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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나그네 윤순학 Oct 09. 2019

그래피티로 도시 색깔을 입힌다면?


#. 빌딩(아파트) 벽면을 그래피티 벽화로 채운다면?   

     

국내선 항공을 타고 김포공항으로 오다 상공에서 본 서울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땅 위에선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온통 콘크리트 아파트 숲이다. 대부분 회색빛 무채색의 성냥갑 모양이지만 일부 주상복합 고층 아파트의 외관이 조금 색다를 뿐. 


서울을 둘러싼 신도시 아파트들의 개성 없기는 매한가지. 외벽 큼지막한 아파트 로고가 유난히 돋보이는데 우리네 유별난 아파트 브랜드 사랑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듯싶다.


힐스테이트, 자이, 푸르지오, 래미안, 더샵, 편한 세상, 뷰, 꿈에 그린.... 이름하야 1군 브랜드.


웃지 못할 코미디는 OO 마을만 쓰여 있던 아파트 외벽에 건축한 지 10여 년이 지난 아파트에 당시 건설사의 새로운 로고가 외벽에 새로 그려졌다는. (과연 외벽 페인트 작업 공임만큼의 효과가 있을지는?)


폼없기는 일반 건물, 빌딩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건축물은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나 채광, 외관을 강조해선지 대형 특수 강화 유리가 건물 전체를 뒤덮다시피 한다.  


개발과 성장시대를 거치면서 부동산 가치와 실용성 측면만을 강조한 나머지 아파트, 빌딩의 미적, 외적, 환경적 고려는 뒷전으로 제쳐둔 게 사실이다.


외국인에게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묻는다면 ‘특색 없는 아파트가 많은 나라’도 분명 순위에 오를 것이다. 한국 하면 ‘아파트’가 떠오른다는 외국인이 의외로 많다. 좀 오래된 얘기지만 싱가포르, 홍콩 등 동남아 출장을 다녀올 때의 일이다. 홍콩에서 업무 일 마치고 짬짬이 시내 구경을 도보로 다녔더랬는데 현지인 몇 분이 ‘코리안’이라 했더니 대뜸 ‘오~코리아! 아파트! 매니매니(Many Many)~!’하던 것이다. 홍콩도 그렇지만 우리도 도시가 온통 아파트 일색이라는 ‘동조 의식’의 발로였을 것이다.


폼 안나는 아파트 빈 외벽에 그래피티 벽화를 채운다면?


당연히 현실성 없는 물음이다. 집값에 민감한 우리네 대부분 집주인 입장에선 기겁하고 팔짝 뛸 일이겠다.     

하늘에서 맛난 음식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의 기상천외한 소재와도 같은 허무맹랑한 애기일 수도 있다. 몸값 비싼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그린다면 또 몰라도 말이다.       


우리의 대표 주거형태인 아파트도 이제 좀 볼품 있을 필요가 있다. 분양가 수십억을 호가하는 요즘 신축 아파트야 알아서들 할터이지만 조금 오래된 낡은 아파트 단지도 지역과 어울리는 그래피티로 단장하면 어떨까?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역사 소재도 좋고 지역의 상징, 특색을 담아도 좋다. 우리도 훌륭한 아티스트, 그래피티 작가들이 얼마든지 있다.     



#. 그래피티는 예술인가? 공공의 적인가?    


청계천 2가 베를린광장에는 베를린 장벽 일부가 전시되어 있었다. 2005년 독일로부터 기증받은 실제 베를린 장벽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짧은 장벽이지만 분단국가인 우리로서는 많은 의미가 담긴 기념물이었다. 근데 1년 전 한 그래피티 작가에 의해 스프레이 페인트로 훼손되는 일이 벌어졌고 그동안의 법정 공방 끝에 최근 ‘국민참여재판’에서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500만 원의 최종 배상 판결을 받았다. 예술계에서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라고 작가를 옹호하기도 했지만 결국 처벌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수년 전에는 호주에서 온 4인의 청년 그래피티 작가들에 의해 서울 지하철이 한밤중 스프레이 공격(?)을 받았었다. 예술적 메시지와 존재감을 남기려 했다는 변명은 남겼지만 그들도 예외 없이 수천만 원의 배상을 물어야 했다. 



