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림다운 계절, 고슴도치의 스물아홉 기록
"혼자 오셨어요?"
혼자 떠난 여행에서 혼자 여행을 떠나온 이를 만나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고 혼자 떠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기도 했다. 함께 저녁을 먹고, 바다를 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 만났지만 꼭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서로의 일정상 헤어져야 할 때면, 함께 있던 이가 떠나 더 외로워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렇듯, 혼자 떠난 여행에서 나와 마음이 맞는 이들을 마주하는 첫 경험은 참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종종 혼자 떠난 여행에서 나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냈던 동갑내기 친구들을 제외하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부르는 일은 낯설기만 했다. 여행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 사람들과 조금씩 친구라는 이름으로 깊어져 갔고, 너와 나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친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일까, 아니면 너와 나는 서로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뾰족한 모습을 보였던 게 이유였을까. 서로 다른 인생을 걸어왔던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진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순간들이 생겼다
오랜만에 만난 너와의 대화에서 나는 너를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2시간을 넘게 달려갔지만 너는 나의 상처를 콕콕 찌르며 나에게 서운한 감정들을 잔뜩 이야기했다. 울컥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너는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 우리의 마음이 달랐던 순간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 미안해,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네가 잘 지냈으면 좋겠어'
상처를 주는 사람은 그대, 상처를 받는 사람은 분명히 나였지만 - 더 이상 우리의 소중했던 추억까지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STOP'를 외치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너에게 나는 나쁜 사람이었고, 나에게 너는 그저 한없이 나를 안아주었던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우리는 언제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 생각했다
정확히 한 달 뒤 너에게 미안하다는 장문의 메시지가 전해왔다, '괜찮다. 네가 잘 지내기를 바란다'라는 이야기로 나는 너와의 인연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음을 전했다. 너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던 걸까, 나는 너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수많은 생각들로 복잡해져 더 이상 혼자 하는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히 믿지 않으려고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여행에서 만난 이들과의 우연이 인연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또 상처 받지 않으려 '적당히'를 외치고 있었다. 여행길에서 우연히 마주하고 있는 우리가 어쩌면 오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작은 기대감과 함께 오래전 상처를 주었던 이의 마음이 함께 피어올랐다.
자연스럽게 너에게 흘러갔던 마음을 나는 누르고 또 눌렀다. 더 이상 상처 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약해진다. 틈만 나면 서글퍼지고, 마음이 쓸쓸해지고 사소한 일에고 풀썩 꺾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는 것은 나는 이렇게 약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말하고 나면 마음이 괜찮아진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싫은 것은 싫다고, 좋은 것은 좋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하루를 더 살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서도 마찬 가지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에도, 곁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다시금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된다. 여행에서의 동행은 나침반이자 지도다. 나를 걷게 하고 헤매게 하지 않으며, 길을 잃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존재다. "
-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중에서
그렇게 4년이 흘렀고, 여행길 위에서 만난 어떤 이에게 상처 받았던 마음을 잔뜩 안고 갔던 그곳에서 너를 처음 만났다. 밝고 맑은 친구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와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너에게 나는 용기를 냈다
어쩌면 너와 나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만이 존재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은 적었지만 앞으로 나눌 이야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렇게 너와 나는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살고 있었지만 자주 안부를 묻고 자주 마음을 나눴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나와의 약속을 위해 한걸음에 달려와주었고, 온전히 하루를 함께 보내고 늦은 저녁 맥주 한잔을 마시며 우리는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명 여행지에서 너와 나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가 서로를 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이였다
'언니 나는 사실 언니가 쓴 글을 종종 다시 본다'
사실 나는 비공개로 되어있는 SNS에 종종 나의 솔직한 마음을 올리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기보다 오늘의 마음을 내일의 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 동생은 나의 글을 꾸준히 읽고 있었고 비슷한 마음의 글을 정리해서 자신의 사진첩에 두고두고 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참 고마웠다, 누군가 나의 마음을 읽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웠지만 그런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했다. 나의 마음이 단 한 명의 누군가와 통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여전히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고, 서로 아픔을 느끼기도 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진정으로 바라는 친구로 깊어지고 있다
'언니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 참 다행이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잖아
나는 언니 덕분에 내가 다시 일어날 힘을 얻어,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힘이 돼'
너의 생일이었던 오늘, 나는 더 큰 마음을 선물 받았다. 진짜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마음속 깊은 속에서 자신을 꺼내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매번 나의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까 싶었던 마음이, 단 한 명의 마음에게라도 통했으면 조금 더 용기를 내봐도 되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너와 나는 친구가 되었고, 나는 너라는 친구 덕분에 오늘 글을 쓸 힘을 얻는다. 인생에서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단 한 명만 있다면, 나는 또 그렇게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
여행길 위에서 만난 친구와 상처 받았던 시간 뒤에 아무도 믿지 못했던 나에게, 너는 여행길 위에서 만나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한번 더 알려준 고마운 인연이다. 내가 길을 잃었던 순간에 너는 나에게 나침반이 되어주며 나는 네가 길을 잃었을 때 또 다른 나침반이 되어준다
여행길 위에서 만난 우리는, 그렇게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울고 웃는 시간에도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며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