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림다운 계절, 고슴도치의 스물아홉 기록
아림다운 계절, 고슴도치의 스물아홉 기록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나 보다, 길거리에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된 나무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의 거리를 보며 예쁘다 라는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자연의 풍경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겨울이면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의 풍경도 좋아지는 요즘
'이번에는 혼자 떠나볼까' 생각했다가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역시 여행은 봄과 가을이 좋다는 이유로 나는 여행을 조금씩 미루기 시작한다. 계절이 계절인만큼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면 쓸쓸한 마음을 더 쉽게 마주하게 되기도 하고, 이 추운 계절에 나 홀로 바라보는 바다는 얼마나 쓸쓸할까 라는 괜한 걱정만 커져간다
'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의 외로움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나는 자주 가방을 메고 혼자 여행을 떠났고, 여행지에서 많은 것을 하기보다 나의 마음을 비워내는 일에 집중했다. 최대한 나의 마음을 가볍게 비워내고, 에너지를 가득 채워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나 홀로 여행의 가장 큰 이유였다
신기하게도 혼자 떠났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하하호호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날도 많았고 -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여행자들 덕분에 혼자 여행이 우리의 여행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 즐거움을 두배로 만들 수 있는 일이기도 했지만, 종종 허무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몇 년을 알고 지낸 친구사이에도 여행지에서는 의견이 조금만 다르면 불편해지기 마련인데, 처음 마주하는 우리가 종종 동행이 되기도 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진짜 이야기를 하지 못해 불편한 상황들도 종종 발생하고야 말았다. 불편한 마음들이 전해져 올 때마다 '다음 여행은 무조건 혼자 다닐 거야'라고 다짐하지만, 나는 혼자 떠나 함께 하는 여행을 하게 되는 날들도 많아졌다
누군가에게 상처 받고 서운한 감정이 밀려올 때면 인생을 혼자 사는 거야 라고 이야기해도,
우린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배워간다
'혼자 하는 여행을 통해 나는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기도 하니까'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아니라 혼자 하는 여행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는지,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어떤 패턴으로 하루를 채워나가고 있는지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해외는 아니었지만 말이 잘 통하는 국내 여행지에서도 '나 혼자 여행객'은 여행을 왔다는 기쁨도 크지만 이제부터 철저하게 혼자라는 외로운 마음도 함께 안고 여행을 시작한다
'최대한 씩씩한 여행자 인척 말이다'
두 명 세명 네 명씩 짝을 이루어 사진을 찍고 하하호호 즐거워 보이는 여행자들을 보며, 혼자 밥 먹을 생각과 혼자 사진 찍어야 할 생각에 '내가 왜 혼자 왔을까' 라며 혼자 온 내가 작아지는 날들도 많았다. 혼자 식당을 들어갈 때면 고민 고민하다가 '괜. 찮. 아' 라며 스스로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고 식당에 들어간다
얼마 전 여수에 갔을 때 게장이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여수까지 왔는데 게장을 먹고 가지 못한다면 나에게 미안할 것만 같아서, 혼자 게장백반을 시킬 수 있는 곳을 검색한 뒤 식당 문 앞에서 크게 숨을 고른 뒤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상 차림으로 나오던 게장 백반에 공깃밥 한 공기를 싹싹 비우며 현금으로 계산을 하고 큰소리로 '잘 먹었습니다!'를 외치고 최대한 당당한 발걸음으로 식당 밖으로 나온다. '혼자 먹어도 괜찮은 곳'이라는 마음이 생기면 간판 사진을 찍어두고, '혼자 다시 오지 않을 곳'이라는 마음이 생기면 다시는 오지 않겠다며 다짐하고 나오는 일을 반복한다
(아, 이왕이면 혼자 간 식당에서는 카드보다 현금으로 계산하는 게 마음이 편할 듯하다)
'나는 여전히 부끄러움도 많고, 타인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혼자 떠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종종 배낭을 메고 떠났던 나의 여행은 혼자가 함께가 되는 경험들을 선물해주었고, 나이와 직업을 떠나 처음 마주하는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행복도 선물해주었다.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머뭇머뭇,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 여행자지만 여전히 용기를 내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용기 일지 몰라도, 혼자 떠나 모든 상황들을 혼자 해결해야 했던 나에게는 모든 순간에 작은 용기들이 필요했고 용기 냈던 순간들의 마음이 모여 오늘의 내가 조금 더 선명해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친구와 함께 떠나는 여행, 너무너무 좋다
그럼에도 내가 종종 혼자 떠나는 여행을 미루지 않는 이유는 -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온전한 나를 마주하고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법 같은 일들이 펼쳐지기도 하니까, 때로는 내가 왜 혼자 떠나 왔나 싶을 정도로 외롭기도 하고 종종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 그럼에도 모두 나의 '나'라는 사람임을 인정하며 살아간다, 예쁜 모습의 나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의 나의 모습도, 앞으로 모두 내가 안고 살아가야 하는 모습이다
이왕이면,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진정한 나를 마주하고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한 번쯤 진짜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시간을 나에게 선물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 않을까
나는, 스물아홉의 마지막 혼자 여행을 계획 중이다. 먼 곳은 아니겠지만, 스물아홉을 정리하는 나 홀로 여행은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가득 안겨줄까. 춥고, 외롭고, 무겁기도 하겠지만 - 많이 행복할 거고 많이 웃고 싶다는 마음으로 여행을 마주해야겠다
나 홀로 여행,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은 여전히 참 소중하다
'한 번쯤 혼자 떠나는 여행을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
겨울의 시작, 혼자 떠나기 참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