제발 값진 결과를 도출하길 바랄 뿐이다.
‘체인지업 캠퍼스’에 대한 사업은 익히 관련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터라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같은 경기도민이자 파주에 인접한 일산에 거주하고 있는 나로서는 괜한 부화가 순간 치밀어 올랐다.
거슬러 올라가 2006년. 파주 경기영어마을은 당시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공약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완공, 화려하게 오픈하였다. 2004년 안산캠퍼스를 필두로 시작한 영어마을 사업은 영어 몰입교육을 기치로 전 국민. 특히나 학부모들의 관심을 대번에 사로잡았다.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영어 사교육을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서도 해법이 될 수 있고, 지자체의 지역 활성화와 수익사업으로서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 일각에서는 영어마을을 소위 황금알을 낳은 사업으로 과대하게 포장하여 대대적으로 對 국민 홍보까지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6년 파주캠퍼스 오픈 당시 유아원에 다닌 딸아이 생각에 우리 아이도 몇 년 후에 여기 프로그램에 보내자고 내심 관심을 두었고, 초기에 구경삼아 주말에 두어 번 이 곳을 방문하기도 했더랬다. 넓은 광장과 멋들어진 캠퍼스 건물, 빨간 트레일 기차와 갖가지 볼거리, 쾌적한 공원등이 흡사 테마파크를 방불케 했던 영어마을의 근사한 풍광을 지금도 기억한다. 사진 찍는 포토샷이 꽤 괜찮을 정도로 파주의 가족 나들이 공원 역할도 톡톡히 했다.
영어마을 파주캠퍼스는 2006년 990억 들여 완공, 오픈했고, 양평캠퍼스는 2008년 670억의 초기 예산이 투입되었다. 대표적인 경기 영어마을의 쌍두마차는 오픈 직후부터 구름 떼 방문객이 몰려들어 대단한 관심과 인기로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지자체의 최고 성공 사례로 평가되면서 영어마을의 선두자로서 진두지휘를 했던 경기지사의 대중적 지지와 인기도 하늘을 찌를 듯이 했으니 10여 년 지난 후 만년 적자에 골칫거리 사업으로 몰락한 영어마을은 이제 급기야 문을 닫는 신세가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당시 경기 영어마을의 열풍은 역시나 전국적으로 퍼져 거의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가 영어마을을 유치하려고 안간힘을 썼고 도지사, 시장 등 각 지자체장의 주요 공약사업으로 너도나도 경기 영어마을 따라 하기에 나섰다. 당연히 경기도만큼은 아니더라도 각 영어마을마다 수백억 이상의 예산을 쏟아부어 오픈했는데 한때 전국 영어마을의 수가 단번에 40여 개를 넘어섰다.
당연히 프로그램도 경기 영어마을의 벤치마킹에서 시작된 것이라서 맨 선봉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파주 영어마을이 대부분 영어마을의 모델이 된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영어마을의 탄탄대로 성공 가도는 불과 3~4년 만에 상황이 급반전했다. 개원 초기 수백억 원의 적자는 전혀 개선될 조짐이 없고 연간 방문객도 5년이 지난 이 후부터 급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상된 영어마을의 몰락!
몰입교육이라고 불린 영어마을의 프로그램이 대부분 영어교육의 잘못된 인식괴 허상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언어라는 분야가 수십년해도 발전하기 쉽지 않음을 알고 있는 터에 1박 2일, 3박 4일, 1주일, 2주일이란 단기 몰입교육이 진정한 영어교육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고, 사교육 부담을 줄이고자 했던 프로그램이 오히려 비용적 효율성과 경쟁력도 매우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3~4년 후부터 흑자 전환을 장담했던 영어마을은 매년 수백억의 적자로 막대한 도비로 메꿔야 하는 심각한 지경에 빠졌다. 특히나 경기도는 안산, 파주, 양평캠퍼스 등 3개의 캠퍼스를 전액 경기도가 출원, 운영하고 있는데 매년 적자에 대한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해법을 찾는다고 하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이 있을 리 만무했다. 시작부터 잘못 설계된 프로그램과 사업 카테고리를 땜질 처방식으로 바꾼다고 바꿔지겠는가?
게다가 영어마을을 검증되지 않은 영어 원어민 강사와 단기 채용으로 일관하고 일반 운영과 사업기획을 비전문적인 공무원 위주로 운영하다 보니 전문적 영역의 언어 사업의 속성상 그 효율성이 개선될 리가 있겠는가? 영어마을 운영을 위해 인력은 많이 들어가고 전문성은 떨어지고,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도 내리막길을 걷다 보니 점점 영어마을은 거의 모든 지자체의 계륵으로 취급되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
3년 전에 오랜만에 헤이리 예술마을을 둘러보러 가던 참에 인접한 파주 영어마을에 잠깐 지나치는 동안 그 많던 주차 행렬과 인파로 붐비던 정문 입구와 인근 도로가 주말임에도 한적한 모습에 영어마을에 불어닥칠 참담한 미래가 예견되기도 했다.
2017년 10월 15일.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파주 영어마을 캠퍼스가 곧 문을 닫는다. 한때 40여 곳에 이르던 전국의 영어마을수도 이미 8~9곳이 폐쇄되었고 남은 영어마을 대부분도 존폐의 기로에 섰다고 한다. 이미 예상된 상황이지만 아직도 해결책을 못 찾아 아등바등하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전국의 영어마을은 차제에 과감하게 정리할 것을 권고하고 싶다. 지자체는 각 지역의 교육 발전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사업이겠지만, 영어마을은 절대로 한시적으로도 안착할 수 없는 사업임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본다. 영어마을이 성공했더라면 아마도 전국에 중국어 마을, 일본어 마을도 생겨났겠지만 이젠 그 가능성은 멀찌감치 달아났다.
특히나 한국의 언어교육은 장롱 언어 교육이었음을 모두들 알고 있지 않은가? 입시, 암기 위주로 잘못 짜인 공교육 제도가 그대로인데, 혁신적인 언어 교육이 파고들 틈이 있겠는가?
테마파크식의 겉모습만 화려하고 내실은 부족한 영어마을은 이제 가라~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갓난아기부터 정체모를 언어를 본능적으로 배우고 습득하고 일꺠워가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된다. 이에 유추해서 이미 많은 언어 교육 전문가도 언어교육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 먹는 보여주기 식 방식이 아닌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외국어 교육의 대안과 해법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안 그래도 살림살이 빠듯한 국민 생활 속에 영어 사교육이라는 부담이 하루속히 줄어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