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운전하는 여자가 되었다

겁쟁이 었던 나는 오늘도 운전대를 잡는다

by 윤슬
"돌아가면 꼭 운전면허부터 따고 말테야"


2012년 6월, 22살 혼자 처음으로 제주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혼자 처음으로 간 제주여행에서 나는 정말 모든 면에서 초보 여행자였다. 제주의 지리를 잘 모르는 건 당연했고, 배낭을 메고 버스를 타며 여행을 했는데, 그 당시 나의 여행 복장은 나시에 짧은 미니스커트였다. 좁은 버스 안이 어찌나 불편했는지 모른다. 혼자 제주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서 인지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릴 것만 같았다


비교적 20분 정도의 배차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일주 버스를 탔고, 그다음 장소에 가기 위해 환승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6월, 비록 완전한 여름은 아니었지만 제주의 6월은 육지의 여름과 다르게 뜨거운 햇빛이 함께 한다. 30분을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1시간이 지나서야 버스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기다렸던 버스도 아니었지만 다른 여행자들이 나와 같은 장소에 가는 것만 같아서 따라서 버스에 탑승했다. 그분들이 기사님께 길을 묻고 내리자 나도 따라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표지판에는 나의 목적지가 적혀있었다


3KM를 걸어가야만 했다


높은 온도, 제주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나는 4~5KG 정도 되는 배낭을 메고 나시와 미니스커트를 입은 불편한 복장으로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3KM를 제대로 걸어본 적이 없으니 뜨거운 햇살에 3KM를 걷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나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정말 힘들었고 무인카페를 지나 도로 옆에 있던 말과 인사를 하고 얼굴이 복숭아처럼 닳아 오를 때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힘들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던 내 옆으로,

쌩쌩 지나가는 렌터카들을 보며 "나도 꼭 육지로 돌아가면 면허부터 딸 거야! 그리고 다음 제주 여행에서는 나도 꼭 렌트를 할 거야"라고 의지를 불태웠다


하고자 하는 일에 실행력이 꽤 있는 나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 현재는 예약이 많아서 새벽 타임밖에 없다고 말씀하시길래 괜찮다는 말과 함께 필기부터 기능까지 최대한 빠른 날짜에 등록했고, 도로주행은 새벽 6시에 시작하는 일정으로 도로주행 연습을 했다


면허를 따면서 겁이 많은 나는 벌벌 떠느라 40KM로 운전을 했고, 강사님은 조금 더 밟아보려고 하셨지만 초보 운전자에게 그런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직진 본능, 내가 핸들을 놓는 그 순간까지 아무 사고 없이 학원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고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운전면허증이 드. 디. 어 내손에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운전을 할 수 있는 여자가 되었다



일단 면허증이 내손에 들어왔지만, 내가 운전을 능숙하게 할 수는 없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할 때 간혹 렌트를 해서 운전을 했고, 제주살이를 할 때 운전을 했던 친구가 운전을 알려준 덕분에 조금씩 운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어쩌면 친구들 중에 운전을 할 수 있는 친구가 거의 없어서 내가 운전을 하면서 운전 실력이 조금 늘기도 했다. 물론, 티는 많이 내지 못했지만 어찌나 무섭고 떨렸는지 모른다


S자 코스가 나와서 핸들을 좌우로 번갈아 가면서 움직여야 한다거나, 갑작스럽게 비가 많이 온다거나, 후진 주차를 해야 한다거나(지금은 후진주차가 더 쉽지만 그때는 후진 주차가 너무 어려웠다) 운전은 겁쟁이 었던 나에게 한계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내가 면허를 땄던 가장 큰 이유,

제주에서 혼자 운전을 하는 일을 이뤘던 날

나는 겁에 질려 정말 펑펑 울 뻔했다.


혼자 떠난 제주 여행에서 렌트를 할까 말까 고민했다. 계절은 봄이었다, 유채꽃과 벚꽃이 함께 피는 도로에 가보고 싶었다. 버스가 다니지 않아서 꼭 렌트를 해야만 했는데, 수많은 고민 끝에 렌트를 했다. 차를 인수받고 운전석에 앉아 30분 정도는 고민했다. "출발할까 말까 출발할까 말까" 내가 렌트를 한 이유를 되새기며, 몇 번의 운전은 했었지만 온전히 혼자 운전을 하는 건 그날이 처음이었기에 정말 수없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좋아, 가자! 해보는 거야!"


꼭 가보고 싶었던 길이었기에 용기를 냈다.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안고 내가 좋아하는 함덕 바다를 찍고, 유채꽃과 벚꽃이 함께 핀 곳에 도착했다. 날은 흐렸지만, 혼자 운전해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에 뿌듯하고 행복했다


기쁨도 잠시, 같은 시기에 여행을 온 친구를 만나러 제주도 반대편으로 가야만 했다


네비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가는데 어느 순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아차, 큰일 났다" 생각하는 순간 기름의 게이지도 깜빡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모든 게 낯설었던 초보 운전자가 신경 쓰지 못했던 것들이 팡팡 터져 나와 버렸다. 나는 한라산 주변에 위치한 중산간 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날씨가 좋지 않아 시야가 전혀 트이지 않았다


기름도 넣어야 하고, 네비도 다시 찍어야 하는데 상황은 정말 최악이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세상에 혼자 버려진 느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앞만 보고 시내로 나가는 길을 찾는 일이었다


정말 딱 내 앞차의 비상등의 깜빡임 정도만 겨우 보이는 상태로 30분 이상을 달렸고, 겨우 서귀포시 표지판을 보고 내려가 주유를 할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아찔하기만 하다, 초보 운전자의 혹독한 신고식을 끝내고 나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운전하는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다


이제 곧 운전면허를 딴지 10년이 되어간다


중간중간 제주도에서 운전을 했고 본격적으로 엄마 차로 운전 연습을 하면서 이제는 조금 유연하게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언니의 경차를 물려받아서 연습을 했고, 시골에 살고 있는 터라 안전한 차를 타기 위해 얼마 전에 나의 첫 차를 구입하기도 했다


엄마는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신다


"아들 있는 집만 운전을 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딸들이 운전을 해서 엄마는 참 좋아, 우리 딸들 멋져"

엄마의 말속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엄마에게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며 압박감을 주셨다. 딸만 둘이었던 엄마에게는 큰 스트레스였고 셋째를 낳으면서 우리 집은 딸 셋인 집이 되었다. 수없이 많은 시간이 지났고, 할아버지는 아들 타령을 꽤 오랜 시간 하셨지만 돌아가실 때쯤에는 "너희 집이 제일 행복할 거야"라며 딸 셋인 우리 집을 가장 좋아해 주셨다


딸들이 운전을 한다는 것은,

예전에는 아들만 하는 줄 알았던 운전을 이제는 딸들 역시 자연스럽게 하면서 이곳저곳을 함께 여행하는 일이 엄마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일일 것이다


요즘의 나는 운전을 할 수 있는 여자가 되었다는 게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것,

운전을 하면서 또 다른 인생을 배워 간다는 것


그리고 점점 약해지고 있는 부모님에게 조금 더 든든한 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감사하다


운전을 하는 일에는 수많은 책임감이 따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주의하면서 운전을 한다면,

운전은 나에게 너무 큰 행복을 주는 일 중 하나 임이 분명하다


운전을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고

앞으로도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한히 감사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