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짤 새도 없이 벌써 나이 오십을 넘겼다. (+몇 살인지는 생략하련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살짝 베껴서 '우물쭈물하다가 내 오십 됐다!'
이제 그만 오십으로 멈추고 싶지만 그렇다고 마냥 세월을 논하기엔 시간이 아깝고
이제 더더욱 분발하여 열정을 사르려 한다. 청춘은 오십부터~ 오십 잔치를 벌여보자!
요즘 2030 신세대의 오래된 가게 ‘노포’ 사랑이 거세다.
수십 년 대대로 맛과 전통을 이어온 중장년층만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노포’에 청춘 식객들이 넘쳐나고
이들 가게는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경제 불황으로 어려운 이때. 세대를 넘어 세월을 교감하고 추억을 잉태하는
‘노포 전성시대’, 우리에게 노포 찾는 즐거움을 허(許)하라!
2030 밀레니엄 신세대를 중심으로 ‘뉴트로(New+Retro)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다. 밀레니엄 세대는 대략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로 IT와 문화트렌드등 새로운 환경에 익숙한 신세대들이다. 최근 핫 트렌드에 열광하던 이들이 옛 감성을 찾아 나서는 신기한 현상이 유행인데 단순히 엣것을 찾는 ‘복고’ 열풍과는 조금 다른 면이 없지 않다.
부모세대나 겪어봤을 과거의 감성을 즐기려는 2030 세대와 옛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고 싶어 하는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뉴트로 소비가 확산되고 있는데 요즘엔 남녀노소를 안 가리고 노포(오래된 가게, 혹은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가게) 순례가 대유행이다. 전국의 유명 맛집, 먹거리를 휩쓸고 다닌 인기 블로거와 유튜버들도 이제 대대적인 노포 탐방에 나섰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포 하면 허름한 옛 골목에 쾌쾌한 풍취, 누가 봐도 노땅?)과 아재들이 즐겨 찾는 옛 가게들이었지만 언젠가부터 파릇파릇, 앳된 얼굴의 신세대들이 끼리끼리, 삼삼오오 이 집들을 찾는 현상이 발생했다.
노포란 말은 사실 일본식 한자어다. 일본 도쿄, 교토에는 유난히 100년, 200년 된 가게가 많은데 일본에서는 오래된 가게를 일컬어 '시니세(老舗)'라고 부르는데 에도시대에 오랫동안 신용을 이어가면서 가업을 이어가는 점포를 뜻한다.
서울시는 2017년 일본식 한자어 표기인 '노포(老鋪)'를 대신할 시민공모를 진행하여 '오래 가게'라는 새 이름을 선정하기도 했지만 좋은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이후 그 쓰임새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신세대 식객들에 이어 지상파, 종편,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도 ‘노포’ 열풍에 대거 동참했다.
허영만의 백반 기행, 다큐멘터리 3일, 다큐 시선, 한국기행, 한국인의 밥상 등 주요 다큐(음식) 기행 프로그램에 이제 ‘노포’는 단골 소재다.
그중 빼먹지 않고 챙겨보는 방송은 ‘허영만의 백반 기행’이다. 강진을 시작으로 서산, 부산, 강화 , 대구 대전을 돌아 서울 망원동, 신당동, 약수동, 한남동까지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는 노포 식당을 순례 중이다.
음식 전문 케이블방송에는 최근 ‘노포 래퍼’란 프로그램도 등장했는데 새로운 것의 아이콘 '래퍼'와 오래된 것의 아이콘 '노포’'의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바야흐로 ‘노포의 시대’라 할 만하다.
수많은 노포 식당들이 공통적으로 쓰는 문구가 있다. 'Since 19OO'!
가게 간판에 대문짝 만하게 큰 글씨를 써 붙이고, 전국의 청춘 식객들을 맞이한다. 중장년층 원조 노포 단골손님들과 섞여 신기한 듯 오래된 옛 정취와 분위기를 느끼고 기다리던 음식이 나오자마자 스마트폰 카메라 인증샷!
신세대 식객들은 노포 주인장의 훈훈하고 넉넉한 인심에 놀라고, 가격대비 푸짐한 양에 또 한 번 반하고 세월이 녹아든 노포 식당 음식의 맛에 감동한다.
을지로 3~4가 주변은 노포의 천국이다. 전통적으로 공구상가, 인쇄골목, 철공소 골목 등이 자리 잡고 있는데 신세대들은 여기에 또 이름 하나를 더 붙였다.
힙지로! (힙하다+을지로)
신세대 감성과 전통적인 감상의 을지로가 어울려 새로운 문화 탄생을 의미한다. 실제 골목 곳곳에 신세대 감각의 카페, 맛집, 액세서리 가게들이 하나둘씩 둥지를 틀었다. 이른바 신세대의 ‘감성 알박기’라고나 할까?
옆집, 앞집에 오랜 세월 터를 잡고 있던 을지로 붙박이 아재들도 이들을 반기고 함께 어우러 가며 골목을 환하게 밝힌다.
을지로에는 수십 년 이어온 가게들이 즐비하다.
