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야키, 뉴욕핫도그, 쿠바샌드위치, 큐브스테이크, 치즈앤롤, 불고기버거, 감자그릴치킨...
요즘 남녀노소, 세대 구분을 안 가가리고 좋아하는 음식들인데, 모두 다 정식 레스토랑이 아닌 핫 트렌드 푸드트럭의 인기 메뉴들이다. 이제 더 이상 푸드트럭은 그저 예전처럼 낡은 고물 트럭 뒷칸에 순대, 튀김, 떡볶이, 우동을 파는 영세 길거리 음식점이 아니다. 요리사도 일류 호텔 출신, 정식 요리 자격 코스를 두루 섭렵한 세프급 수준이 즐비하다.
지난해 미국에서 들어온 유명한 햄버거 브랜드. 쉑쉑 버거를 아시는가? 서울에도 가장 몸값 비싼 동네 강남 청담동에 직영점을 오픈. 명절 기차 예매표 구매하는 듯한 기나긴 대기줄을 연출하여 광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서울을 떠들썩하게 한 이 비싼 버거도 결국 태생은 푸드트럭이었다.
올해 여러 악조건에 둘러싸여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우리 푸드트럭 업계에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문화 아이콘으로 뜰 정도로 인기 상한가다.
푸드 트럭 전용 공간(존)이 등장하고, 정규 방송 프로그램이 생기고, 푸드 트럭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면서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아이템 사업으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과연 그러할까 싶지만 사실 거의 사양사업으로 내몰리다가 조금 숨통이 트고 있다고 해야 하겠다.
푸드 트럭 열풍이 문화 아이콘으로(?)
3년 전쯤인가? 아메리칸 셰프(American Chef)란 독특한 미국 영화가 있었다. 일류 레스토랑에서 잘 나가던 한 미국 요리사의 좌절과 극복을 담은 음식 영화인데 이색적인 푸드 트럭이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 놀랍게도 전 세계적으로 히트 친 할리우드 대박 블록버스터 ‘아이언맨’ 1,2의 연출자이자 배우인 존 파브로가 직접 주연으로 나섰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뛰어난 요리 실력을 가졌지만, 변해가는 고객의 취향과 트렌드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요리 레시피를 고집하는 독선과 오만으로 일관했다. 그가 일하던 레스토랑에서도 결국 쫓겨나지만, 허름한 중고 고물 트럭으로 다시 일어서 고군분투, 대박 메뉴 ‘쿠바샌드위치’를 탄생시키며 재기에 성공한다는... 스토리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의 평범한 영화였지만, 잔잔한 인간애와 감동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아메리칸 세프는 한국식 불고기-김치타코로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푸드트럭의 성공 신화를 만들어 낸 한국계 이민자. 로이 최의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고 해서 더욱 화제였다. 실력 있는 셰프 출신인 로이 최는 당시 푸드 트럭 창업 1년 만에 200만 달러(23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며 미국 전역에 스트리트 푸드(street food) 업계의 롤모델이 되었다.
“겨우 2달러(2,500원?) 짜리 불고기 타코로 연매출 23억~! “
국토가 널찍한 미국에서 푸드트럭은 일상적인 문화이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공원 벤치에 앉아 자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복잡한 뉴욕이나 LA, 시카고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중소도시 마을까지 푸드트럭이 일반화 되어있다. 푸드트럭의 천국인 미국에는 현재 최소 5,000여 대의 푸드트럭이 영업 중이고, 많아지는 숫자만큼 점점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고 한다.
세계 유명 음식점의 맛집을 증명하는 전설적인 미슐랭 가이드가 있듯이 미국에는 푸드트럭의 맛집을 평가하는 ‘벤디 어워드(vendy award)’가 별도로 있다. 올해로 벌써 13회 차를 맞을 정도로 푸드트럭의 산 역사를 보여준다.
지진으로 항상 긴장하는 일본도 푸드트럭이 일찍 발전했다. 재해상황에서도 건물 밖에서 신속히 음식을 제공하기 위함인데 라면에서부터 덮밥, 야키소바, 카레 등 친숙한 먹거리가 많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김밥, 떡볶이, 튀김 등 빠지지 않은 먹거리가 많지만, 왠지 너무 친해서일까? 푸드트럭에는 철저히 소외된 느낌이다.
