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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나그네 윤순학 Jun 16. 2021

#. 쇠락하는 명물거리, 추억도 사라진다.


헌책방 골목의 추억     

     

몇 해전 인기스타 공유, 김고은이 출연한 TV 드라마 ‘도깨비’가 대박을 냈더랬다. 평소 드라마를 자주 즐기지는 않지만 유행, 트렌드를 챙겨야 하는(?) 문화기획자의 입장에서 입소문이 난 대박 드라마는 역주행을 해서라도 보는 편이다. 


히트작은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낳는 법!.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 소품은 곧 유행이 되고 로망이 되었다. 드라마 속 배경은 연인, 친구끼리 꼭 가봐야 하는 위시(wish) 리스트에 올라 몇몇 로케이션 장소는 느닷없는 외지 관광객의 방문 행렬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곤 했다.      


인천 중구 금곡로에 위치한 배다리 마을 헌책방거리가 대표적인 촬영 장소인데 ‘한미서점’은 정점에 있는 곳이다. 드라마 방영 이후에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헌책방거리가 떠들썩해서 한동안은 매출도 오르고 좋아지나 싶었는데 그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책방은 모름지기 책이 팔려야 제 맛인데, 오는 이들마다 인증샷만 찍고 휑 가버리니 가게 주인이 달가워하지 않을 밖에. 지금은 ‘실내사진 촬영 금지’라 하니 방문객이 조금 멀쓱해진다.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한때 40여 곳이 자리 잡을 정도로 청계천,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과 함께 국내 3대 책방거리로 통했다. 다른 책방거리들도 그렇듯 세월의 무게 앞에, 디지털, 인터넷 생활의 변화 속에, 대규모 중고서점 체인의 등장으로 점점 더 쇠락해져 만가는 현실은 어쩔 수가 없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은 한국전쟁 당시 생겨나 1970년대 전성기를 맞을 만큼 역사가 깊다. 한때 100여 곳의 가게가 성업할 정도로 유명하여 부산의 명물거리이자 문화자산으로 지역 주민의 애정이 깊은 곳이다. 하지만 이 골목도 재개발의 명목 앞에 ‘풍전등화’ 신세가 되고 있다. 지금은 40여 곳의 서점이 있지만 대규모 리모델링 건물이 들어서게 되어 영세상인들이 곧 떠날 상황이라는 것. 보수동도 영화,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인기 로케이션 장소이지만 시대의 변화를 어쩌랴?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   - 신당동 떡볶이  


떡볶이 양념장의 비법은 아무도 안 가르쳐준다는 ‘신당동 떡볶이’의 원조이자 효시, 마복림 할머니의 90년대 당시 CF 대사를 기억한다. 1980 ~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신당동 떡볶이 골목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평일에도 늘 북적거렸지만 주말이면 전국에서 몰려온 떡볶이 식객으로 몸살을 앓았다. 


2인분만 시켜도 4명이 넉넉히 먹을 수 있는 푸짐한 양과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가 높았고 당시 팝송을 즐겨 듣던 청춘 세대들에겐 더 없는 아지트였다. 몇몇 가게는 음악 DJ 박스까지 설치해 소녀팬들을 유인했고 신당동 떡볶이타운의 음악 DJ는 적지 않은 유명세를 떨쳤다. 지역 관청과 주민들도 이 곳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거리도 정비하고 축제도 매년 개최해 명실공히 최고의 명물거리로 만들었지만 ‘신당동 떡뽂이’도 위기를 맞았다.     


최근 들어 떡볶이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이 등장하고 퓨전, 신(新) 서비스로 무장한 유명 떡볶이 가게들이 지역마다 나타나 ‘신당동 떡볶이’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코로나는 음식골목 특유의 매력을 더욱 앗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40여 개에 이르던 점포수도 대폭 줄어 지금은 10여 개 불과할 정도로 위축되었다. 한국인의 떡볶이 사랑이 여전한데 이 골목의 쇠락이 아이러니하지만, 필자의 학창 시절 추억이 배어있는 이 골목에 생기가 다시 찾아오길 바란다. 




