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빵(집) 여지도를 만들어보면 어때?
참, 기발한 신조어 .빵지순례!
얼마전에 우연히 빵지순례란 얘기를 듣고 무슨 뜻인가 잠깐 동안 의아해하다 이내 전국 유명 빵집을 찾아가는 최근 미식가들의 익숙한 용어란 설명을 듣고 나도 곧 ‘아하~!’하는 탄식과 함께 빵 터졌다.
이른바 빵돌이, 빵순이라고 칭하는 빵 마니아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이고, 순례란 단어가 붙은 걸 보니 이미 최신 트렌드로 자리 잡은 맛투어의 일종인 셈이었다.
빵지순례. 성지순례도 아니고 맛집 투어도 아닌 빵지순례. 누가 처음 이 용어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얼마나 간결하면서 아이디어 넘치는 신조어 아닌가? 위트도 있고 해학도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나도 빵을 좋아하지만, 우리 국민들 중 빵 싫다는 이는 별로 못 본 것 같다. 입맛 까다롭고 연세 지극히 드신 옛날 어르신 일부를 제외하고 빵은 간식을 넘어 우리도 서양식단처럼 이제 당당히 주식으로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우리나라 전국 빵집. 17,000개
동네 어디에나 가다 보면 요즘 커피가게만큼이나 많은 게 빵집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6년 기준으로 전국에는 1만 7000여 개 이상의 빵집이 있고 그중 70%가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집계된다. 그야말로 막강한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아성을 뚫고 꿋꿋이 전설적인 빵집들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쯤이면 위력을 넘어 각 지역의 철옹성처럼 난공불락의 요새이기도 하다.
전국적으로 수십 년 세월의 인고를 거치면서 전설적인 레전드 반열에 오른 빵집의 리스트는 대중적으로 전해지기도 하고 순위를 매길 수는 없어도 TOP10, TOP20 정도는 금방 목록을 만들 정도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 지역 주민과 입소문으로만 전해진 레전드 빵집들은 이제 미디어와 SNS란 현대 메커니즘을 활용해 동네 지역구가 아닌 전국구로 발돋움하고 있다.
7~80년대 추억의 빵집, 강남역 뉴욕제과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지금 강남역 전철 입구 바로 앞에 있던 뉴욕제과가 떠오른다. 지금은 대형 패션샵으로 바뀌었지만 당시 뉴욕제과는 일품인 빵맛으로도 유명했지만, 주말 젊은 청춘들의 데이트 장소로, 핸드폰이 없던 시절 만남의 장소로 사랑받았다. 어찌 보면 뉴욕제과는 많은 젊은 세대에게 상품을 넘어 소중한 문화를 제공한 의미 있는 빵집이었다. 아쉽게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 안타까울 뿐.
장충동에는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 온 빵집의 대가. 태극당이 아직 존재한다. 일부 지역에 분점을 낸 만큼 서울의 전설적인 빵집이다. 태극당은 위엄과 기품이 있는 가게로 기억한다. 청춘들보다는 주로 고급 케이크와 과자, 선물용 제품을 찾는 중산층 고객이 주류였다.
혜화동 근처에 한성대역 입구에도 레전드 빵집이 있는데, 그 유명한 나폴레옹 제과이다. 예전에는 사실 지역에 이름난 빵집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최근 명성이 대단하다. 대한민국 대표 빵집 다섯 손가락으로 손꼽힌다.
평소 그다지 미식가도 아닌 나로서는 그냥 넘겨왔는데 ‘빵지순례’란 단어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빵맛도 좋지만, 빵집을 순례한다는 이 얼마나 순수, 소박하면서도 심오한 용어인지.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 본다. 빵지순례!
언젠가 꽤 오래전부터 직장 동료, 후배 직원들이 고향 나들이를 다녀오거나 색다른 고장을 찾아 여행을 다녀온 얘기 중에 지역 맛집. 그중에도 지역 유명 빵집을 찾아다닌 고행담이 있다. 기나긴 대기시간에도 불구하고 한 광주리 구입에 성공한 고생기(?)를 너스레 하듯 늘어놓곤 해서 별 관심이 없는 차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긴 적이 있다.
이제 빵이, 말 그대로 그냥 빵이 아니다. 이제 조금 시들었지만 언젠가 지난 몇 년간 와인 열풍에 너도나도 와인 배우기, 와인 매너 익히기에 푹 빠졌던 광풍을 기억하듯 이제 빵이 그 뒤를 잇는다.
사(私) 견은 배제하고 빵 마니아들이 공통적으로 꼽히는 집들이 있다(정확한 통계는 없다)
물론 서열도 없다. 그래도 불구하고 조금 읊어보면...
