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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나그네 윤순학 Oct 10. 2017

거리 이름 이제 따라하기 고만!

지금 전국은 ~ 리단길, ~ 로수길, ~로데오거리로 가득!

#. 거리 이름 따라 하지 마란 말이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바로 옆에 최근 몇 년 사이에 아주 유명해진 서울의 핫플레이스 경리단길이 있다. 70~80년대를 추억하는 비교적 세월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현재 경리단길은 골목은 존재하되 이름 없는 그저 평범한 동네 골목으로 기억할 것이다.     



'~리단길의 시초, 경리단길'


경리단길은 대략 5~6년 전부터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연예인 홍석천의 레스토랑이 입소문을 타고 명소로 뜨고 비슷한 시기에 태국, 인도, 베트남, 터키, 중동 등 다양한 식당들이 자리 잡으면서 국내 젊은 층 미식가들과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이색적이고 독특한 골목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패션, 소품 가게와 분위기 있는 독특한 카페 등이 들어오면서 서울 속 외국인거리 이태원보다 더 핫한 문화 음식거리로 뜨게 됐다. 뜬 정도가 아니라 대박 거리라 할 만큼.    



행정구역상 경리단길은 용산구 이태원2동 국군 재정관리단 정문에서부터 남산 하얏트호텔 쪽으로 이어지는 길과 주변 골목을 말한다. 경리단이란 이름은 2012년 국군 재정관리단으로 통합되기 전까지 육군 예하 부대에 대한 예산의 집행, 결산을 맡아보는 부대인 육군 중앙경리단이 있어서 지금의 경리단길이 붙여졌다. 예전에는 이 동네에 딱히 대표 격이라 할 만한 건물이나 랜드마크가 없는 평범한 동네 골목이라 그나마 경리단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였을 것이다.    


경리단길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나타난 현상이 있는데, 이른바 미투(Me too!) 따라 하기 전략이다. 일단 내용은 둘째치고 이름부터 흉내 내는 것인데. 처음 한 두 군데야 애교로 봐준다고 하지만, 이제 전국적으로 수두룩하게 경리단길의 아류들이 생겨나면서 조금 식상해지는 느낌이다.    


이제부터 한번 그 아류들을 들여다볼까?    



마포구의 핫플레이스, 망리단길


처음 경리단길을 대놓고 따라하기 이름 붙인 거리는 망원동인데, 망원동+경리단을 합쳐 망리단길로 불린다. 실제 망원동은 경리단길이나 그 어떤 다른 동네보다 핫(hot)한 지역인데, 굳이 왜 망원동의 이름을 망리단으로 부를까 싶다. 망원동도 너무 부동산, 임대료가 상승해 일부 주민들이 망리단名 거부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실정 인대도 말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런가 싶다. 이제 또 다른 ‘~리단길’로 가보자~.    


서울에서 가까운 부평에는 평리단길이 있다. 부평+경리단길을 줄인 단어다. 원래 커튼 가게들이 많아 커튼 골목이라 부른 전통시장인데 젊은 상인들이 들어와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평리단길로 발전했다.    



경주 황리단길, 전주 객리단길


경주에는 황리단 길이 있다. 경주 황남동은 황남빵으로 유명한데, 이태원의 경리단길에서 힌트를 얻어 황남동이 한옥지구임을 고려해 자연스레 불리고 있다. 황리단길은 봉황로를 마주하며 대릉원 주변 내남 사거리 입구부터 시작돼 황남초 네거리까지 이어진 약 700m의 도로와 대릉원 서편 돌담길 약 450m를 일컫는다.    

이 일대는 과거 황남동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으나 최근 1년여 사이에 서울 경리단길이 부럽지 않은 소위 ‘핫’한 카페와 식당, 책방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전주에는 전주 객사+~리단길을 붙여 객리단길이 있다. 객사길의 ‘객’字와 서울 유명 거리 ‘경리단길’을 딴 합성어 ‘객리단길’은 1년 새 입점한 상점이 40여 개를 넘어서며 젊은 층 사이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광주 동리단길, 대구 봉리단길, 울산 꽃리단길


광주에는 동리단길이 생겨났다. 예전 전남도청 인근 동명동에 분위기 좋은 카페와 가게들이 생겨나며 새로운 지역 명소로 뜨는 동네인데, 동명동+~리단길의 유래이다.     