얼마 전 오랜만에 옛 회사 동료와 우연히 들린 ‘노가리 골목’에 조금 이른 저녁에 들렀다가 진풍경을 만났다. 예전 모습만 떠올리면 30대 후반~50대 중반 직장인, 아저씨, 아재들이 들어차야 할 이 곳에 신세대 손님들이 거의 절반 이상 점령하다시피 한 것이다. 외모로 보아 대부분 타지에서 방문한 이들로 보이는데 과연 최근의 ‘뉴트로’ 열풍을 느낄 수 있었다.
을지로에는 세월을 대표하는 노포들이 많다. 노가리 골목의 40년 간판주자 ‘OB베어’, 서울 3대 평양냉면집 ‘을지면옥’,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단골로 찾았다는 대곱창구이집 ‘양미옥’이외에도 5060 세대의 별다방 ’을지다방’, 돼지갈비 맛집 ‘안성집’, 닭곰탕으로 유명한 ‘황평집’, 대창순대의 ‘산수갑산’등 수십 년을 한결같이 이어온 가게들도 요즘은 SNS로 소통하는 신세대들의 발길이 잦다. 세대를 넘어 추억을 공유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하지만 어둠의 그림자도 있다.
지난 4월쯤인가? 을지로 골목의 간판 노포인 ‘을지면옥’에 대한 뉴스가 한때 화제였다. 을지로 재개발사업으로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점주가 평당 2억원의 보상금을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수십 년 동안 서민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식당의 폐업을 막기 위한 반대의사 표현이라지만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서울시도 반대 여론을 감안, 당분간 을지로 일대 재개발사업을 잠정 연기 또는 전면 재검토한다고 한다. 일부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보이나 노포 및 전통산업 보존에 대한 정책 방침을 밝힌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해관계자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각종 민원, 마찰이 불을 보듯이 뻔하고 다가올 선거 국면을 앞두고 양상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다.
1,000만 대도시 서울은 도시개발과 함께 많은 추억의 거리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도심개발, 구도심 활성화란 명분이었지만 우리의 추억과 향수까지 쓸려간 것이다. 종로 피맛골, 광화문 내자동, 무교동 일부 등의 대표 먹거리 골목들이 이미 사라져 없어지거나 휑한(?) 고층 발딩 숲으로 바뀌었다.
종로 피맛골은 70~80년대를 추억하는 많은 세대에게 아픈 현실이다.
해장국의 대명사 ‘청진옥’을 비롯 ‘서린낙지’, ‘청일집’, ‘한일관’등 전통의 대표 노포들이 정감 없는 현대식 고층 발딩 한편으로 옮겨 명맥은 이어가고 있으나 옛 정취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종로 1가에는 피맛골을 흉내 낸 인위적 골목이 있지만 모두 최신 퓨전 음식점들 일색이다. 맛집으로 유명한 노포는 아니었지만 종로 3가 피맛골에는 주머니 사정이 얄팍한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학사주점 골목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그나마 작년 여름쯤인가? 인사동 근처의 좁다란 골목에 있던 ‘고갈비집’이 운영 중이었는데 어찌나 반갑든지, 고갈비집은 양푼 막걸리와 고등어구이로 유명한데 서울의 7080 세대에게 이 집을 모르면 간첩(?)으로 통하던 인기 노포였다. 최근의 흔적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건사하기 바란다.
서울 사대문 안에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노포가 아직 남아 있슴은 그나마 위안거리다. 종로 5~6가 뒷골목에 있는 닭한마리골목, 생선구이집들, 충무로 인쇄골목, 남대문 시장 안에 명맥을 이어가는 노포 식당들이다. 물론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지만.
우리에게 추억의 ‘노포’ 찾는 즐거움을 허(許)하라.
갈수록 사라지는 추억의 향수들을 찾아 이제 세대를 이어가는 소비 트렌드도 생겨났듯이 역사적인 ‘노포’들을 보존할 방법이 없을까?
서울시등 일부 도시에서 오래된 가게를 보존하기 위해 생활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등의 노력은 있지만 그 정로로는 미미한 것 같다. 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가게를 지속하고자 하는 주인장들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노포를 찾는 많은 단골 식객들의 변함없는 애정은 더더욱 중요하다.
전국의 30년 이상 ‘노포’ 지도를 만들면 어떨까?
단박에 전국의 식객들에겐 최고의 지참서요 필수 구매리스트가 될 것이다.
해당 지자체 도시들도 노포의 지속 보존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지원했으면 한다.
‘인생 뭐 있나 짬짬이 시간 날 때 좋은 사람과 함께 여행 다니고 맛난 음식 찾아다니고’
인구 1억 2천만의 대국 일본은 아직도 교토와 도쿄에만 100년 이상된 노포가 3만여 개, 200년 이상이 3천 여개, 그리고 놀랍게도 1000년 이상 된 노포도 7곳이나 있다고 한다.
정말 부러운 일이다. 이 나라라고 도시가 발전하지 않고 시간이 멈춘 듯 정체되어 있어서 그런가? 이 모두 전통과 가업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근성과 인식에 따른 것이다.
우리도 도시민의 향수가 담긴 ‘노포’가 1,000개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