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코스프레의 힘! 어디까지 발전할까?
제인 오스틴의 도시. 바스 - 18세기 영국 전통의상 코스프레 축제
세계인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유명한 영국의 국민작가.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정’의 작가이다. 영국 바스(Bath) 시는 작가가 한때 5년간 거주했고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한 도시이다. 바스는 온천 도시로도 유명한데 고대 로마 지배 시절부터 현재 목욕(Bath)이란 단어가 여기서 파생되었다.
‘목욕=바스’, 다시 한번 영국의 오묘한 힘이 느껴진다.
피지배자인 영국이 지배자인 로마의 문화를 되받아 쳤나 싶기도 하고..
작은 도시. 바스에는 매년 가을 9월에 제인 오스틴 축제가 열리는데 18세기 당시의 복장을 한 많은 이들이 모여들기로 유명하다. 축제 참가자들은 댄스, 하프, 예절 교육, 콘서트, 연극, 가면무도회까지 다양한 축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영국 문학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작가를 추모하며 축제를 즐긴다.
이 축제는 제인 오스틴에게 열광하는 순수한 독자들도 참여하지만, 18세기 영국의 전통 의상을 입는 독특한 콘셉트 때문에 전 세계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기도 한다. 제인 오스틴 축제는 전통 의상의 참가자 수로 한때(2014년?) 세계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그녀의 최고 명작과 어우러지는 영국 전통 의상 코스프레 축제는 바로 영국의 품격이고, 문화다. 다소 불편해 보이지만, 18세기 영국 귀족이 입던 의상을 차려 입고 귀족답게 품위 있게 걷고, 거리 퍼레이드에 즐겁게 참여하는 관광객들의 환한 얼굴에서 진정한 코스프레 축제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사실, 근대 이후 세계의 제국으로 군림했던 영국이야 미국, 중국, 독일에 가려 2등 선진국으로 전락한 지금보다는 2~3세기 전의 모습이 훨씬 그리울 것이다. 그 불편한 18세기 산업혁명 이전의 전통 의상 코스프레를 한때나마 즐기는 영국 국민들의 애환도 있을 터이다.
귀족의 콧대 높은 자존심을 고대로 반영한 고지식한 의상과 시시 답답한 예절, 무도회, 귀족과 평민 간의 차별등이 그대로 녹아든 작품이 바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국민에게 외면받던 우리 전통의상 ‘한복’
유교 전통의 우리나라 의상 ‘한복’도 단아하고 아름답지만 까다로운 착용, 입기 예절, 현대 생활과의 부적합, 불편함(?)에 한동안 외면받아왔다. 사극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아리따운 여배우의 한복 맴씨야 환상적이지만 일상생활에서의 한복이 어디 쉽기야 하겠는가?
반면 우리의 한복과 더불어 아시아의 각국에도 독특하고 전통적인 여성의 의상이 전해 내려 온다. 아시아의 공유 문화답게 엇비슷한 면도 많다.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인도, 몽골, 중동까지...
일본의 여성들이 착용하는 대표적인 전통의상 기모노와 여름철 가볍게 입는 유카타는 세련되고 정갈한 느낌과 일본 특유의 감성이 녹아 있고 고혹적인 빨간 색상의 중국의 치파오, 반대로 순백색 단아미를 완벽히 담은 베트남의 아오자이는 상반되지만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를 의상으로 표현한 대표 의상이다.
화려한 왕실풍의 태국의 쑤타이, 다채로운 색상과 대조되는 단순한 형태의 인도의 사리, 초원의 고된 유목 생활을 견뎌내던 몽골 여성의 델, 엄격한 남성 위주 문화로 기인한 아랍 여성들의 히잡까지... 이 모두 나름대로 동양 고유의 정서와 문화를 담으면서도 아름다운 여성들의 맵씨를 표현하는 각 국의 고유 의상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설날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미디어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미풍양속 중에 하나로 우리 전통 의상인 ‘한복’ 문화를 소개하며 한복 입기를 독려했던 것을 기억한다. 언제쯤인가? 6~7년 전부터는 서울시에서 명절 당일 고궁이나 공원등 한복 차림의 방문객에게 무료입장의 혜택을 제공해 왔다.
행정 차원에서도 ‘우리 한복 입기’를 장려했던 것이다. 이런 시책은 우리 국민들이 바쁜 현대 일상 속에서 조금 입기 불편한 한복 입기를 꺼려해서 생긴 현상이었다.
