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6일 경주에서 일을 하던 시절,
함께 일하던 친구와 부산 바다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흐린 부산 날씨에 문득 제주 바다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제주 바다를 온전히 본 적도 없으면서 그때는 왜 제주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제주에 간다는 소식 때문이었을까. 바로 집으로 돌아와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었고 다음날 아침 나는 배낭을 챙겨 김포로 떠났다
어제 경주에서 돌아온 딸이 오늘은 제주로 떠난다고 하니 엄마는 의아해하셨던 기억만 남아있다.
'엄마 조심히 다녀올게요!' 제주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일까 꽤 씩씩했던 제주 여행의 시작,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오히려 더 겁이 없던 것 같다. 가벼운 짐과 내가 아끼던 카메라를 챙겨 제주로 향했다.
이렇게 쓸쓸한 제주라니.
김포에서 제주로, 제주 터미널에서 다시 협재로.
아무것도 알지 못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게스트하우스만을 목적지로 정해 놓고 버스를 타고 협재해수욕장에서 내렸다. 흐린 날씨 탓에 유독 쓸쓸해 보였던 협재 바다, 내가 기대했던 옥빛 바다가 아니었기에 더욱 쓸쓸했던 걸까. 터벅터벅 아무도 없는 쓸쓸한 길을 따라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무작장 홀로 떠나온 제주에게 나는 어떤 풍경을 바랐던 것일까
첫 혼자 여행, 많은 사람들이 혼자 여행을 떠나기 두려워하는 이유가 외로움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날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진행하는 일몰 투어를 다녀왔지만 처음인데도 대화를 잘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낯가림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평일 제주는 직장인 분들이 대부분 이셨다. 이직, 퇴사 등이 주제가 되어 대화를 나누시는데 사회초년생이었던 22살의 나는 대화에 끼어들 수 없었다. '불편하다' 그저 일몰 투어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모두가 여행으로 삶의 이야기로 하나가 되는 듯한데 나만 어울리지 못하는 것만 같은, 낯설고 불편한 상황의 시작점이었다
일몰 투어를 마치고 돌아와 숙소에서 고기파티를 한다고 했다
'저는 파티는 참석 안 할게요' 일몰 투어의 불편함을 이어 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씻고 고단한 몸으로 2층 침대에 올라가 내일 일정을 계획했다. '어디를 갈까?' 제주의 교통편을 제대로 모른 채 유리박물관을 가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10명이 함께 쓰던 방, 화장실 하나로 눈치 게임을 하기도 했다. 게스트하우스란 이런 곳이구나 싶어 불편함 또한 여행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던 날, 쓸쓸함을 안고 잠이 들었다.
겁 없던 내 첫 제주 여행.
혼자 떠난 첫 제주 여행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생각지 못한 고생길이 이어졌기 때문일까.
삶의 방식이 육지에 맞춰져 있던 육지 사람이었던 나는, 제주의 버스도 배차 간격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늘의 목적지인 유리박물관을 가는 길, 환승해야 하는 버스가 오지 않아 1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버스가 오지 않아 겨우 다른 버스를 타고 중간 정류장에서 내렸다. 내 눈에 보이는 숫자는 도착지점까지 3KM가 남아 있다는 표시뿐이었다
'이 정도면 걸어갈 수 있지!'
도로 옆으로 나있던 작은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무더위를 자랑하는 제주의 6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들을 따라 배낭을 메고 하염없이 걸었다. 길을 걷다가 풀을 뜯고 있는 말을 만나기도 하고, 하얀 무인 카페를 만나기도 했다. 씩씩하게 출발했던 내 여행의 시작은, 집 나오면 고생인 건가 싶은 마음이 불쑥 찾아왔다
'육지에 돌아가면 운전면허부터 딸 거야!'
쌩쌩 지나가는 차들에게 괜히 미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다음여행에는 기필코 제주에서 운전을 할 거라며 다짐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실제로 여행이 끝나자마자 돌아와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했고, 새벽 6시에 운전 연수를 받으며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돌이켜보면 여행에서 불편한 마음을 느꼈고, 그 불편함이 원동력이 되어 또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했구나 싶어 대견하기도 했던 것 같다.
3KM를 배낭을 메고 뚜벅뚜벅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얼굴은 붉어질 대로 붉어져있는 상태였다
'어머 어떻게 오셨어요?' 놀란 직원분에게 '저기 입구에서부터 3KM를 걸어왔어요, 하하' 애써 웃으며 인사를 지었던 나. '죄송하지만 짐을 좀 맡겨도 될까요?' 잠시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하고 싶어 짐을 맡기고 구경을 하고 나와 '감사했습니다!'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다시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기사님! 혹시 서일주 버스 타는 곳으로 갈까요?'