“근엄한 우리 지하철 차량에 어딜 감히 낙서를...”(지하철 관리당국)


개인이나 공공의 재산을 훼손하고 침해하는 일은 당연히 부당하지만 요즘 전 세계적으로 그래피티가 예술의 한 장르로 인식되기에 지금 그래피티에 대한 찬반이 살짝 갈리는 모양새다. 도시 경관의 미적 개선과 창작 예술에 관대한 입장에 서기도 하고, 정반대로 도시 미관의 훼손, 공공(사유) 건물의 침해 등으로 강경한 입장이다.


젊은 예술가의 거리, 비교적 자유분방한 곳인 서울 홍대, 합정 지역은 아직도 가끔 한밤 그래피티 저격(?) 자들이 활동하곤 한다. 멋들어진 외국 도시의 사례처럼 그들도 뭔가 남기고 싶었겠지만 문제는 그래피티의 수준이 한참 낮다는 데 있다. 그럴싸한 작품을 그려놓으면 건물주나 주민의 입장에서도 한두 번쯤은 애교로 넘어갈 텐데 아무 의미도 뜻도 모를 철부지 낙서 수준이니 이쯤이면 공해로 치부된다.    






#. 얼굴 없는 예술가,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Banksy)


영국 출신의 뱅크시는 단순한 그래피티 작가를 뛰어넘는 세계적 아티스트로 부상했다. 뉴욕 거리 곳곳에 하룻밤 사이 작품을 남기고 홀연히 사리지는 그는 전쟁과 평화, 마약과 테러, 인종차별등 사회적 메시지를 그의 작품 속에 과감히 표출했다. 심지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국경 장벽에도 등장해 세계인을 놀라게 할 작품을 남겼다.     

대략 2005~6년부터 뉴욕 뒷골목에 불법 그림 벽화를 남긴 뱅크시도 처음엔 당국의 검거(처벌) 대상자였지만 이후로 거의 10여 년을 넘게 세계적으로 이슈와 공감, 의문과 풍자를 남기며 ‘얼굴 없는 세기의 아티스트’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이 예술가를 찾기 위해 세계의 눈들이 그를 추적해왔지만, 현재로선 의심만 갈 뿐.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것은 없다.    


그의 기상천외한 작품은 공공장소를 훼손시키는 행위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전시회를 후원하는 도시가 나타나고 불법적인 작품인데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경매시장에 고가로 낙찰되기도 하는 등 숱한 화제를 낳았다.        


우스개 소리일지 모르지만, 한반도에 뱅크시가 등장한다면?


물론, 작년인가? 이미 한국에 ‘뱅크시’ 특별전시회는 다녀갔다. 아티스트 본인이 오지 않았을 뿐.

세계 이슈, 분쟁지역에 깜짝 출몰했던 그의 행적으로 미루어 세계의 핫이슈 지역인 한반도에도 그가 나타날 가능성은? 물론 엄청난 가정이지만 말이다.


판문점에서 남, 북, 미 정상이 깜짝 만나고 손을 마주했던 세기의 이벤트보다 못할지는 모르지만 예술의 이름으로 던지는 메시지도 이에 못지않게 강력할 것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 빌딩 벽, 또는 판문점, DMZ 부근에 강력한 반전, 반핵, 평화 메시지를 담은 그의 작품이 만일 출몰한다면, 아마도 역대급 화제작이 될 것이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단번에 작품이 남겨진 장소는 세계적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그래피티 예술의 위력이 느껴지는 순간을 미리 상상해본다면.   


 

#. 벽화(그래피티)의 도시 – 리옹(프랑스). 리스본(포르투갈)    


벽화예술은 프랑스의 작은 도시 리옹을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탈바꿈시켰다.   

