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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현 Nov 09. 2020

나의 곁에 머물던 어떤 이는 새가 되어 날아간다

그렇게 나의 곁을 떠나가지만 결국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갈 수 있기를

'나는 이제 새가 훨훨 날고 싶어'


막내 고모 말로는 큰고모가 며칠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고 했다. 칠 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학교는커녕 동생들을 돌보느라 청춘 시절을 모두 보내셨다고 했다, 일찍 시집을 가서 아이들을 키우며 또 그렇게 평생을 고모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동생들과 자식들의 삶을 위해 살아오셨지만 그럼에도, 늘 밝고 웃음이 많은 분이셨다


시골에 갈 때마다 고모와 고모부를 찾아뵙곤 했다


"잔소리 비를 내놓고 잔소리를 해야 헌다고 뉴스에서 그러던데,

결혼하냐고 물으면 오만 원이라던가 그러던데 오만 원 주고 잔소리 르 해야 쓰겠네 깔깔"


작년 가을, 고모댁에 찾아봤을 때 들었던 잔소리가 마지막 잔소리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늘 고모는 자신이 더 늙기 전에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야 결혼식에 올 수 있다며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잔소리였지만 사실은 우리를 향한 따스한 마음이라는 걸 잘 알았기에 웃으며 넘길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엄마 무슨 일 있어?"

"고모가 갑자기 돌아가셨단다"


엄마에게 잠깐 할 얘기가 있어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외출을 한다던 엄마의 목소리가 좋지 않아 순간 나도 놀랬는데, 갑작스럽게 고모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에 엄마도 놀란 모양이다


불과 3개월 전, 고모부가 암으로 투병하시다 결국 돌아가셨다.


두 분은 시골에서 평생을 자식을 키우면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셨다. 늘 볼 때마다 티격태격하시지만 사이좋은 친구 같은 부부라고 생각했던 터라, 서로가 서로에게 많이 의지하며 지내오셨을 것이다. 고모부의 부재가 고모에게는 꽤 큰 외로움이지 않았을까, 고모는 고모부가 많이 그리우셨나 보다


고모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우리의 곁을 떠나가 버리셨다


이제는 훨훨 나는 새가 되고 싶다던 고모,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시골 생활을 하면서 쉼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오셨을 것이다. 도시의 생활보다 시골의 생활은 여유롭기보다 사실 사계절 내내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고모는 이번 연도까지만 농사를 짓고 이제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하셨다고 했는데 - 그 말들이 점점 더 아려온다.






고모의 장례를 치르고 묘에서 고모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렸다


주변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고모가 벌써 새가 되어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맑은 하늘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들을 마주하며 고모에게 다음 생에도 고모부와 부부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고모는 분명 새가 되었을 것이고,

고모부 역시 고모의 뜻대로 새가 되어 서로가 서로의 곁에서 오랜 시간 머물 것이다.


고모, 고모부 다음 생에는 더 많은 것들을 누리며 행복하시기를 기원할게요.






그렇게 나의 곁에 머물던 사람들이 하나 둘 새가 되어 날아가는 일들이 많아진다.


결혼식보다 장례식이 많아질 나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유난히 장례가 많은 차가운 계절에 머물고 있는 지금이 두렵게만 느껴진다


장례를 치르고 외할머니 댁에 다녀왔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단팥빵을 사서 갔고, 늘 떨어트리지 않고 먹는 홍삼 캔디를 사서 할머니를 뵈러 갔다.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는 내가 지난번에 보냈던 귤을 잘 먹었다며 인사를 건네신다. 외출할 때는 내가 지난번에 사드렸던 털옷을 입고 따습다며 미소를 지으신다.


구십 가까이의 나이가 되어가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벅차오른다


할아버지가 꽤 일찍 돌아가시어 할머니 혼자 자식 넷을 키우셨고,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자식 하나는 본인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평생을 외로움과 먹먹한 마음을 안고 살아오셨을 할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온다. 나라면 할머니처럼 꿋꿋하게 버텨올 수 있었을까, 할머니에게 삶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던 날들이 많아진다


어렸을 때는 시골집의 구조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시골에 가면 투덜투덜거리는 일들이 많았었다.


엄마에게 화장실이 불편하다는 둥, 씻을 때 너무 춥다는 둥,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둥 말이다. 어쩌면 할머니에게는 어렸던 나의 마음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서른이 되고 나서야 할머니에게 조금은 살가운 손녀가 된 것만 같아 죄송하기만 하다


누군가 나의 곁을 떠났을 때 하는 후회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 내 곁에 머물고 있는 이들의 소중함을 항상 가까운 곳에 두고 자주 꺼내보려 한다. 가족의 소중함, 내 곁에 머물러주는 이들의 소중함을 늘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이기를.


누군가 나의 곁을 떠났을 때 적어도 후회의 눈물만을 흘리는 내가 되지 않기를 -

평생 적응할 수 없을듯한 어떤 이의 부재를 마주하고 나서야 주변을 돌아보는 못난 내가 되지 않기를 -


늘 내 곁에 머물고 있는 이들의 존재에 대한 감사함을 오늘 더 들여다볼 수 있는 내가 되자고 몇 번이고 되뇌어 본다. 그렇게 친구처럼 다정했던 부부는 새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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