낯가림이 심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 어려운 나인데, 3KM를 걸어서일까. 바로 온 버스가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버스에서 내릴 때 마음속으로 5초를 세고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스스로에게 미션을 주고 성공을 한 느낌이랄까. 꽤 뿌듯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다음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내 인생 첫 돌고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두고 잠깐 산책을 나왔다
'오늘은 일몰을 볼 수 있을까?' 흐린 바다를 두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저 멀리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카메라로 열심히 줌을 당겨 보니 돌고래들이 지나가고 있는 풍경을 보았다. '우와, 우와! 돌고래다!' 제주 바다에서 열심히 수영을 하고 있는 돌고래라니. 오늘 꽤 운이 좋은걸.
하루의 고생이 깔끔하게 씻겨 내려 가는듯한 기분이었다
'여행에는 고생도 있지만 이런 행복도 있구나' 홀로 처음으로 여행을 하다 보니 부족한 부분들만 보였는데 이렇게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마주하는 행복이라니. 생각지 못한 행복을 배웠던 첫 여행이지 않을까 싶다.
'돌고래야 고마워!'
마음이 든든해졌다. 첫 제주 여행에서 더 많은 마음들을 배워 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산책하는 마음
첫 제주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산책이었다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하는 산책, 나 홀로 낯선 곳에서의 산책은 또 다른 마음들이 피어올랐다. 꽤 씩씩한 내가 된 것만 같아서. 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생긴 것만 같아서. 처음 산책했던 곳은, 게스트하우스 사장 언니가 추천해 주셨던 서귀포항이었다. 서귀포에서도 배들이 참 많았던 곳, 낯선 곳에서의 산책은 나에게도 새로운 시선을 선물해 주었다
제주의 바다는 모두 다른 색이었다
가는 곳마다 어찌나 이렇게 다른 바다를 보여주던지. 산책할 맛이 나는 곳. 산책을 하면서 더 많은 이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 가족, 친구. 늘 함께 있어서 몰랐던 소중한 이들을 떠올려본다.
유독 들꽃들이 많이 보이는 제주였다
훗날 제주를 산책하면서 알게 된 건 제주에는 사계절 꽃이 핀다는 사실. 그래서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섬. 첫 제주 여행에서 내 카메라에 가장 많이 찍혀 있던 사진은 들꽃이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던 제주의 들꽃, 들꽃 덕분에 산책을 하면서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았다
'어쩜 넌 이곳에서 피어났니?'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던 꽃들,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들꽃들이 참 사랑스러웠다.
제주 윤슬, 바다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던 시절.
'윤슬'이라는 단어를 제주 덕분에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름답도 아름답던 제주의 윤슬.
제주에서 만난 모든 풍경은 감동이었다
버스를 타고 열심히 돌아다녔던 첫 여행이었다
서귀포항에서 성산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흐린 날씨 탓에 오르지 않았던 성산일출봉. 무슨 힘이 났는지 카메라를 들고 성산일출봉으로 향했다. 저질 체력인 나에게 성산일출봉은 오르기 힘든 곳이었다. 삼다수에 의지해 겨우 오른 성산일출봉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다
처음 만났던 성산일출봉, 그날의 아름다움에 취해 1시간을 그곳에서 앉아 있었다.
저녁이 되어 까맣게 타버린 내 양팔을 보며 아름다움과 맞바꾼 추억이라고 생각했던 날.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라니.
홀로 여행을 떠나오면서 내가 기대했던 제주의 풍경은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초록초록함과 바다의 조화로움, 섬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던 여행. 내가 여전히 섬을 여행하는 이유는, 첫 제주 여행의 아름다운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제주에서 만난 풍경들은 모두 감동이었다
아마도 첫 여행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와 정말 아름답다' 홀로 마음속으로 외쳤던 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우도에서의 하룻밤.
여행을 하다 우연히 경주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만났다
오늘은 우도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용기를 내 우도로 향했다. '오늘 여자 1명 숙박할 수 있을까요?' 그 시절에는 예약 시스템이 없어 일일이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던 시절이었다. 숙박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도로 가는 배를 탔고, 우도에 도착하자 사장님께서 픽업을 와주셨다.
모두가 떠난 우도의 풍경, 석양이 반짝이던 시간의 감동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석양이 지고 우도의 밤이 찾아왔다. 우도의 밤은, 유독 짙다. 식당도 일찍 문을 닫았기에 사장님께서 게스트들을 모아 바비큐 파티를 해주셨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바비큐 파티를 하던 저녁, 사는 곳도 직업도 성별도 모두 다른 우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게 여행의 묘미구나.' 즉흥적으로 시작된 고기 파티 덕분에 우도에서의 하룻밤이 더욱 깊어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첫 제주 여행에서는 걸으면서 제주의 풍경을 만나고 제주만의 문화를 만났다
생각하지 못한 풍경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행복을 배우기도 했다.
첫 제주 여행, 나에게 유독 첫 여행이 깊게 남아 있는 이유는 외로운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외로웠던 순간들을 행복했던 순간들로 만들기 위해 나름의 노력들을 이어 갔던 여행.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첫 제주. 그날의 제주를 마음속에 안고 씩씩하게 살아간다.
제주에서의 첫 발걸음 덕분에 내가 10년 동안 제주에 오게 된 걸 테니까.