외면받던 한복 문화에 이런 반전이(?)
2010년 초 쇄락하는 옛 마을인 북촌, 서촌 한옥마을이 도시재생 사업 후 다시 부활하면서 특이하게도 의외의 한복 입은 소녀가 하나둘씩 나타나더니 점점 그 수가 많아졌다. 이어서 경복궁, 삼청동 일대에 한 두 개 한복 대여소가 등장하자 한옥마을을 구경 온 여행객들이 손쉽게 한복을 빌려 입고 너도 나도 자유롭게 꽃 활보에 나섰다.
저마다 기다란 셀카봉을 들고 인증샷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려 친구들과 공유하며 추억을 기록했다. 한복과 셀카봉이 이렇듯 한 짝이 되어 패션 어이템이 될 줄이야.
사실, 한복 입기는 외국 관광객이 먼저 주도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아무 시선도 아랑곳없이 거리를 활보한 것은 노란 머리, 파란 눈의 외국 소녀들이 원조였다. 의외로 과감한 외국 관광객들의 한복 코스프레를 신기해하면서 점차 우리 청소년들이 따라 하면서 ‘한복 입기’는 확산되었다. 문화는 이렇듯 때론 관습을 깨고 외부에서 파격 요소가 들어가야 자극을 받는 법이다.
이제 한옥마을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꺼이 한복 입기 대열에 동참한다. 최근에는 히잡을 두른 무슬림 소녀도 가세했다. 외국 관광객들도 모두 우리 한복을 입고 보란 듯이 고운 한복의 맴씨를 자랑한다. 그녀들에게는 왠지 낯설지만 평생 기억될만한 추억을 만들며 즐긴다.
현재 서울 삼청동, 서촌 등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종로구에만 한복 대여업소가 13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명절에만 시행되었던 고궁 무료입장도 2013년부터 연간, 상시적으로 한복 착용 입장객에게 서울 4대 고궁과 종묘, 왕릉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됐다. 한복을 입으면 종로구내 음식점 100여 곳에서 할인도 해준다. 구청 부설 주차장 요금도 할인해 준다.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 도시로 떠오른 전주. 불과 4~5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 한해 1,0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도시로 등극했다. 물론 규모면에서는 아직 제주도와 부산에 비해 다소 소박하지만, 많은 2030 젊은 세대들이 버스와 기차를 타고 역사 도시, 맛의 도시 전주에 내려와 그들만의 젊음을 만끽하고 있다.
지금 전주 한옥마을은 그야말로 주말마다 한복의 물결이다. 시간을 거슬러 타임슬립 열차를 타고 조선시대로 되돌아온 듯 알록달록 예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의 행렬이 줄을 선다. 화려한 대갓집 규수에서 담소한 양반네 처자의 한복도 입고, 심지어 뇌쇄적이고 파격적인 기생옷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2~3년 전 불과 4~5군데였던 한복 대여소가 현재 60여 곳 이상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전주 한옥마을의 한복 코스프레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루 종일 1벌 빌리는데 대략 2만 5천 원 안팎이고 가게 사장님의 서비스에 따라서 대여 손님한테 한복 복장에 어울리는 머리핀, 장식꽃등 악세사리나 손가방 등 소품은 무료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단순히 한복 한벌 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분장실처럼 고객에게 섬세한 서비스까지 제공하여 그들에게 즐거움과 설렘을 만끽하도록 해준다.
예전에 고궁이나 박물관에 가면 임금이나 장군 복장을 간단히 빌려 입고 포토존에서 기념사진 한 장 달랑 찍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의 한복 입기 코스프레는 차원이 다르다.
한복 코스프레에 남녀 구별은 없다. 아름다운 소녀, 규수의 한복만 있는 것이 아니고 대갓집 도령의 멋들어진 한복도 얼마든지 대열에 동참한다. 커플끼리 한복을 입고 데이트하는 모습처럼 보기 좋은 광경도 없다.
한복 코스프레의 멋은 장난기 가득한 청년들이 가세해 여장 청년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익살과 치기 어린 용기가 한몫한 것이지만, 그들에겐 추억이고, 뜻밖의 풍경을 구경하는 다른 관광객에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색다른 요소이다.
서울 북촌, 삼청동에서 시작, 인사동에도. 광화문에도, 남산골 한옥마을에도. 어김없이 한국 문화의 전통이 있는 곳엔 한복 코스프레 관광객이 뜬다.