         

팔우정 해장국 거리의 전성기를 아는가?     


천년고도. 역사도시 경주를 모르는 이는 없겠지만 경주 ‘팔우정 해장국 거리’는 금시초문인 사람들이 많을터이다. 지금은 대 여섯 개 가게들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1980년대만 해도 30여 개 가게가 성업하는 이 곳은 경주를 대표하는 원조 맛집거리였다. 당시 팔우정 일대는 부산, 울산, 대구를 오가는 터미널이 있어 교통의 요지인 데다 심야영업 제한도 없고 근처에 야간 유흥업소가 많아 교통, 관광, 유흥의 3박자 덕에 ‘해장국 거리’는 전국의 술꾼들을 불러 모으며 최대 호황을 누렸다.    

  

경주 보문관광단지는 일반 관광객은 물론 마이스(MICE), 문화관광 산업 관계자들이 매년 방문하는데 필자도 경주에 가면 지인들과 이 팔우정 해장국 거리를 꼭 들릴 정도로 애착이 많다. 소득 수준이 높아져 잘 먹고 잘 사는 탓에 값싼 ‘해장국’의 인기가 조금 식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네 서민들 삶의 맛이요,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진한 해장국 국물을 맛 볼 이 거리의 쇠락이 아쉽기만 하다.   





퇴색해가는 서울의 명물거리들     


서울 아현동은 결혼을 앞둔 예비커플들이 찾는 필수 방문 거리로 유명한 웨딩거리와 가구거리가 있다. 결혼 전 꼭 준비해야 하는 예식 준비와 가구들, 신혼살림 장만을 위해 많은 이들이 이 거리를 찾았지만 이 거리도 요즘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갈수록 1인 가구가 증가하는 반면 결혼 인구가 감소하고 봄, 가을 결혼 시즌이란 개념도 사라졌다. 전문 웨딩플래너와 웨딩 서비스업체가 전국에 다수 생기다 보니 아현동 웨딩거리는 자연 예비 커플들이 직접 찾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예전엔 결혼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대부분 스스로 각자 했다. 인맥, 발품을 총동원하여 예식장 예약이며, 웨딩촬영, 한복, 예복, 혼수품 등을 준비하느라 적잖이 스트레스도 받았다. 사정은 각자 다르지만 이 과정이 행복한 과정이 될 수도 있고 갈등과 다툼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현동 가구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결혼 인구가 줄다 보니 새집 살이 준비하는 가구 준비도 자연스럽게 소비가 줄어들었다. 서울, 수도권에 외국 유명 가구 브랜드의 대규모 쇼핑몰도 여럿 생겨났다. 대형 가구업체도 이젠 온라인, 홈쇼핑을 통해 직판을 하는 세상이다. 코로나와 경기침체로 인해 이사철 수요도 대폭 줄다 보니 가구거리는 일년내내 울상이다.     


쇠락하는 명물거리는 비단 이 곳뿐만이 아니다. 주방용품의 대명사 서울 황학동 주방 거리는 폐업 점포에서 수거해 온 주방기기가 넘쳐나 쌓아둘 공간도 없지만 경기불황으로 신규 창업가게가 없다 보니 매출도 반토막이 났다. 이 곳 상인들도 대부분 버티기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서울 충무로에 애견거리도 한때 5~60곳의 애견샵이 있어 반려동물 가족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애견거리라는 명칭이 무색할 만큼 많은 점포가 사라졌다.      





산업과 시대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지만 향수와 추억이 담긴 엣 명물거리가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현실이 아쉽다. 지자체, 주민, 시민이 함께 머리를 맞댄다면 이에 대한 대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볼거리, 즐길거리, 휴식 거리등 관광 차원의 새로운 콘텐츠를 마련하고 고객, 소비자, 관광객의 구미에 맞는 서비스,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명물거리가 위치한 지역 전체가 함께 유기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협력체제를 준비하고 지자체는 이에 대한 행정적, 제도적 지원책을 강구한다면 수십 년을 이어 온 명물거리가 한낮 추억거리로 전락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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