  

1970년대 시티-크레아숑(CitéCréation)이란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 리옹은 한마디로 어두운 회색 도시였다. 오래된 건축물이 방치되면서 슬럼화 현상과 끔찍한 교통 혼잡뿐이었다. 리옹의 젊은 미대생들이 공공예술단체를 창립하고 본격적으로 그래피티(벽화)를 통한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프랑스 유명 건축가. 토니 가니어가 설계한 리옹의 한 아파트는 당시 1930년대에는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로망이었지만 노후된 아파트 주변은 마약과 폭력의 장소로 점점 변질되어 리옹의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변화는 이 아파트에 벽화를 그린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고 리옹 최고의 관광지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장소가 되었다. 이어 구도심의 많은 건물과 아파트 벽면은 캔버스로 거듭났다. 도시와 공존하는 예술. 리옹은 예술을 담는 도시가 된 것이다. 


포르투갈 리스본은 그래피티의 천국이다.     


리스본시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육성하기 위해 빈 건물이 휑하게 서 있던 ‘샤브레 가스’ 지역을 그래피티 구역으로 지정하였고, 이곳에 유럽 각지 그래피티 작가들이 모여들었다. 그렇다고 꼭 전문 작가들만의 무대는 아니다.     


리스본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지정된 구역 안에서는 그 누구라도 빈 건물 벽면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으니 우리와 비교하면 정말 상상 이상이다.
     


#. 우리도 유명한 벽화마을이 많이 있지만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 전국 곳곳의 벽화마을이 유명세를 떨쳤다.  

서울의 혜화동의 ‘이화마을’. 부산 ‘감천마을’, 통영 ‘동피랑 마을’, 인천 ‘동화마을’, 대구 근대골목 ‘김광석 거리’등이 대표적인 벽화거리이다. 지역 예술인들의 열정과 지자체의 지원에 힘입어 낡고 쇠퇴한 마을을 예술 입은 문화마을로 탈바꿈시킨 사례이다. 이젠 전국에 조성된 벽화마을만 해도 수십 곳에 이른다. 


성공사례를 본받아 열심히 벤치마킹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격려할 일이다. 


문제는 너도나도 따라 하는 식이 되어는 곤란하다. 전국의 낙후된 도시마다 도시재생계획을 보면 대부분 벽화거리 조성이 포함되어 있다. 전국의 지역, 마을의 역사, 기원, 스토리가 모두 다른 데 일단 저마다 벽화마을을 꾸미겠다고 한다. 벽화도 좋지만 다른 참신하고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올해 초 월미도 앞바다 인천 7 부두 항의 오래된 낡은 곡물창고 외벽에는 특별한 대형 사일로 벽화가 탄생했고 세계 최대의 야외 벽화로 인정받아 기네스북에도 등재되는 쾌거를 올렸다. 단박에 핫플레이스로 떠올라 관광명소가 되었다.


우리나라 전역에는 무수히 많은 예비 캔버스들이 있다. 


지방도시마다 곡물창고든 냉동창고든 건설자재 창고든 투박하게 자리 잡은 대형 창고 건물이 많이 있지만 하나같이 무채색 계열의 감성 메마른 외벽의 모습이다. 대규모 공장 건물도 예외 없이 큼지막한 회사 로고 외엔 별다른 고민이 없이 우람차게 서 있다. 산업단지, 주택단지 등 대규모 건설현장의 임시 가설 외벽은 어떠한가? 최소 3~4년 이상 장기 공정을 지키는 가림막인데 그저 해당 지자체의 뻔~한 디자인, 카피가 대부분이다.


브라질 리오의 한 대형 공사장 외벽은 한때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세계 최대 벽화(그래피티)가 전문 아티스트들에 의해 창조되었다. 물론 지금은 공사가 완료되어 불가피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기록은 여전히 남는다. 수년간 지역 시민들의 감동과 자부심까지 생각하면 충분한 가치가 있는 도전이었다.   

 

지역의 명물로 관광콘텐츠로 거듭날 수도 있는 비어진 공간 벽면이 많이 있다. 그래피티벽화는 예술가들에게 크리에이티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메말라가는 도시의 문화를 살찌우게 한다. 심지어 관광산업 활성화라는 경제적 가치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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