로이 최의 푸드트럭 Kogi BBQ! 가 한국에서도 통했을까?
로이 최등 한국 이민자의 푸드트럭 성공 사례는 이미 수년 전부터 국내 방송에 알려지며 음식업 창업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아! 이거다~’하며 너도나도 푸드트럭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광활한 미국과는 달리 법적 규제도 많고, 땅덩어리가 작고, 도로도 복잡하고, 상권 경쟁이 치열한 우리의 사정과는 맞지 않은 한낱 꿈에 불과했다.
도로교통법, 식품위생법등 갖가지 법적 규제로 인해 푸드트럭이 실상 불법이었지만 2014년 ‘손톱 밑 가시 뽑기’ 규제 완화 끝장토론이 계기가 되어 합법적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기쁨도 잠시. 당초 기대와는 달리 전국의 공원, 유원지만 영업 허가장소로 한정되며 많은 수의 푸드트럭 사업자가 개점과 동시에 휴업하는 상황이었다.
푸드트럭 영업이 합법화되고 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국에 차량 개조 허가된 수가 약 2,500대로 추정되지만 알고 보면 푸드트럭 중 15~20% 수준인 300~350여 대만이 영업 중이다. 그나마 일주일에 2~3일 반짝 장사하며 간신히 생계유지를 꾸리는 트럭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 영업환경이 조금 나아지면서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제 푸드트럭에 겨울 가고 봄이 오는가? 계절은 쌀쌀해지며 겨울로 가고 있는데...
서울광장에서 간혹 이벤트로, 한강시민공원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던 푸드트럭 야시장이 연간 상설 운영되고 장소도 여의도, 반포, 동대문 DDP, 청계광장, 청계천길로 확대되어 3월부터 10월 말까지 주말에 푸드트럭 식도락 파티가 펼쳐진다. 한 곳에 30~40여 대가 출동하니 주말 5곳에 무려 150여 대의 푸드트럭이 시민, 관광객과 미식 여행을 떠난다.
오후 6시에 영업 스타트~! 저녁 11시까지가 공식 클로징 시간이지만 상당수 푸드트럭은 조기 매진. Sold out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리 잡은 터라 주말 반짝 장사지만 매출도 짭짤하니 힘도 솟는다. 폭발적인 반응으로 고무된 서울시도 내년에는 밤도깨비 야시장 장소를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서울 ‘도깨비 야시장’의 경우 하루 평균 10~15만여 명이 찾으며 인근 상권 활성화에 적잖이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밤도깨비 야시장의 상설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메뉴와 레시피, 위생, 요리사 경력, 트럭 장비 심사 등 까다로운 심사와 경쟁을 뚫어야 가능하다. 경쟁률은 평균적으로 3~4:1인데, 내년에는 높아진 인기 덕분에 한층 더 바늘구멍이 될 전망이다.
지난 11월 5일 한강 여의도공원에 100여 대의 푸드트럭이 모여 일대 장사진을 이루었다. 일명 ‘서울 푸드트럭의 날’인데 쌀쌀한 날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식도락가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최근 푸드트럭이 문화 아이콘으로 등장하자 맨 먼저 공중파 방송 SBS가 먼저 과감하게 선수를 쳤다. 먹방의 신, 요식업계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백종원을 전격 캐스팅, 상금 3억 원을 내걸었다. 전국을 순회하며 푸드트럭 서바이벌 대결을 펼치는데 각양각색의 메뉴와 스타일, 개인 스토리를 담은 도전자들의 흥미진진한 열정이 화제를 몰고 있다.
백종원의 푸드트럭은 단순히 방송에만 국한되지 않고 서울, 수원, 부산, 광주 등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기에 푸드트럭이 집결하는 장소 섭외가 매우 중요하다. ‘백종원의 푸드트럭’에 나온 서울과 수원, 부산 등은 푸드트럭의 성지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워낙 발달한 상권인 서울 강남역에 전용 푸드트럭 존이 생기고, 핫플레이스가 된 것은 지자체의 노력에 의한 것이지만 방송 프로그램의 영향이 매우 크다. 강남 서리풀 푸드트럭 존! 방송 회차가 거듭되며 주말마다 고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지역 명소가 되었다.