너무 간략해서 좀 더 풀어보면...(아무래도 아쉽다)
야채와 마요네즈의 조합인 일명 사라다빵으로 명성을 날린 서울의 ‘나폴레옹제과’,
근엄한 선물용 과자의 원조 ‘태극당’, 군산의 ‘이성당’은 1945년 개업. 70년 역사의 대한민국 최초의 빵집이자 단팥빵, 야채빵으로 지금도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1956년 개업 60년 역사에 튀김소보로빵으로 유명한 대전의 ‘성심당’, 이듬해 1957년 시작한
대구 삼송빵집은 대한민국 빵집 역사의 산실이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크림치즈빵의 주역. 안동의 맘모스제과. 감자샐러드 가득한 공룡알빵의
광주 ‘궁전제과’를 필두로 광주 신흥 명문 ‘베비에르’, 독특한 초코파이가 명물인 전주 ‘풍년제
과’가 바로 그 뒤를 잇는다.
최근 서울 유명 백화점에 입점한 대구 ’근대골목 단팥빵집‘의 저력도 만만찮다. 누구도 흉내못할 정성 어린 조리비법으로 알려진 삼척 ‘꽈배기’는 방송에 소개되며 일약 유명한 전국구 스타로 떴다.
이외에도 조금 덜 알려질 뿐 전설을 만들어가는 명문 빵집들이 즐비함을 누구나 안다. 필자는 이번 에세이를 준비하다 문득 야심 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른바 대한민국 빵(집) 전국지도.
대동여지도의 고산자(김정호) 선생의 뒤를 이어 촘촘한 빵(집) 지도를 만들면 어떨까?
이 글을 접하는 독자들은 코웃음 칠진 몰라도 어디 빵집이 이 곳뿐인가?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전국에 이외에도 유명한 빵이 그야말로 널부러 졌다.
이미 언급한 레전드 빵집만 해도 서울-인천-대전-광주-군산-대구-부산에 이르는 전국 투어가 나온다.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천안 호두과자도 알고 보면 단팥 들어간 큰 구슬빵이다. 경주에는 이미 황남빵이(경주빵이라고도 하지만...) 간판 격이다. 통영에 가면 관광객을 사로잡는 통영꿀방이 있다.
완도에는 해산물이 들어간 ‘장보고빵’이, 거제에는 예전 포로수용소의 애환을 담은 ‘눈물젖은 빵’이 있다. 안동에는 ‘하회탈빵’이, 전주에는 ‘한옥빵’이 있고 울산에는 ‘고래빵’이 있다. 속초에는 ‘단풍빵’이, 진해에는 ‘벚꽃빵’이, 광양에는 ‘매실빵’이 있고 포항에는 ‘과매기빵’이 있다.
아직 열거 못한 전국 각지의 빵들이 수두룩하다.
강원도에는 그 유명한 찐빵이 있다. 안흥찐빵, 횡성 찐빵이 있고 강원도 전역에 옥수수 찐빵을 비롯 산호박 찐빵 등 갖가지 맛난 찐빵이 곳곳에 있다.
가히 이 정도면 전국 빵(집) 여지도를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빵으로만 전국 곳곳을 이어갈 수 있다. 그냥 웃자고 시작한 아이디어이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그럴싸하다.
작년에 대구시가 대구시 3대 빵집을 연계해 빵지순례를 활용, 관광마케팅 프로그램을 만들어 호응을 얻었다. 군산은 ‘이성당’이 지역 관광상품의 큰 축임을 자랑한다. 지역 관광 패키지에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통영에 가면 꿀방의 원조 ‘오미사꿀빵’ 집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꼭 들린다.
경주는 황남동에 못 가더라도 공항이나 KTX역에서 황남빵 박스를 손에 쥔다.
알고 보니 빵이, 장난이 아니다. 소문난 빵이 동네를 먹여 살릴 수도 있다.
작년 봄인가?
출장차 내려간 광주 송정역 근처 송정시장에 유명한 빵집의 빵 나오는 시간을 가다리는 긴 대기줄을 보고 새삼 놀란적이 있다. 다른 점포, 가게는 아직 영업 준비 중이지만 이 집은 벌써 한바탕 오전 장사를 끝냈다. 빵집 옆에 국밥집도, 편의점도 덩달아 손님이 줄을 잇는다.
잘 키운 빵집이 동네를 먹여 살릴 수도 있다. 좀 과장되기는 하지만.
‘빵지순례’를 잘 활용해서 아이디어를 접목해보자.
결과는 장담 못하지만 노력하는 자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