대구에는 봉리단길이 있는데, 조금 독특하다. 맛집거리로 유명한 대봉동의 대봉도서관 주변에 맛집 골목이 있는데 대봉+~리단길이 합쳐져 봉리단길이 되었다.    


김해에도 김해 봉리단길이 있다. 김해 회현동에 있는데 이 거리에는 유독 점집이 많아 ‘신의 거리’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차라리 리단길이 아닌 ‘신의 거리’가 훨씬 부르기 쉽고 인상적인데 궂이 왜 따라하할까 싶다.   


울산에는 정확한 위치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꽃리단길’이 있다. SNS에서 불리는데 꽃바위 부근 해안길로 추정된다. 아마도 이 지역에 이국적인음식점,분위기좋은해물포차거리가 있어 바다 풍경을 가득 담은 명소 거리를 만드려고 하는 듯싶다.    


경리단길은 망리단길을 시작해서 황리단길, 객리단길, 평리단길, 동리단길, 봉리단길, 꽃리단길을 파생시켰다. 앞으로도 경리단길의 명성이 지속되는 한 또 다른 ‘~리단길’을 낳을 수 있다. 



네이밍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한번 명명되면  수년 아니 수십 년을 따라가기에 그 지역의 개성과 특색을 담을 고유한 이름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유명한 시구가 떠오른다. 이름은 존재의 이유를 알려준다.    



또 다른 유명한 거리도 있다. 서울 신사동에 있는 ‘가로수길’이다.


가로수길은 필자가 10년 가까이 근무했던 메이저 광고회사 바로 옆의 거리인데, 가로수길이란 명칭은 그 당시에서 붙여졌다. 압구정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박한 거리였는데, 광고기획자, 디자이너, 패셔니스트, 카피라이터 등 크리에이티브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주로 찾는 거리가 핫플레이스로 뜨면서 지금의 잘 나가는 ‘가로수길’이 되었다.     


눈만 뜨면 럭셔리한 새로운 점포, 카페, 식당이 들어서자 그것도 부족에 바로 옆에 붙은 골목은 ‘세로수길’이라는 명명하에 그 명성을 자연스럽게 확장해가고 있다. 이제 가로수길을 모르면 그야말로 간첩, 외계인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    


역시나 가로수길을 본뜬 아류 거리가 최근 등장했다.    

 

새로 뜨는 길, 샤로수길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 방향의 작은 골목길을 말하는데 ‘샤로수길’이라 부른다. 조금 특이한 것이 샤(서울대학교 정문의 상징물)+(가)로수길이 합쳐진 것이다. 동네 이름보다 서울대의 자존심을 담은 듯한데, 결국은 ‘~로수길’을 붙여 흉내 낸 것이 아닐까?     



사실 ‘~리단길’이나 ‘~로수길’보다 더 먼저 전국적으로 공통적으로 이름 붙인 거리가 있다. 패션, 의류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칭하는 ‘로데오거리’이다.    


로데오거리의 원조는 압구정 로데오거리이다. 90년대 서울 강남의 최고 핫플레이스로 부러움을 사고 명성이 자자했지만, 최근 들어 신사동 가로수길과 청담동에 밀려 조금 자존심이 구겨졌다.   

 

전국의 로데오거리는 정말 무수히 많다.    


문정 로데오거리. 가리봉동 로데오거리. 천호동 로데오거리. 일산 로데오거리. 목동 로데오거리. 건대 로데오거리. 수원역 로데오거리. 의정부 로데오거리. 구월동 로데오거리. 동성로 로데오거리. 해운대로데오거리. 산본 로데오거리. 광주 로데오거리. 진주 로데오거리, 춘천 로데오거리....    


연달아 이름 부르기가 숨이 찰만큼 많지만, 대부분 현재까지 그런대로 익숙하게 통용되고 있다. 아마도 그 지역 동네 이름만으로는 뭔가 부족할 듯싶으니 로데오거리의 콘셉트와 명성을 차용한 듯싶은데,     




이제 거리 이름 따라 하기를 그만하면 어떨까?    


해당 지역을 명소로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남들이 부르는 이름보다는 지역 주민의 아이디어와 지혜를 모아 독창적이고 고유한 이름을 갖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바야흐로 도시도 경쟁의 시대이다. 2등, 3등이 아닌 1등이 독식하는 시대이다. 하물며 오랫동안 지역민과 방문객, 관광객에게 불려질 이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따라 하지 말란 말이야~ 거리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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