광주 편에서는 평소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의 광장 속으로 푸드트럭의 진입 헸다. 물론 시당국과 문화의 전당 측의 특별 허가에 인한 것이지만, 점점 거리 음식점의 굴레를 벗어나 대표적인 상권, 문화지구로 속속들이 파고 들어가고 있다.
여러모로 반응이 좋자 지자체들이 앞다퉈 푸드트럭 존 조성을 위해 양팔을 걷어붙였다.
최근 도시문화공원으로 재생된 마포 석유 비축기지에도 푸드트럭 존이 생겨났다. 마포 농수산물시장에도 푸드트럭 거리가 조성되었다. 한시적이지만 수십 개의 컨테이너로 꾸며진 복합 문화시설 ‘창동 플랫폼 61’도 올여름에 푸드트럭 페스티벌을 성황리에 마쳤다.
수원시도 올해 성공 모델을 만들어냈다. 수원 남문시장, 영동시장, 지동시장 입구에 20여 대의 청년 푸드 트레일러 존을 설치, 운영했는데 그야말로 대박이다. 기존 재래시장과 겹치지 않은 차별화된 메뉴에 영업시간도 5시 이후부터 오후 10시까지로 기존 상인과의 마찰을 최소화했다.
전통시장에서 맛볼 수 없었던 파스타, 수제버거, 스테이크 등 푸드 트레일러 메뉴가 인기를 끌면서 이 곳이 핫플레이스가 되자 청소년과 젊은 층의 방문이 급격히 늘어나 시장 상인들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경기도와 수원시, 상인, 청년 푸드트럭 사업자 간의 협력과 상생이 이뤄낸 결실이다.
예전에는 수원 남문시장은 오후 5시를 넘으면 찾는 이의 발길이 끊어지기 시작해 저녁 늦게에는 대부분의 시장 점포가 문을 닫았다. 관광객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구경하고 나서 야식거리를 찾아 재래시장을 찾지만, 불 꺼진 재래시장을 보고 발길을 돌리기가 일쑤였다.
경기도는 부천·평택·화성의 축제장과 전통시장을 돌며 푸드트럭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내일을 실은 길 위의 여행’을 주제로 푸드트럭의 정착 모델을 찾기 위함인데. 반응 또한 좋다.
이제 축제의 주요 프로그램과 일부 곁다리로 들어간 푸드 트럭의 위상이 뒤바뀐 것인가? 매 축제마다 푸드트럭 존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른다. 인기 메뉴는 보통 1~2시간 대기는 기본이고, 그나마 일찍 품절되어 맛 구경도 못하기가 부지기수. 심지어 메인 행사장의 공연, 전시장은 썰렁해도 푸드트럭 존은 축제기간 내내 바글와글 떠들썩하다.
부천 국제 만화 축제장에서는 ‘애니 푸드(애니메이션+푸드트럭)’를 주제로, 평택 안중시장에서는 ‘푸드 5일장’을, 화성 행사장에서도 ‘푸드 올림픽’을 주제로 난타 퍼레이드 공연 등의 이벤트가 곁들여져 즐거운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다.
푸드트럭이 정말 살아나서 매력 있는 도시의 맛 꽃이 될까?
하지만, 아직 갈 길도 멀다. 규제가 여전하다. 영업장소와 트럭 개조에 대한 문제이다. 좁은 국토와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쉽사리 해결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지자체와 기존 상인, 푸드트럭 사업자가 서로 상생하고 양보하고 협력한다면 충분히 윈윈(win-win)할 수 있다. 몇 가지 사례가 이를 충분히 입증했다.
푸드트럭은 단순히 길거리 음식점이 아니고 도시의 문화를 함축한다. 별다방 스타벅스가 단순한 커피집이 아닌 문화를 파는 가게로 포지셔닝해서 대성공을 했듯이 거리의 푸드트럭은 이동성의 장점을 갖고 있기에 전국 어디든 문화가 있는 현장으로 달려가면 된다.
차후에는 지나친 과열 경쟁이 되지 않도록 푸드트럭의 영업점 수(數)도 적절히 조절해야 하고 지역 안배에도 힘써야 한다.
모처럼 지역 상권과 협력 분위기를 만들어 가듯이 앞으로도 꾸준한 상생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우리도 곧 로이 최처럼 푸드트럭 성공 신화의 주역도 나오고 성공 스토리도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