전주에도 광주에도 대구에도 부산에도 전국 어디서나 유명 관광지에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자자체에서는 관광객 유입을 위해 무료 한복 대여소까지 운영할 정도로 거의 모든 지자체 행정기관도 한복 코스프레 유행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축제로 진화 중인 ‘한복데이’ 이젠, ‘한복 입고 놀자!’
최근에는 ‘~~ 데이’처럼 ‘한복데이’도 생겨났다. 전국적으로 일정한 날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지역마다 저마다 따로따로 정해 그럴싸하게 행사도 개최한다.
전주 한옥마을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다. 2012년 한 기획업체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한복데이는 매주 수천여명이 참가할 정도로 폭발적이다. 수천 명의 한복 물결이 동시간에 한옥마을을 뒤덮은 광경을 보면 가히 장관이다.
예전처럼 그냥 단순히 한복 빌려 입고 사진 찍기가 다가 아니다. 이젠 ‘한복 입고 놀자’라고 말한다. 한복 입고 광장에 모여 함께 단체로 플래쉬몹도 하며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단체 인증샷도 찍는다. 소박한 패션쇼 무대지만 서로 프로 모델처럼 런어웨이 라인에 과감히 서서 워킹도 연출한다. 외국인들도 섞여서 함께 참여하고 즐긴다. 이젠 ‘한복 입기’는 당당히 축제의 한 축이다.
부산은 2015년 해운대에서 70여 명의 대학생 기획단의 주도로 먼저 시작하고 광복동 한복사업조합이 별도로 2016년부터 ‘한복데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복 확산 기류에 한복업계가 뛰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광주에도 한복데이가 뒤를 이어 진행되고 서서히 그 물결이 거꾸로 서울로 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장담한다. 1~2년 내에 서울 사대문 안에서 대규모 ‘한복데이 축제’가 열릴 것임을 (안되면 나라도 기획할 수 있다. 어차피 내 직업이기도 하니까)
이렇듯 우리 전통 의상인 한복이 내국인, 외국인 가릴 것 것이 자연스럽고 편하게 다가가 확산되고 많은 이들이 생활 속에서 즐겨 입는 현상은 매우 고무적이고 환영할 일이다. 내심 한민족의 문화가 이제야 제대로 뿌리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뿌듯한 마음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젊은이들 사이에 한복이 인기를 끌면서 2~3만 원대 저가 한복이 등장하고 품질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9,900원짜리 저고리에, 만원대 치마, 2천 원짜리 노리개 등으로 값싸게 한 벌을 장만할 수 있다. 경제도 어려운데 가격이 저렴한 거야 백번이라도 반길 문제이지만 대개 값싼 수입산 재료에 조잡한 양식의 대여 한복 위주로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데에 대한 문제이다.
게다가 대여업소에서 빌려주는 한복이 전통적인 모습에서 지나치게 벗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복은 우리의 옛날 양식과 전통이 깃든 아름다운 옷인데 정체불명의 값싼 한복이 진열대에 늘어선 모습을 본 전문가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한복은 점점 맞춤이나 판매가 아닌
렌털의 의상으로 개념이 바뀌고 있다"
"요즘 한복 입는 트렌드는 전통문화로 입는 게 아니라
특이한 옷, 코스튬 정도로 한복을 입는 것이다 “
도심을 알록달록 물들이고 있는 좋은 풍광에도 불구하고 일부 뼈 있는 일침에는 동감이 간다.
모처럼 전국적인 트렌드를 넘어 문화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한복’에 대한 이해도 높여야 함은 물론이지만 그렇다고 다시 과거로 회귀해서 친숙해진 한복이 멀어지길 않기를 바란다.
한복은 거의 입어 볼 기회가 없는 필자지만, 신세대들의 한복 입은 밝은 모습을 바라볼 때면 그저 좋아 보인다.
영국 바스의 제인 오스틴 축제처럼 우리도 곧 세계 최고, 최대의 전통 의상 축제가 열리기를 희망한다. 장소야 서울이든, 부산이든, 광주든, 전주든 상관없이.
서울 북촌, 전주 한옥마을을 찾는 요즘의 청소년,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도 함께 참여하며 공감하는 그런 축제. 광화문에서 세종로, 남대문, 서울역까지 온 거리가 아름다운 한복의 퍼레이드 물결로 가득히 차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한복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전통 의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